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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는 게 왜 훈련일까

중앙선데이 2016.08.28 00:24 494호 29면 지면보기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기쁘고 신나긴 한데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괜히 복장 터진다. 골프 선수 박인비 얘기다. 타이거 우즈같은 화려한 세리머니는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감격해 하는(아니면 그런 척의) 모습을 보여야 시청자도 흥이 나지 않겠나. 그런데 웬걸, 박세리 감독은 눈물을 훔치는데 박인비는 남의 일처럼 무덤덤한 표정이다. 영혼 없는 목소리로 주변에 “감사합니다”라며 꾸벅 목인사 하는 게 전부다. 아니 왜들 이기려고 저 난리를 피나. 짜릿한 우승 순간 “내가 최고야!”라며 폼 잡고 싶은 욕망도 한몫하는 거 아닌가. 저런 감정 없음이 승리의 최적화된 요소라면 ‘차라리 우승 안 하고 말지’란 심통 맞은 생각마저 들었다.



질리게 하는 건 또 있다. 박인비는 연습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송 해설가로 나선 최나연은 “인비가 ‘잘 쉬는 것도 훈련’이란 명언을 남겨 우리를 또 좌절시켰죠”라고 했다. 박인비를 잘 아는 주변 인사에게 물어보니 “평상시에 길면 하루에 2시간, 짧으면 30분만 연습한다”고 전했다.


박인비와 불안사회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여태 최고 경지에 오른 이들의 공통된 미덕이라면 하나같이 ‘연습벌레’ 아니었던가. 적어도 그렇게 알려져 왔다. “하루 10시간 훈련에 매진했다”거나 “밥 먹는 시간, 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했다”는 소리를 녹음 테이프처럼 반복했고, 그러면 우린 그걸 또 철석같이 믿곤 했다. 그게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천재는 따로 있고, 1등은 하늘이 점지해 준 것이며, 아무리 노력해봤자 타고난 재능을 따라갈 순 없다는 것일까. 우둔한 이들의 자포자기 혹은 전복적 태도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면 된다’는 거짓 발림을 유포했다는 얘기인가.



물론 박인비의 경우를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긴 무리일 거다. 하지만 새삼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 있다. 첫째는 절대 시간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과연 맞는가 하는 것이다. 2008년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를 통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설파했다.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최소 1만 시간은 들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1만 시간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오래 하면 되는 건가. 박인비 측근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인비도 어릴 때는 무진장 연습했어요, 지금 줄인 거지.” 즉 일정 수준에 오르고 나면 절대시간 투자가 최고의 미덕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쉬는 게 훈련”이라는 것도 말장난이 아니다. “가만히 ‘멍 때리는’ 게 아니에요. 일종의 멘탈 훈련”이란다.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상정해 최악의 경우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반복한다고 한다. 기량 차이가 거의 없는 세계 초일류들의 승부를 가르는 건 결국 결정적 순간의 ‘심리’다. 어쩌면 박인비의 무심함은 타고난 게 아니라 훈련의 소산일지 모른다.



문득 박인비와 비교하면 우리네 일상은 불쌍하기만 하다. 하루 두 시간만 일한다면 당장 잘릴 게 뻔하다. 8시간 근무는 물론이요, 야근도 밥 먹듯 한다. 쉴 때도 제대로 푹 쉬지 못한다는 하소연이 즐비하다.



그런데 정말 하루 온종일 일만 하는 걸까. 행여 ‘일을 위한 일’을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것 같으니까, 뭐라도 손에 잡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니까, 일이라는 허상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박인비라고 왜 불안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불안을 덜기 위해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하느니, 차라리 불안과 과감히 맞서 아무것도 안 하는 ‘무위(無爲)’를 택한 게 현재의 박인비를 만들었다고 난 본다. 득도(得道)가 뭐 별건가. “쉬는 게 훈련”이란 말은 뭔가 채우고 싶어 안달인 현대인에게 던지는 박인비의 역설이다.



 



 



글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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