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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미래 레이서, 시속 130㎞ 질주하다

중앙선데이 2016.07.03 00:36 486호 25면 지면보기



지난달 26일 포르투갈의 남부 휴양도시 포르티망에 위치한 카르토드로모 인테르나시오날(Kartodromo internacional). 카트 레이싱 전용 경기장인 이 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요란한 엔진 소리가 울려퍼졌다. 국제자동차연맹카트위원회(CIK-FIA)가 주최하는 카팅 아카데미 트로피 대회(아카데미 트로피)가 열린 것이다. 이 대회에는 39개국 51명이 참가해 지난달 23일부터 나흘간 치러졌다. 한국의 이찬준(14·서초중)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카데미 트로피 카트 레이싱대회 가보니

2014년 시작된 아카데미 트로피는 각국 자동차경주협회(ASN)가 추천한 만 13~15세의 카트 선수(국가당 최대 2명)들이 참가하며 1년에 세 차례 대회를 연다. 카트는 경주용으로 제작된 1인승 오픈 휠(open wheel·타이어가 바깥으로 튀어나온 형태) 차량이다. 모양은 포뮬러카와 비슷하지만 엔진의 크기가 작고 성능이 떨어져 아이들의 모터스포츠 입문용으로 적합하다. 엔진의 크기를 나타내는 배기량은 100~250cc 사이로 일반적인 오토바이크 수준이다. 카트는 엔진과 기어에 따라 종류가 여러가지로 나뉜다. 크기가 작고 아이들이 타는 차량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6단 기어박스가 있는 수퍼카트의 경우 최고 시속 260㎞의 빠른 속력을 자랑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배기량 125㏄ 보텍스(Vortex) 엔진을 장착한 카트를 주최 측에서 특별 제작해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이찬준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한국을 대표해 아카데미 트로피에 참가했다. 그는 지난 4월 프랑스 에쎄에서 열린 대회 첫 라운드에서 준결선 4위, 결선 7위에 올라 포인트 11점을 얻었다. 모터스포츠의 불모지인 한국 출신 선수가 종합 순위 7위에 오르자 CIK-FIA에서는 대회 소식지에 이찬준을 사진과 함께 비중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찬준은 이번 대회 준결선에서 다른 차량과 충돌하면서 페널티를 받았다. 결국 결선에서 32명의 참가자 중 25번째로 출발선에 서는 악재 속에 최종 순위 15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이찬준은 지난달 12일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 카트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년째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로부터 대회 참가비와 항공비 등을 지원받아 이 대회에 참가했다. 7살 때부터 카트를 타기 시작한 이찬준은 한국인 최초의 포뮬러원(F1) 드라이버를 꿈꾸고 있다.

카트 한국 대표 이찬준(오른쪽)이 경기 후 기술 지원을 맡은 마크 로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원 기자



‘8조원의 가치’ F1 입문 전 단계 대회모터스포츠는 전세계 수억명의 팬을 지닌 인기 스포츠 중 하나다. 이 중 전 세계 5억 2500만 명이 시청하는 F1은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라고 불릴만큼 관심이 높다. 산업적 가치도 크다. 지난해 영국의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F1의 경제적 가치는 50억 파운드(약 7조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F1은 1년 동안 11개팀에 속한 드라이버들이 전 세계 21개국을 돌며 그랑프리 대회를 치러 순위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F1팀을 운영하는 회사는 메르세데스 벤츠·맥라렌·르노·혼다·페라리(자동차 제조사)와 하스(부품사), 레드불(음료 회사) 등 업종이 다양하다. 스폰서로 참여하는 기업도 300개에 이를 정도로 광고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F1은 레이서들에게 꿈의 무대다. 각 팀에는 2~3명의 드라이버가 속해 있다. 매년 20명여 명의 선수들만 F1 그랑프리에 참가할 수 있다. F1 드라이버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선수 개인의 실력 뿐만 아니라 자본과 운까지 따라줘야 F1 드라이버로 성장할 수 있다.



F1 드라이버 대부분은 조기 교육을 받는다. 카이 오베르하이데 CIK-FIA 사무국장은 “1980년대 대부분의 F1 드라이버가 카트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에서 카트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카트로 모터스포츠에 입문해 F3(F1의 3부리그 격), GP2 등 단계를 거쳐 F1에 입성하는 구조다. 유럽에서는 빠르면 세 살부터 카트 운전대를 잡는다. 7~8세가 되면 대회에 참가하고, 꾸준히 쌓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15세 전후에 성인 무대에 발을 디딘다. 루이스 해밀턴(31·영국)·니코 로스베르크(31·독일)·막스 베르스타펜(19·네덜란드) 등 올해 F1 그랑프리 우승자들도 어릴적부터 카트를 탔다. 해밀턴은 2000년 월드 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 자동차 회사 맥라렌으로부터 체계적인 후원을 받아 F1 챔피언으로 성장했다. F1 드라이버 출신 아버지를 둔 로스베르크와 베르스타펜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부터 카트를 접했다.



 



F1 드라이버 육성, 첫발 내딛은 한국일본의 혼다·닛산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도 F1 팀을 운영하고, 많은 기업들이 스폰서로 참여한다. 일본은 지금까지 21명의 F1 드라이버를 배출했다. 2시즌 이상 활약한 선수도 9명에 이른다.



올해 마노 레이싱팀에서 뛰는 리오 하랸토(23)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F1 선수다. 그러나 한국인 F1 드라이버는 아직 없다.



KARA는 올해부터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을 개최하고 유망주의 해외 대회 출전을 지원하면서 미래의 F1 드라이버 육성에 나섰다. 국내 모터스포츠 시장이 크지 않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이찬준의 기술지원을 맡은 마크 로스는 2차례나 유럽 카트 챔피언에 오른 카트 레이서 출신이다. 그는 “이찬준은 근육의 발달이나 레이싱에 대한 열망 등 좋은 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췄다. 일주일에 4번 이상 실전 주행을 할 수 있다면 실력이 급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는 51개의 국내 공인 카트 경기장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국제 공인 경기장만 13개나 된다. 국내에는 영암을 비롯, 서울 잠실, 경기도 파주 등에 카트 경주장이 있지만 공인 경기장이 아니다. 접근성도 떨어져 선수들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 연습을 하기도 쉽지 않다. 대회에 참가하는 카트 선수가 4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저변이 열악해 기업들의 투자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찬준의 아버지 이동원씨는 “아이의 도전 의지가 강하고, 가능성이 보여 계속 지원해줄 생각”이라며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유럽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다면 실력이 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년쯤 1년에 1억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네덜란드 카트 스쿨에 유학을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대회에 중국 대표로 참가한 재중동포 홍욱규(13)의 아버지 홍명학씨는 “유럽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기 위해서는 1년에 5억원 이상 들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재력가 자제들이 F1에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르티망(포르투갈)=김원 기자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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