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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정교하고 편안하고 속시원하게

중앙선데이 2016.07.03 00:34 486호 20면 지면보기
기업과 일반인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가 있다. 자기소개가 따르게 마련이다. 시시콜콜한 물건과 찌질한 이야기 수집이 관심이라고 나를 소개한다. 청중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연사는 그럴싸한 경력과 업적을 강조해야 청중의 관심을 끌지 않던가. 실망의 눈초리가 역력하다. 그 자리에 섰던 연사들에 비해 턱없는 함량 미달이란 의혹을 보냈음이 분명하다. 난 아무렇지도 않다. 작고 사소한 것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오히려 엄청난 것을 끌고 간다는 믿음을 저버린 적 없으니까.



올해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를 떠나는 독일 대사 롤프 마파엘의 강연을 들었다. 독일의 밑심인 강소기업의 역할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사례를 든 첫 번째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플렉시란 개 목줄을 만드는 회사다. 유럽을 이끌고 나가는 힘센 나라의 자랑거리가 개 목줄이라니! 기절할 뻔 했다. 그런데 전 세계 애견가들이 선호하는 최고의 개 줄 70%가 플렉시 제품이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43- 피스카스 가위

이어 연필·칼·안경 같은 물건을 만드는 회사가 소개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 돋보이지 않는, ‘좀스러워’ 보이는 물건들을 만든다. 부강한 독일을 이끌어가는 주역들은 하나같이 작지만 최고를 지향했다.



크고 거창한 일과 관심에만 집중하는 일이 과연 대범함일까. 모두가 폼 나는 역할과 힘을 쫓는다면 나머지는 누가 메울까. 사소해 보이고 작은 것들이 탄탄해야 큰 것이 무너지지 않는다. 멀쩡한 육신을 무너뜨리는 암은 작은 세포의 이상에서 비롯된다. 우스워 보이는 작은 것들은 절대 우습지 않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자주 쓰는 물건일수록 더 아름답고 편리해야사람들은 큰 불편 앞엔 외려 담담하고 의연하게 대처한다. 타던 차가 고장 나면 당연히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지 않던가. 사소한 불편엔 외려 민감해지고 분노마저 치민다. 멀쩡하게 굴러가는 차 속의 에어컨이 고장 나면 짜증은 열 배로 커진다.



가위 같은 물건도 여기에 해당된다. 평소 잘 느끼지 못하지만 쓸 일이 생겼을 때 비로소 안다. 손마디에 번지는 아픔과 깔끔하게 잘리지 않는 문제들을. 이런 부분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통 큰 대한민국 사람이 맞다.



우스워 보이는 물건일수록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사소한 일상의 소모품 취급을 받거나 정성을 쏟은 만큼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용자와 생산자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건 당연하다. 산다는 것은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뒹구는 일이다. 이들 물건에 품격과 더 나은 성능을 기대하는 일은 잘못된 일일까. 자주 쓰는 물건일수록 더 아름답고 편리하며 감각적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일상을 떠난 삶의 시간이란 허공에 부유하는 꿈과 다를 게 없다.



고급품으로 갈수록 감각적 충족의 내용이 중요해진다. 더 부드럽고 매끈하며 자극이 적은 순화의 상태가 바라던 것들이다. 마시고 취할 30년산 위스키는 짧은 연산에 비해 향과 부드러움이 더해진다. 약간의 차별을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가위와 같은 일상의 물건에도 이런 감각적 충족이 가능할까. 오래전부터 핀란드의 작은 기업 피스카스(FISKARS)를 주목했던 이유다.



세계 1등을 만든 핀란드 강소기업의 힘가위 하나로 세계적 명성을 이어온 회사가 피스카스다. 요즘 뜨고 있는 북구의 디자인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회사이기도 하다. 써본 이들이 하나같이 감탄한다. 도대체 가위에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1등의 가위라면 뭔가 다른 점들이 있을 터다.



적게는 손가락 두 개 많으면 네 개를 넣고 다른 한쪽엔 엄지손가락이 들어가는 구멍이 있는 손잡이, 여기에 교차하는 금속 날이 전부다. 인류 역사를 통해 가위의 기본적 구조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디자인을 입히고 잘리는 감촉까지 좋게 만들었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피스카스의 디자이너 올로프 벡스트륌은 6년의 연구를 거쳐 새로운 가위를 만들어냈다. 1967년의 일이다. 주황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가위인 O 시리즈의 출발이다.



지금 보면 코웃음 칠지 모른다. 이 정도 디자인이라면 지금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가위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겉모습이 똑같아 보이는 이유란 간단하다. 원조 격인 피스카스의 뒤를 모두 따라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본제 가위의 우수성을 많이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피스카스의 디자인을 모방하기 전까진 가위 날의 품질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내 손에 맞춘 듯한 손잡이의 그립감50년 전 상황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당시의 가위는 대량생산되지 않았다. 인간공학이란 관점으로 물건을 만들지도 않았다. 피스카스는 세계 최초로 가위의 양산체제를 갖춘 회사로 기록된다. 이런 부분은 만든 회사의 자랑거리이니 우리로선 감흥이 없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손가락에 부담 없으며 힘들이지 않고 물건을 자르는 인체공학 디자인의 완성이다. 지금도 만들어지는 O 시리즈의 현대판인 클래식 가위에 손을 넣어보면 안다. 손가락이 들어가는 손잡이 부분의 굴곡은 대칭면이 없다. 휘어지는 만큼의 각도로 매끈하게 뒤틀려져 있다. 손의 크기에 맞는 손잡이를 선택하면 마치 내 손에 맞춘 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피스카스만 쓸 때는 모른다. 당연한 것일 테니. 다른 가위를 써 보아야만 비로소 안다. 별것 아닌 듯한 플라스틱 손잡이의 모양에서 편안함과 기능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옷감 재단사나 가죽공예 전문가들이 쓰는 수제 가위를 보라. 전문용 가위의 특징이란 모두 손잡이가 얼마나 편하고 피곤을 덜 느낄 수 있느냐에 모여 있다. 이들 가위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피스카스 가위의 우수함이란 결국 손잡이 디자인의 차별성이다.



대량생산의 이점인 저렴한 가격과 멋진 디자인으로 눈을 끈 피스카스의 성공은 당연할지 모른다. 페라리 자동차의 가죽시트를 만드는 장인들마저 피스카스를 쓴다. 감각으로 찾아낸 최고의 도구란 이유일 것이다.



좋은 가위란 깔끔하게 잘 잘려야 한다. 요즘 세상에 잘 잘리지 않는 가위가 있을까. 중국제라도 기본적 성능의 차이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라. 피스카스 가위의 손잡이에 전달되는 감촉은 훨씬 부드럽다. 자르는 종이나 천의 물성이나 두께감이 저항감 없이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얼마나 잘 드는지 하던 일이 수월하게 여겨진다고나 할까. 좋은 도구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 대수롭게 보이지 않던 물건의 존재감은 몇 배나 커진다.



피스카스는 싼 인건비를 이유로 중국에 생산을 맡기지 않았다. 300년 넘게 헬싱키 인근의 작은 도시 피스카스에서 자국의 철강을 숙련된 직원들이 예전의 방식으로 만든다. 가위에 찍힌 ‘메이드 인 핀란드’ 표시가 주는 신뢰는 각별하다. 핀란드의 문화와 정서마저 담겨있는 물건의 아우라 때문이다.



피스카스 가위를 들고 종이를 자른다. 얼마나 촘촘한 간격으로 자를 수 있는지 직접 해 보았다. 가위의 정밀함은 혀를 내두를 만했다. 1mm 폭의 간격도 문제없다.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예리하게 잘리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오래 가위질을 해도 손이 아프지 않다. 커다란 종이를 채 썰 듯 써는 놀이는 그럴 듯했다. 실타래처럼 얽힌 온갖 것들을 시원히 잘라버렸으면 좋겠다. 예리한 가위가 내 손에 들려있어 든 생각이다.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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