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완이 엄마 순영 아빠 아닌, 모두가 주인공

중앙선데이 2016.06.05 00:24 482호 29면 지면보기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극중 고현정이 맡은 박완 역할에 종종 빙의하는 때문이다. 분명 엄마와 잘 해보려고 전화했는데 결국은 짜증을 내고, 신경 건드리는 말을 내던지며 속을 박박 긁어본 경험, 누구나 있지 않은가. 굳이 37살에 유학까지 다녀와서 시집도 안 간 외동딸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마 평범한 드라마라면 고두심은 ‘장난희’라는 극중 이름이 아닌 ‘완이 엄마’라고 불렸을 것이다. 이미 그는 숱하게 시청자들을 웃고 울게 했던 국민 엄마이자 일찍 시집간 딸이 있다면 할머니 역할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모두 그녀를 난희라고 부른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고유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란 뜻이다. 즉 누구와의 관계에 기대서 형성된 자아가 아닌 그 사람으로써 온전하게 존재한단 얘기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미덕

당연히 난희는 사건의 발단이나 전개 과정에서 양념처럼 등장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서사를 지닌다. ‘친구년’이랑 붙어먹은 남편과 위기도 겪고 그 때문에 동문회에서 엄마 오쌍분(김영옥)까지 합세해 친구 영원(박원숙)의 머리채를 잡고 싸울 만큼 쌩쌩하다. 놀랍게도 극중에선 영원의 서사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승승장구하던 광고모델이자 배우였던 왜 그녀가 미국으로 떠났는지,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왜 여전히 싸우면서도 난희 주변을 맴맴 돌 수밖에 없는지 모든 행동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조희자(김혜자)는 남편은 먼저 죽고 없지만 여전히 소녀 같고, 문정아(나문희)는 일흔이 넘었지만 남편 김석균(신구)이 신혼 때 했던 세계여행 약속을 철썩같이 믿으며 살아간다. 솔직한 게 병인 오충남(윤여정)은 희자를 좇는 이성재(주현)에게 “나 오빠 좋아해”라고 말하며 황혼의 삼각관계를 구축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모두 누구의 엄마, 혹은 아빠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마치 우리 옆에 살고 있는 이모 삼촌들처럼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이리도 생생하게 다가오는데 말이다.



드라마를 집필한 노희경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노년이야말로 진짜 치열한 것”이라고 밝혔다. “내 목숨이 오늘 아니면 내일 당장 끊어질 수도 있기에 그들의 삶을 제대로 관찰하고 까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작정하고 썼기에 여전히 흠칫흠칫 놀란다. “장숙이 풍 맞은 거 몰라? 호식이 죽은 지가 언젠데” 같은 대사가 난무하고 “죽을 때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어야지”라며 함께 죽을 것을 다짐하는 ‘센’ 대사를 받아들이기가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단체 영정사진을 찍고 요양원에 갈 때는 웃으며 가겠다는 어르신들을 보며 나 역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의 주인공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바로 자신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고, 그저 나의 엄마로 살아주길 또 나의 아빠로 살아주길 너무 자주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이번 주말에도 나는 드라마를 보며 다시금 “부모님께 잘해야지”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실없는 소리를 건넬 것이다. 그리고는 장담컨대 이내 싸우게 될 것이다. 마치 극중 완이처럼, “난 잘 해보려고 했는데 엄마가 모든 것을 망쳤다”고 투덜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엄마도 엄마 인생의 주인공임을. 분명 그녀도 “저딴 걸 딸년이라고”혀를 차며 나를 원망하고 있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현실은 드라마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 화가 날 땐 한발짝 떨어져서 장난희씨를 지켜보고 나도 가끔은 엄마의 딸로 조연을 자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글 민경원 기자, 사진 tvN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