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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사서 죽을 때까지 입는 옷

중앙선데이 2016.09.25 00:34 498호 20면 지면보기
아마도 일곱 번째 독일 여행일 것이다. 한 나라를 계속 드나들게 된 이유를 밝혀야 한다. 난 사업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유로운 여행객도 아니다. 뒤늦게 바우하우스에 꽂혀 늘그막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100년 전의 변화를 이끈 바우하우스의 스친 흔적만이라도 보게 되길 바랐다. 이렇게 꿴 수많은 인물과 문화, 도시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짐을 싸야 한다. 반복하는 일이지만 번거로움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장소가 달라지고 계절이 바뀌는 변화에의 대처는 정해진 것이 없다.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간편하고 단출한 짐은 청년 배낭여행객의 전유물이다. 만날 사람과 참석해야할 자리가 있으며 어떤 날은 낯선 도시의 뒷골목을 누벼야 하는 아저씨의 짐 보따리는 이래저래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47-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역시 옷가지가 여행 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윗옷을 챙기면 바지도 어울리는 것을 준비해야한다. 거기에 맞는 모자와 신발, 게다가 색깔까지 조합의 조건에 덧붙이면 그 숫자는 갑자기 불어난다. 뭐, 괴로워할 일은 아니다. 여행은 즐기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줄이고 아껴서 얻을 건 별로 없다.



모처럼 만의 여행에선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남는 거다. 산다는 건 단 한 번의 쓰임을 위해 번거로움과 어려움을 감수하는 일 아니던가. 기회와 자리가 생겼다면 준비의 내용을 바로 써먹어야 한다.



나는 항상 작은 불편에 더 크게 반응하고 짜증냈으며 아쉬움을 느꼈다. 옷이 그랬다. 예상치 못 한 비를 맞고 젖은 옷으로 낯선 도시를 거닐어본 적 있는가. 당혹감과 처량함은 극에 달한다. 방수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발수 처리된 옷이라도 걸쳤다면 추위에 벌벌 떠는 일은 면할 수 있을 텐데.



줄여도 별로 줄어들지 않은 여행 짐을 보고 반성도 했다. 돌이켜보니 문제는 항상 준비하지 못한 데서 벌어졌다. 넘치는 것은 덜어내면 되지만 없는 것은 더 할 방법이 없다. 기왕이면 여유있는 준비로 나만의 스몰 럭셔리를 즐기는 것도 재미다. 필요 없는 물건은 없다. 나은 것과 못한 것의 차이만 도드라질 뿐.



좋은 원단, 꼼꼼한 바느질, 충실한 디테일 … 가볍고 보온성에 충실올 여름 우리나라에선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렸다. 강렬한 기억의 각인효과는 짐 싸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레짐작으로 독일 역시 더울거라 생각했다. 현지의 날씨 검색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애매한 시기인 9월 초 독일 여행의 준비로 애를 먹었던 이유다. 지역마다 더위와 추위의 편차가 큰 것은 물론 맑은 날에도 수시로 비가 내린다. 개떡 같은 독일 날씨는 예전부터 악명이 높다.



최소한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음악회도 예정돼 있다. 들판과 호숫가를 걸어야 할 일도 생길 터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럴 땐 평소 가지고 다니던 파타고니아의 아크릴 소재 재킷과 조끼가 제 격이다. 둘 다 아웃도어용 의류이지만 평상복에 걸치거나 더위와 추위가 교차되는 저녁 무렵 가볍게 끼어 입을 수 있다. 두 벌의 옷만 있다면 돌발 상황의 대처는 안심이다.



조끼의 활용도가 제일 높았다. 가벼운 무게와 적은 부피 뛰어난 발수효과 때문이다. 입고 다니는 동안 몇 번이나 비를 맞았다. 갑작스런 빗줄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우산 파는 가게는 뮌헨에 있고 나는 그문트란 시골의 물방앗간 앞에 있을 뿐이니.



해가 진 이후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물방울을 툭툭 털어낸 조끼는 그런대로 뽀송했다. 아크릴 섬유의 보온성은 높았다. 따뜻한 온기가 곧 윗몸에 번졌다.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휘날리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일행은 스며든 물방울 때문에 벌벌 떨었다. 나의 파타고니아 재킷과 조끼는 20년 넘게 입어온 오래된 옷이다.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해지기 쉬운 소매 끝과 솔기의 끝단은 여전히 쓸 만하다. 촘촘한 박음질로 마감된 기능성 섬유의 강인함 덕분일 것이다.



요란한 디자인으로 유행 지나면 촌스럽게 느껴지는 얄팍함도 없다. 아크릴 섬유의 본질적 기능인 가볍고 보온성에 충실한 기능적 디자인의 간결함 뿐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의 처리는 더 중요하다. 오래 입어도 늘어나거나 쳐지지 않는 좋은 원단을 썼다. 당연히 보푸라기도 일지 않는다. 불필요한 주머니와 장식도 빼 버렸다. 주머니 때문에 달아야 할 지퍼가 생략되고 작은 주머니는 생각보다 쓸 일이 없다는 경험칙의 선택이다. 너무 당연해서 지나치기 쉬운 부분의 디테일까지 채운 충실함이 파타고니아의 특징이다.



설립자 쉬나드, 주한미군 시절 인수봉 등반 루트 개척파타고니아는 이상한 회사다. 자신의 제품을 사지 말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입던 옷을 수집해 수선하고 다시 팔기도 한다. 한 번 사면 죽을 때까지 입으라는 무언의 압력마저 보낸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나바다(아끼고 나누고 바꾸며 다시 쓰는) 운동’의 실천이다. 심지어 인간이 돌아다니는 것조차 환경오염의 시작이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주장의 골자는 과잉의 폐해를 줄이자는 친환경주의의 실천이다.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이본 쉬나드의 변함없는 신조다.



젊은 시절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던 이력이 재미있다. 군 생활은 편했던 모양이다. 주말이면 북한산 인수봉에 올라 암벽 등반을 즐겼다. 국내에 전문 알피니스트가 적었던 시절 그가 개척한 루트가 지금껏 남아있다. 주변 산악인에게 확인해 보았다. 쉬나드 코스는 분명히 그의 업적이 맞았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산악인으로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 쓰는 생활 장인으로 활약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은 친환경의 관심을 높이게 된 계기가 된다. 파타고니아의 방향과 소명은 분명해 진다. 물건을 쓰지 않으며 살아갈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물건을 오래 쓰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가능하다. 가급적 그 물건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단순한 방식을 주장하고 실천해 규모를 키운 회사가 파타고니아다.



페트병을 재활용해 뽑아낸 원사로 옷을 만드는 파타고니아다. 얇은 재킷 하나를 만드는데 약 34개의 페트병이 들어간다. 코튼 제품은 친환경 유기농 면화로 만든 원사만을 쓴다. 몇 배나 더 드는 비용까지 감수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일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파타고니아를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회사로 끌어내린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본 쉬나드가 제 입으로 한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삶을 꾸려가기 위해선 적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의 품질이 최고수준이 아니면 안 되지요.”



얼마나 멋진 말인가. 허섭쓰레기 열 개보다 똑바로 된 것 하나가 더 큰 힘이 되는 건 맞다. 수단과 방법이 겉 돌지 않는 일관성은 중요하다. 파타고니아를 비아냥거리던 사람들조차 끝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파타고니아 같은 회사는 없어요!”



파타고니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도쿄 신주쿠와 서울 논현동에서 파타고니아의 입던 옷을 파는 광경을 목격했다. 낡은 중고 옷이 클래식 빈티지로 취급되고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옷의 품질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점이란 게 중요하다.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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