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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에 ‘빛의 대포’ 3개 각도·색칠 다르게 해 시시각각 바뀌는 예배당

중앙선데이 2016.09.18 00:34 497호 26면 지면보기

라 투레트 수도원 예배당은 흰색·빨간색·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3개의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영적인 느낌이 배가된다. 아래 작은 사진은 ‘빛의 대포’라 불리는 원통형 천창.



이제 곧 가을이고 추수의 계절이다. 가을 들녘을 보는 것은 즐겁다. 풍성한 모습이 좋고 뜨거운 여름에 고생한 농부의 땀의 보상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람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피부에 와 닿는 느낌으로 알 뿐이다. 하지만 무거워진 벼가 바람에 일렁이는 가을 들녘을 통해 바람을 보게 된다. 가을 들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공간으로 체험시켜주는 장치인 것이다. 건축에도 이 처럼 자연의 변화를 공간으로 변환시켜주는 디자인이 있다.


[도시와 건축] 자연 느끼게 하는 건축

20세기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제 (Le Corbusier)’의 ‘라 투레트 수도원(La Tourette)’의 예배당에 가면 ‘빛의 대포’라는 이름을 가진 천창(天窓)이 있다. 이 천창이 다른 천창들과 다른 점은 대포 모양으로 길게 뽑혀 있고 3개 대포의 각도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자연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한다. 하지만 그 변화가 건축공간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라 투레트의 예배당에서는 이 빛의 대포 덕분에 공간은 시시각각 다른 분위기를 갖게 된다. 태양은 동에서 떠서 서로 진다. 계절과 시간대마다 각기 다른 태양광의 입사각이 있다. 천창의 각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각 구멍마다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가 다르다. 같은 예배당이지만 아침 9시와 정오, 오후 3시에 보게 되는 천창이 다르다. 더 재미난 점은 대포같은 모양 천창의 안쪽 곡면에 칠해진 페인트 색깔도 흰색·빨간색·파란색으로 다르다. 그 덕분에 방문자의 방문시각에 따라서 예배당 공간의 색깔이 다르게 보이게 된다. 만약에 3개의 천창이 똑같은 모양으로 뚫려있었다면 매 시간 똑같은 예배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 투레트에서는 천창의 각도를 다르게 하고 색칠을 다르게 한 디자인 덕분에 자연의 변화를 공간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4 겨울엔 물에 잠기는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



또 다른 좋은 예는 베니스의 건축가 ‘카를로스 스카르파 (Carlos Scarpa)’가 디자인한 ‘퀘리니 스탐팔리아 (Querini Stampalia)’ 미술관이다. 베니스는 겨울철에는 해수면의 수위가 올라간다. 베니스의 유명한 산마르코 광장은 11월에 가서 보면 물에 잠겨있다. 많은 골목길이 물에 잠겨서 장화를 신고 다녀야하는 도시가 베니스다. 이런 자연의 변화를 공간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미술관이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로비는 여러 개의 단차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디자인 덕분에 베니스의 해수면이 올라가면 일부분이 물에 잠겨서 사용이 불가능한 로비공간이 된다. 로비에 있는 다리는 옆의 난간이 낮은 벽으로 돼있다. 물이 차올라도 그 다리 안에서는 물보다 낮은 자리에 서서 공간을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미술관에서는 방문자가 오는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부분이 침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1·2 일본 이츠쿠시마 신사의 토리는 밀물 때 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는 전체가 드러난다.



일본 히로시마의 ‘이츠쿠시마 신사 (Itsukushima Shrine)’에 가면 물속에 있는 ‘토리 (Torii)’가 있다. 일본 신사건축에서 토리는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가는 정문 같은 것이다. 두 개의 나무 보가 두 개의 기둥으로 받쳐진 모습으로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신사에서는 특이하게도 토리를 물속에 만들어 놓았다. 사실 토리는 물속이 아니라 썰물 때 갯벌의 맨 끝에 설치한 것이다. 그러니 썰물 때에는 토리가 바닷가에 있고, 밀물 때에는 물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 토리가 없다면 밀물 때에는 신사의 경내가 축소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토리 덕분에 썰물 때 갯벌까지 확장된 신사의 경계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츠쿠시마 신사의 토리는 밀물 때와 썰물 때 각기 다른 두 개의 공간을 심리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장치인 것이다. 기준점이 되는 이 장치 덕분에 사람들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더욱 느낄 수 있게 된다.



 





한옥의 처마도 자연의 변화를 의식한 좋은 디자인의 사례이다. 처마의 길이는 낮은 입사각의 겨울 햇볕은 방안으로 들이고, 입사각이 높은 뜨거운 여름 햇볕은 못 들어오게 막는 적절한 길이로 설정돼 있다. 이처럼 좋은 디자인은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디자인이다.



 

3 공주 석남리 마을회관은 벼가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설계됐다.



이런 좋은 사례를 마음에 두고 마을 회관을 하나 설계한 적이 있다. 공주시 석남리에 마을회관을 디자인 할 때 부지 바로 옆에 논이 있었다. 이때 마을회관의 거실 높이를 벼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높이로 낮게 설정했다. 필자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 둘째아들이 나와 비슷한 키가 될수록 키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첫째는 이미 나보다 훨씬 커버렸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키가 얼마나 더 컸는지 변화가 잘 감지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논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때는 들녘의 색상 변화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벼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벼의 키가 자라는 것이 민감하게 보인다. 이 마을회관은 하루 하루 벼가 자라는 높이를 민감하게 느끼게끔 고안된 디자인이었다.



좋은 건축은 르 코르뷔제의 빛의 대포, 베니스의 퀘리니 스탐팔리아, 바닷물속의 토리처럼 미세한 자연의 변화를 공간으로 변환시켜서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변화하는 자연을 두고도 입 다물고 무시하는 건축, 예를 들자면 창문 하나 없이 몸집만 큰 대형 쇼핑몰 같은 건축은 좋지 못한 건축이다. 현대의 대부분 건축물은 자연의 변화를 차단한다. 겨울엔 난방, 여름엔 냉방으로 똑같은 실내온도와 변화 없는 한결같은 공간이 편안한 공간으로 취급받는다. 현대사회는 변화가 없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계속 변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변화를 잘 모르고 산다. 특히 자연은 느리게 변하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빨리 움직이는 자동차와 지하철에 익숙해져서 느린 속도에는 둔감해졌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느리고 미세한 변화는 사실 큰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다. 해가 뜨고 지는 움직임이나 느리게 자라나는 식물 등 말이다. 우리는 풀이 안 자라는 딱딱한 아스팔트와 변함없는 유리와 철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삶에서 변화는 TV와 스마트폰 같은 미디어에만 있다. 그래서 그런 미디어에 더 집착하게 된다. 모니터만 바라보고 살다보니 모니터 안에 나오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의 꿈이 미디어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아이돌스타가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가을 들녘 같은 건축이 우리 주변에 많아져야한다. 그렇게 자연과 우리 사이를 통역해주는 건축물이 많아질 때 우리가 자연과 대화하면서 사는 깊이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유현준홍익대 건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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