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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바꿔주는 두 동그라미의 힘

중앙선데이 2015.10.25 00:28 450호 22면 지면보기
마흔이 넘으면 신체적 노화가 찾아온다. 첫 번째 증상은 대개 시력 저하다. 하루가 다르게 침침하고 흐릿해지는 눈을 예전의 상태로 돌릴 방법은 없다. 누구나 노화의 한탄은 깊어만 간다. 늙지 않으려 발버둥 쳐 보아도 젊음은 한때의 찬란함으로 머무를 뿐이다.



책을 읽기 위해 맞춘 안경은 이제 조금 멀리 떨어진 컴퓨터 화면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눈 찌푸리고 째려봐도 잔글씨는 가물가물하다. 짜증으로 일상을 반복할 수 없다. 각각의 용도에 맞는 안경을 따로 갖추게 된 슬픈 이유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27- 벨기에 테오(theo) 안경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깥을 돌아다니기 위해선 먼 거리가 잘 보이는 안경이 또 필요하다. 보완을 위한 물건은 보완의 새끼를 쳐 그 수를 늘려갔다. 읽고 보아야 작업거리가 생기는 작가 나부랭이의 이면은 번잡함으로 가득하다. 책상과 테이블 곳곳에 손에 쉽게 잡히도록 놓아둔 안경은 무려 열 개를 넘겼다.



노화의 서글픔 뒤덮는 개성의 호사기왕 안경을 써야 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온갖 형태와 색깔을 갖추어 즐기면 그만이다. 그저 그런 안경은 사절이다. 노화의 서글픔을 얼굴에 덧댄 개성의 호사로 맞서볼 참이다. 늘어난 안경은 의지의 흔적들이다. 안경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알면 알수록 그 폭과 깊이가 엄청났다. 눈앞에 보이는 안경은 인간이 살아온 온 시간을 담은 완결판이다.



독일 광학산업의 중심지였던 예나의 칼 자이스 광학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전시품의 상당수는 바로 안경이었다. 안경의 역사가 곧 광학의 역사라 할 만했다. 인간에게 절실했던 시력 보완의 수단으로 렌즈와 안경이 발전되어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대에 따라 재질과 형태의 변화가 눈에 띈다. 외눈 안경에서 지금의 패션 안경에 이르는 전 과정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단순하게 보이는 안경에 담긴 기나긴 역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불편의 극복을 넘어 아름다움을 녹여내려는 인간의 지향점은 변한 게 없다.



안경잡이의 관심은 어딜가나 새로운 제품에 머무르게 마련이다. 일본과 프랑스, 독일을 드나들 때마다 안경점을 찾았다. 쇼윈도에 진열된 안경은 왜 이리 멋지게 보이는지. 보석마냥 투명한 광채와 선명한 색채로 빛나는 안경은 자체로 감각의 대상이다. 인간이 쓰고 걸치는 물건엔 아름다움의 꿈이 깃들어 있다. 궁극의 욕망은 언제나 꿈과 맞닿아 있게 마련이다.



파리 마레 지구에 프랑스 안경 하우스 브랜드인 ‘안네 발렌틴’ 매장이 있다. 들어가 본 안경점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다. 안경점 쇼윈도엔 정작 안경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맞춤 정장을 취급하는 고급 패션 스토어 분위기랄까, 안내한 직원과 테이블에 앉아 일대일 상담과 추천을 받아 자신만의 안경을 선택하는 식이다. 검정 벨벳 천으로 감싼 트레이에 담아 보여주는 직원에게서 안경을 대하는 태도를 읽는다. 안경의 재료인 셀룰로이드와 금속은 표면처리와 굵기, 색채를 달리해 천변만화의 표정을 짓는다. 안경을 쓰고 벗으며 벌이는 거래의 과정이 이토록 즐거울지 몰랐다.



안경을 시력보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할 일이 별로 없다. 렌즈를 고정시킬 틀에 불과한 탓이다. 안경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안경은 인상을 바꾸는 적극적인 방법이란 점이 중요하다. 타고난 얼굴은 바꾸지 못한다. 의지로 얼굴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안경을 쓰는 것이다. 안경은 적어도 얼굴 면적의 1/4을 차지한다. 안경을 만드는 업체의 대응이 이 부분을 놓칠 리 없다. 쓸 만한 안경을 만드는 브랜드의 대부분은 안경 대신 ‘아이 웨어’로 부른다. 얼굴에 걸치는 옷이란 개념에 더 가깝지 않을까.



대칭 구조 깬 창의적 디자인 눈길생각을 바꾸면 할 일이 많아진다. 기능을 넘어 감각되고 개성을 드러내는 표현 방법으로 여기게 된다. 이전에 없던 재질과 형태, 색채가 돋보이는 새로운 디자인의 안경이 쏟아져 나온다. 개성적인 하우스 브랜드 안경을 찾게 되는 이유다. 낯선 신예들은 파격의 모습으로 신선하다. 최근 서북구의 몇 나라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등 모두 디자인 강국들이다.



이들의 안경은 하나같이 독특함으로 가득 차 있다. 첨단 소재를 활용해 이전의 것이 갖지 못한 형태를 보여준다. 가는 철사만으로 디자인한 제품도 있다. 가늘지만 필요한 강도가 유지되는 재질 확보로 가능해진 일이다. 다리와 본체의 구분이 없는 끼워 맞춤식 철판 안경도 나온다. 도대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얇은 철판과 철사가 경첩을 대신하는 안경도 있다. 가볍고 질긴 금속소재인 티타늄을 성형시켜 현란한 색채를 입힌 개성파도 등장했다. 안경의 춘추전국 시대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1㎜의 오차가 얼굴을 죄고 1g의 무게 차이가 두통으로 번지는 민감한 물건이 바로 안경이다. 제 얼굴에 꼭 맞는 안경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작지 않다. 안경도 사람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겪어봐야만 알게 되는 진가는 시간을 통해 선명해진다. 덥석 사들인다고 해서 제 것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저 만의 안경은 따로 있다. 우연한 조우는 쉽지 않다. 필연적 노력이 따라야 한다. 관심으로 흐름을 알거나 선택의 안목을 키워야 제 손에 들어온다. 많이 팔리는 물건과 좋은 안경은 따로 있다.



세상의 좋은 것은 제 발로 다가와 안기는 법이 없다. 발품 팔아 돌아다니고 지갑을 열어 사들이고 써 봐야만 제 것이 된다. 안경의 호사도 거저 되는 게 아니다. 노화의 서글픔이 가려지고 선택의 즐거움으로 기쁨을 느껴야 노력의 보람이다. 힘에 버거운 대단한 물건의 기대는 접었다. 내 손으로 선택한 안경에서 스몰 럭셔리의 충족감을 발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삶의 풍요란 양이 아니라 내용의 충실함에 있다.



유난을 떨어 쓸만한 안경을 찾아냈다. 벨기에의 하우스 브랜드 테오(theo)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파격의 형태와 강렬한 색채를 입힌 안경으로 이름 높다. 곡선으로 휘어진 브릿지를 한쪽은 직선으로 깎아 대칭구조를 깬 창의적 디자인이 한 예다. 다양한 모델은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형태로 마감된다. 비교를 거부하는 듯한 독선적 행보는 안경에도 여전히 할 일이 많음을 보여준다.



테오의 빈티지 컬렉션을 샀다. 렌즈가 작은 둥근 테다. 가벼운 티타늄 재질에 보라색과 검정색이 섞인 투 톤 컬러의 배합이 좋았다. 귀에 닿는 부분은 금속의 차가움을 녹일 검정 플라스틱으로 덧댔다. 어느 부분 하나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 넓적한 귀걸이가 안경의 하중을 분산시켜 콧등이 필요 이상 눌리는 피곤함도 없다. 아저씨가 튀어 보이려 일부러 보라색 안경으로 쓰고다니는 게 아니다. 이토록 멋진 안경을 내 얼굴이 소화하는 것을 즐기고 있을 뿐이니까. ●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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