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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들의 음악

중앙선데이 2016.09.25 00:28 498호 27면 지면보기

영화 ‘춘광사설해피투게더’의 OST 음반.



커밍아웃을 해야겠다. 나는 ‘중고성애자’다. 낡은 오디오를 좋아하고, 헌 책과 오래된 음반을 사랑한다. 부산의 관광명소가 된 보수동 책방골목은 내 오래된 놀이터였으며, 새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재발매 LP보다 눅눅한 종이냄새 나는 오래된 LP를 더 좋아한다. 주말 저녁에는 종종 아파트 재활용품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철 지난 잡지나 아이들의 동화책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어린이용 중고 자전거를 주워 온 적도 있다. 조금 수리해서 오래 잘 썼다.


[WITH 樂] 피아졸라의 탱고

하지만 아내는 나의 ‘득템’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한 것 좀 들고 오지 말라고 타박이다. 나는 못들은 체하며 “뭐시 중한지도 모르면서…”라고 아주 작게, 정말 작은 소리로 툴툴거린다.



근래 들어 최고의 득템은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춘광사설: 해피 투게더’의 OST였다. 재활용품장에서 주웠으면 더 좋았겠으나 중고 음반가게에서 얻었다. 이 음반은 꽤 오래전 구매하려다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오랜 기간 절판된 상태여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수요 공급의 법칙을 따르는 중고시장의 가격 원리에 의하면 몇만 원은 족히 주어야 할 것이나 나는 그날 단돈 5000원을 썼다.



음반은 세월에 누렇게 변색된 겉 비닐만 빼놓으면 출고 당시처럼 깨끗한 상태였다. 길을 걷다 5만원짜리 지폐를 주워도 이것보다 짜릿하진 않을 것이다. 음반 안에는 영화 ‘해피 투게더’의 사진엽서 10여 장이 들어 있었다. 서글픈 눈의 량차오웨이(梁朝偉)와 고인이 된 장궈룽(張國榮)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있자니 추억이 왼쪽 가슴 아래부터 스르륵 밀려 올라왔다. 영화 속 대사처럼 세상 끝에 아직 가보지도 못하고 중년이 되었다.



왕자웨이는 90년대 최고의 인기감독이었다. 영화도 영화지만 음악을 잘 쓰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의 영화 ‘중경삼림’ 덕분에 마마스 & 파파스의 오래된 히트곡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라디오 신청곡 목록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바로 이 영화 ‘해피 투게더’ 덕에 터틀스의 동명타이틀 곡도 꽤나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만 왕자웨이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음악적 주인공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다. 왕자웨이는 촬영을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도중 피아졸라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피아졸라의 음악에서 어떤 감흥을 받았을까. 추측컨대, 떠도는 자들의 정서 같은 것 아니었을까. 흔히 정치적 의미 말고도 난민이나 망명객의 정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영혼의 디아스포라-. 영화 ‘해피 투게더’ 속 인물들이 그렇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흐르는 음악이 피아졸라의 탱고다.



누군가 탱고를 ‘수평적 욕구의 수직적 표현’이라고 했단다.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수직과 수평은 서로 딱 만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살짝 부유한다는 느낌이 탱고의 흔들림에 더 잘 어울린다.



탱고는 기원부터 유랑하는 음악이고 망명하는 음악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에서 시작해 프랑스 사교계를 거쳐 다시 고향에서 꽃을 피웠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탱고 음악에는 항구의 마초적 향기와 팜므 파탈의 치명적 향수 냄새가 절도 있게 섞여 있다. 정열의 음악이라지만 피아졸라의 탱고는 좀 더 이지적이다.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으며 천천히 고양시키는 매력이 있다.



영화 ‘해피 투게더’ OST에는 피아졸라의 탱고가 두 곡 실려 있다. ‘세 사람을 위한 밀롱가’, ‘탱고 아파시오나도’다. 왕자웨이는 아마 홍콩을 떠나 낯선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헤메는 젊은 두 청춘이 부유하는 피아졸라의 음악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 OST를 듣고 있자니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온전히 소리와 음악 때문이다. 이과수폭포의 물소리. 영화 ‘그녀에게’로 알려진 카에타누 벨로주의 ‘쿠쿠루쿠쿠 팔로마’와 장궈룽이 춤을 추던 탱고 바의 아코디언 소리, 프랭크 자파의 음악, 그리고 피아졸라…. 개봉 당시 영화는 홍콩의 중국반환을 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읽혔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는 내려앉지 못한 청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거짓된 희망보다 “너의 외로움을 나도 조금은 알아”라며 동병상련의 토닥거림 같은 것을 준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는 량차오웨이의 마지막 장면은 슬픔과 비밀을 가진 이가 견뎌나가야 할 또 다른 삶의 시작점처럼 느껴진다. 당신이 없어 자신 없지만 그래도 혼자 힘으로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은 여린 희망 같은 것 말이다. 영화 속에서는 마지막에 대니 정이 터틀스의 ‘해피 투게더’를 힘차게 불러준다.



요즘은 다들 취업과 스펙 쌓기에 휩싸여 방황할 시간도 없다지만 청춘은 원래 쉽사리 내려앉지 못하는 법이다. 조금 방황해도 괜찮다. 이번 주말에는 영화 ‘해피 투게더’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 ●



 



 



글 엄상준 TV 프로듀서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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