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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비극, 기득권 타파와 공동체 복원의 계기 삼아야

중앙선데이 2016.06.05 01:32 482호 2면 지면보기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와 기득권의 적폐가 19세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스크린도어 수리공 김모(19)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일하다 달려오던 전동차에 치여 숨진 사건은 한국 사회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고 있다. 그가 목숨을 잃은 진짜 원인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2인1조 근무나 수리 중 열차 운행 중단 등 안전지침을 깡그리 무시한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행하는 공기업 서울메트로를 사실상 사유화하고 있는 ‘메트로 마피아(메피아)’의 무도한 욕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설

스크린도어 수리를 맡은 하청업체 은성PSD는 계약에 따라 서울메트로 퇴직자를 고용해 매달 422만원의 월급을 챙겨줘 왔다.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의 압력에 따라 스크린도어 수리 인력 125명 중 30%를 스크린도어 관련 기술 보유 여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채용했다. 이에 따라 정작 업무는 월 144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현장 직원인 김씨에게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김씨는 컵라면 하나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의 업무 압박과 위험한 단독근무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쳐야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배경에 서울메트로의 노사 합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정년 연장을 놓고 대립하던 서울메트로 노사는 ‘사측이 퇴직자의 분사 재취업을 알선하고 처우를 보장한다’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서울메트로 퇴직 간부가 운영하는 하청회사가 생겼으며 퇴직자들이 대거 취업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직원들의 땀의 대가로 특권을 유지했다. 한 기업 안에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출신에 따라 임금과 복지가 현저히 다른 ‘노동 신분제’가 있다는 것은 복지도, 정의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철면피한 착취일 뿐이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고 부담을 하청회사 비정규직에게 떠넘긴 서울메트로는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관리 책임이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를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방관했다면 직무유기다. 박 시장은 사과와 함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노동 관행을 정착시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19대 국회 때인 2014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발의했던 ‘생명·안전 업무 종사자 직접 고용법’에 주목한다. 철도·도시철도·항공·운수사업 등 생명·안전과 관련한 업무는 외주 용역을 금지하고 정규직을 직접 고용해 더욱 나은 근로조건·안전환경 아래에서 일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상관없이 안전 분야에선 어떠한 차별도 허용하지 않는 ‘안전 차별 금지’ 조항을 추가하면 ‘위험사회’를 ‘안전사회’로 돌리는 효과가 커질 것이다. 20대 국회는 19대 때 폐기된 이 법안을 재발의해 더 이상의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김씨의 서러운 죽음 앞에 사회적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일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선 거대한 공감의 파도가 일고 있다. 현장에 붙은 숱한 포스트잇은 그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위험사회는 분노사회로 이어진다. 이는 공동체 정신의 해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위험하다. 이래서야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헬조선’ ‘금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각자도생(알아서 살아야 한다)’을 되뇌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나.



차제에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피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경쟁력에만 몰두하기보다 ‘인간 중심’ ‘안전 위주’의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경쟁력이 없으면 낙오하는 게 현실이지만 경쟁력만 강조하다 보면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다.



구의역 사고는 공동체 정신보다 기득권주의가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기득권 때문에 사회 시스템이 제때 혁파되지 못하고 공동체 정신이 무너지면 무고한 희생자가 생긴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켰다. 이제 우리 모두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으로 공동체 정신 복원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꽃봉오리를 피우지도 못하고 비명에 간 19세 청년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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