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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流의 마르지 않는 깊은 물

중앙선데이 2016.08.28 00:28 494호 27면 지면보기

‘두번째달’의 음반 판소리 춘향가



10년 만에 다시 찾는 제주다. 섬에는 첫 아이의 이름을 딴 나무가 있다. 지난 번 마지막 제주 방문은 아이의 첫돌 기념 가족여행이었다. 의미 있는 기억을 하나 만들고 싶어서 고민하다 나무를 심기로 했다. TV에도 나온 적이 있는 귀촌한 30대 부부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들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인근 수목원에 가서 몇 시간을 고르고 골라 아름다운 배롱나무를 골랐다. 집주인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써서 나무에 걸어주었다. 그 날 이후 ‘제주’하면 내게 아름다운 바다와 이국적인 풍광보다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먼저 떠오른다.


[WITH 樂] '두번째달'의 춘향가

아들의 제주도 배롱나무처럼 10년 만에 음반을 낸 음악인들이 있다. ‘두번째달’ 이다. 보통 ‘에스닉 퓨전밴드’라는 어려운 말로 소개되는데, 쉽게 말하자면 ‘이 팀의 음악적 성격을 꼭 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두번째달’이 10년 만에 내 놓은 두 번째 정규 앨범은 어처구니없게도-놀라움과 반가움의 역설적 표현이다- 판소리 ‘춘향가’다. 결론부터 말하자. 탐라도 만큼 탐나는 음악이다. 전국에 몇 백 명 없을 ‘두번째달’ 골수팬의 입장에서라면 10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하다. 반면 청천하늘에 잔별처럼 많은 대중음악밴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 이들에게는 이제 ‘두번째달’의 이름에 형광팬을 두어 번 그어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



판소리는 우리 것이어서가 아니라 음악 자체로도 인류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다. 아름다운 노래, 흥미 있는 줄거리와 숨겨 놓은 것이 많은 텍스트, 노래하는 광대의 예술혼, 이렇게 삼위일체가 빚어내는 뛰어난 음악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음악 소비자들에게는 외면 받는다. 그런 면에서 ‘두번째달’의 판소리 프로젝트 ‘춘향가’ 는 젊은 음악인들이 대중에게 건네는 마중물이다. 소리의 정통성 여부를 논하며 “이게 무슨 판소리인가” “젊은 친구들이 하면 뭘 한다고” 라는 어깃장을 놓기에는 이들의 작업은 소중하다.



‘두번째달’ 의 판소리 ‘춘향가’는 완창 녹음은 아니고 유명한 노래들만 모아 놓은, 소위 하이라이트 음반이다. 판소리에서는 이런 인기 있는 곡들을 눈대목이라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두번째달’은 두 명의 젊은 판소리꾼 김준수와 고영열을 영입한다. 음반에서는 둘이 나누어 노래하지만 동영상으로는 같은 노래를 각각 부르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두 젊은 소리꾼이 소리를 그리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음반을 듣는 재미다.



춘향가에서 도입부에 눈대목으로 꼽히는 노래가 ‘적성가’다. 봄날의 정경을 그리는 곡이다. 하지만 ‘적성가’부터 이들은 기존 판소리와 다른 가사와 해석을 보여준다. 아일랜드풍의 음악과 재즈, 그리고 민요가 들고 나는 줄 모르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리 오너라 업고노자”하면서 시작되는 모두 알만한 ‘사랑가’는 ‘두번째달’이 자주 담당했던 영화나 TV 속 음악처럼 경쾌한 리듬에 맞춰 “앞태를 보고 뒷태를 보고…아장아장 걷는다.” 후반부의 청량한 코러스와 어우러지는 ‘사랑가’는 춘향과 이몽룡에게 레모네이드 한 잔쯤 대접하고 싶게 만든다.



이에 반해 이어지는 ‘이별가’는 친숙한 멜로디 두 개가 서로 충돌한다. ‘갈까부다’로 시작되는 이별가와 드라마에도 삽입된 이들의 연주음악 ‘얼음연못’이 만난 것이다. 발라드풍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 위로 “갈까부다 갈까부다”하고 시작하는데, 마치 원래 제 짝이었던 듯 두 선율이 잘 어울린다. 특히 왈츠로 시작되는 클라이막스 앞의 휴지부는 소름 돋는 연출이다.



이어지는 음악들에서도 판소리와 결합되는 리듬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신년맞이’나 ‘돈타령’은 블루스 리듬과 합을 맞추고, ‘군로사령’은 마치 드러머가 고수가 된 듯 오로지 드럼 박자에만 맞춰 노래를 한다. ‘쑥대머리’는 기타와 아코디언 반주다. 민요에서 차용된 ‘농부가’는 아이리쉬 리듬에 맞춰 곡이 꾸려진다.



오래전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에서 한류의 앞길을 예언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휘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바비 인형을 양산하는 아이돌 음악 산업이 어느 날 한쪽 날개가 꺽일 때쯤 우리는 마르지 않는 깊은 물을 들여다 봐야 할지도 모른다. 지속가능한 한류가 그 안에 있을 것이고, 분명 ‘두번째달’의 판소리 프로젝트는 반짝이는 달처럼 빛날 것이다. ●



 



 



글 엄상준 KNN방송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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