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의 神이 기타를 칠 수 없다니

중앙선데이 2016.07.03 00:28 486호 27면 지면보기

2015년 5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하는 에릭 클랩튼



커피에서 물맛이 났다. 허전했다. 기타를 메고 있지 않은 그 남자의 모습이 좀체 떠오르지 않았다. 에릭 클랩튼이 더 이상 기타를 칠 수 없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 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초신경증으로 매번 연주가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영국의 EU 탈출에 이어 늙은 영국 악사 한 명마저 록의 만신전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 것이다. 신도 피할 수 없는 게 세월이었나? 그는 한때 ‘기타의 신’으로 불렸다.


[WITH 樂] 에릭 클랩튼

기사를 통해서는 그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하반신 통증이 심해서 연주가 힘겹다고 했다. 물론 악기를 내려놓는다고 당장 음악활동을 접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23번째 정규앨범을 냈고 앞으로 몇 장의 음반을 더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은 내게 싱어 송 라이터이기 전에 기타리스트였다. 그것도 100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가 아닌 금·은·동, ‘세계 3대 기타리스트’ 말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예전에 나는 에릭 클랩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술과 여자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록커로서의 아우라가 부족해 보였다. 교과서 다음으로 음악잡지를 열심히 보던 시절, 소위 말하는 ‘3대 기타리스트’ 중에서 으뜸은 제프 벡이었다.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록 기타계의 파가니니였다. 그가 만들어낸 기타 톤과 변화무쌍한 연주스타일은 마법 같았다. 한마디로 제프 벡은 천재형 기타리스트였다. 연주와 성격이 들쭉날쭉했다는 주변의 증언도 오히려 천재의 신화에 후광이 되었다.



하지만 에릭은 수수한 편이었다. 화려한 속주나 현란한 테크닉, 대범한 실험도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재료의 참맛을 낼 줄 아는 그가 좋아진다. 수수함 속에 담겨 있는 비범함, 평범함 속에 숨겨진 굴곡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그의 연주가 좋아 졌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뿌리는 블루스다. 모든 장르를 자기만의 블루스로 바꾼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다른 블루스 음악인들의 것보다 쉽게 다가온다. 1970~80년대 이후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어울리며 쌓아온 대중적 감각이 그의 음악적 뿌리와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밥 말리의 레게나 스카 리듬에 이어 90년대의 팝과 전자음향도 수용한다. 하지만 결코 블루스라는 고향을 떠나지는 않는다.



2000년대 들어 그의 음악에서는 잘해야겠다는 강박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노자가 말한 ‘대교약졸’(大巧若拙), 즉 큰 기교는 서툴러 보이는 단계까지 온 것일까. 최근 그의 음악은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유년기의 삶에 영향을 준 가족들을 생각하며, 음악적 선배들을 기리며 앨범을 만든다. 사랑과 감사, 존경이 배어 있다. 아들의 손을 잡고 부모 산소를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듯 담담한 마음을 음악에 담는다. 그 잘 친다는 기타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공기 반 소리 반의 가창 테크닉도 잊은 지 오래다.



나이가 들면서 에릭 클랩튼은 그가 존경했던 블루스맨 무디 워터스가 “블루스를 부탁하네, 에릭”이라고 했던 당부를 지키려고 애쓰는 듯하다. 그가 만드는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은 자신의 옛 모습이기도 한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자선공연의 의미도 있지만 블루스 음악인들을 알리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여기 이 사람들을 보라. 이들이 역사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자긍심과 가족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에릭 클랩튼의 음반들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통기타를 연주한 ‘MTV언플러그드’다. 하지만 나는 밴드 시절, 즉 크림이나 데릭 앤 더 도미노즈 시대의 음반을 좋아한다. 물론 ‘461오션 블러바드’나 ‘슬로우핸드’ 등도 두말 필요 없는 명반이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다는 기사를 보니 손길이 가는 음반은 79년 일본 공연실황인 ‘저스트 원 나잇’이다. 카우보이처럼 수수한 옷을 차려입은 에릭 클랩튼이 그의 기타 블랙키를 들고 있다. 100달러짜리 기타 3개를 조립해서 만든 것이다. 나중에 기금 마련을 위해 경매에 나왔을 때 이 악기는 12억원 정도에 팔렸다.



그의 애기(愛器)였던 블랙키는 잡음을 최대한 줄여서 소리가 맑고 또랑또랑하다. ‘원더풀 투나잇’의 라이브 버전도 원곡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들린다. ‘더블 트러블’이나 ‘램블링 온 마이 마인드’ 같은 블루지한 곡에서 에릭 클랩튼과 그의 기타 블랙키가 만들어내는 연주를 듣고 있으면 왜 그가 기타의 신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세 번의 내한 공연을 했다. 먼 바닷가에 산다는 핑계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여태껏 내 뼈아픈 후회로 남아있다. ●



 



 



글 엄상준 KNN방송 PD 90emperor@naver.com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