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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회사, 글로벌 기업 되려면 서열문화부터 바꿔야

중앙선데이 2016.04.24 01:18 476호 8면 지면보기

30년 전인 1986년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의 국제금융부에 취직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 시절 활동했던 동아리 ‘아이젝’을 통해 한국 기업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한국 문화에 매료돼 30년 가까이 한국에 눌러 살고 있다. 여러 기업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한국 기업의 문화와 특성을 체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예 본격적인 컨설팅업에 나섰다. 벡티스(Vectis Corporation)란 회사를 세워 한국 기업의 글로벌 전략을 짜주는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2년 전엔 20·30세대를 겨냥한 글로벌 취업 가이드북인 『글로벌 취업을 원하면 시몽을 만나라』를 내 히트를 쳤다. 캐나다인 시몽 뷔로(Simon Bureau) 벡티스 대표 얘기다.


[손지애의 톡톡 인터뷰] 컨설팅 업체 벡티스의 시몽 뷔로 대표

운 좋게도 그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에 그 선두에서 성장을 이끌었던 대표 기업들과 일할 수 있었다. 통역 없이 몇 시간이고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도 수준급이다. 그런 그가 요즘 한국 기업의 앞날을 걱정하는 강연을 많이 하고 다닌다. 한국 기업들을 컨설팅하면서 한국 기업문화와 조직에 근본적 수술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어서란다. 그는 정보기술(IT)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소는 기업의 서열문화라고 지적한다. “글로벌 IT기업은 우수한 세계 각국의 인재를 데려와야 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이런 인재를 일시적으로 채용할 순 있지만 오래 데리고 있진 못한다. 가장 큰 이유가 선후배, 나이, 서열을 따지는 조직문화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을 꿈꾼다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국 기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나. “한국 기업들은 내가 지켜본 1980년대 이래 고속 성장을 해왔다. 한국 기업, 한국민은 열심히 노력한 결과 글로벌 경제의 선도주자가 됐다. 여태까지의 성과도 외국을 향한 적극적 확장,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개척 정신,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글로벌 무대의 위치를 획득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더 값싼 노동력, 더 경제적인 가격 구조를 제공하는 외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이제는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 경쟁해야 한다. 한국 회사들이 글로벌 리더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보유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나. “오늘날 글로벌 인재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취업하고 있다. 매우 유동적인 유목민인 셈이다. 이러한 글로벌 추세에 살아남고 성공하려면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를 지속적으로 데리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 기준의 대우를 받지 않으면 이들은 한 회사에 계속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회사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지도 않는다. 이게 한국 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들을 보유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성공적인 IT 회사가 차세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적인 엔지니어를 구한다고 치자.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 엔지니어를 찾아 좋은 임금, 휴가, 생활비 등의 조건을 제시해 채용하게 된다. 인사부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직급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능력으로 따지면 이 직원은 최고경영자 수준이지만 나이가 28세라면 책임자로 앉히는 것이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선후배,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조직, 서열이 중요한 조직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에선 34%의 직장인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회사에서는 나이에 걸맞은 직급을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 직급에 알맞은 책상과 그 책상의 위치를 정해준다. 그러면 이 직원은 이 회사가 자기처럼 유능하고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2년 후 계약이 끝나면 이 회사의 경쟁 회사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갈 것이다. 나이가 28세라는 것이 단점이 전혀 아닌 회사로 갈 가능성이 높다. 선후배 따지는 서열문화가 기업의 글로벌 경영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싸이월드의 프랑스 수출 건에도 관여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한국의 기술만 보고 그 기술을 성공시킨 한국 시장의 요인과 사회적 배경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이월드가 한참 인기 있었던 2006년께 한 프랑스 회사가 그 기술을 프랑스에 도입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엔 모든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있어 사진을 찍고 업로드할 수 있었지만 프랑스는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었다. 한국의 인터넷 속도도 프랑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결국 그 회사는 싸이월드는 한국에만 가능한 서비스고 프랑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서비스에서도 가족 중심 사회인 한국에선 1촌, 2촌의 개념이 중요하지만 외국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도 차이점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컨설팅을 하면서 느끼는 장애 요인은 뭔가. “접근법이나 태도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한국 회사들이 뛰어나지만 글로벌 사고방식에서 아직도 한국 기업들은 발목을 잡히고 있다. 한국 회사들은 ‘우리는 한국에서 성공했으니 세계 어디 가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다. 예컨대 싸이월드는 학연이나 지연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캐나다만 해도 초등학교 동창 딱 한 명만 아직도 알고 지낸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싸이월드가 미국 진출 1년 만에 실패하고 돌아오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한국 시장과 독립된 전략을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



캐나다 출신인 시몽 뷔로 대표는 한국 기업의 문화와 풍토를 뼛속까지 이해하는 흔치 않은 외국인이다. 오랜 한국기업에서의 생활이 밑거름이 됐다.



그가 기억하는 출근 첫날의 모습은 이렇다.



“과장은 사무실 맨 뒤에 앉고 책상들이 나란히 앞으로 놓여져 있고 신입사원인 내 책상이 가장 앞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갑자기 전 회사에 음악이 나오더니 직원들이 벌떡 일어서서 체조를 하더라는 것이다.자신은 절대로 따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에 매료됐고 한국인처럼 돼갔다고 한다. 아침 체조를 하면서 체력을 조금이나마 보충했고 퇴근 시간을 넘겨 야근하는 일도 잦았다.



-한국 청년들의 해외 진출도 적극 추천하고 있다. 한국 청년들은 경쟁력이 있다고 보나. “한국 청년들을 훈련시키다 보면 해외 인력 시장에 대한 실질적 지식도 부족하고, 또 이러한 면에서 커리어 멘토도 없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내가 이러한 역할을 하려고 한다. 이 청년들에게 어떻게 해외 취업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질적 정보를 제시해 주고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이들은 그야말로 글로벌한 경력과 사고방식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사고와 지식을 겸비한 이 세대는 미래의 한국을 다시 글로벌 무대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본다. 청년들의 해외 취업은 단지 실업률 해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글로벌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손지애 이화여대 초빙교수?jieaesoh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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