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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상상, 잔인한 현실 그 사이 어딘가에 집시가…

중앙선데이 2016.12.25 00:06 511호 8면 지면보기


‘매그넘 포토스’ 회원이자 체코 출신의 프랑스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Josef Koudelka·78)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17일부터 2017년 4월 15일까지 서울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집시(Gypsies)’다. 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으로 불리는 ‘집시’ 시리즈 111점 전작을 모두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다.


한미사진미술관서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 연 요세프 쿠델카

프라하 공대를 나와 항공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연극 공연과 집시를 촬영하던 그는 1968년 소련의 프라하 침공을 찍어 ‘익명의 프라하 사진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렸다. 70년 영국에 망명을 요청한 뒤 체코를 떠나 무국적자로 세상을 떠돌다 프랑스에 귀화했다. 로버트 카파 금상(1969), 프랑스 국립그랑프리사진상(1987),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사진상(1991년), 국제사진센터 인피니티 상(2004) 등 사진 작가로서 수많은 영예를 얻었다.



전시 공간을 까다롭게 따지기로 유명한 쿠델카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것은 미술관의 소장품 덕분이다. 인화를 전담했던 마스터 프린터 보야 미트로빅에게 은퇴 선물로 주기 위해 쿠델카가 직접 고른 24점의 사진 묶음을 미술관이 경매를 통해 어렵게 입수했고 이것이 쿠델카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쿠델카를 사진심리학자인 신수진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이 만났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Josef Koudelka/Magnum Photos



이번 연말엔 유난히 몸과 마음이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뿌듯한 되새김을 하거나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에 마음 살랑일 여유도 없이, 사람이거나 조류거나 독감 소식만 무성하다.



세상만 탓할 일도 아니다. 본디 온 세상이 우울해 보일 땐 내 마음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오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책임을 벗어던지고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일찍이 전혜린이 그랬듯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의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胃)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는 곳에서 집시처럼 한없이 느슨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집시라는 단어는 자유·방랑 등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 이는 개인으로서 집시의 삶이나 일상 같은 ‘현실’과는 별개로, 그 단어가 자극하는 감성 또는 사고와 관련된 생각의 연결고리가 만들어내는 ‘경험’의 문제다.



솔직히 한국에서 집시를 상상한다는 것은 애초에 비현실적인 일이다. 주로 유럽에 거주하는 집시들을 만날 일이 드물다 보니 일상에서 집시를 자주 접하는 유럽인에겐 우리의 인상이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보일 것이다. 현실 속 집시는 질서의 테두리 밖을 떠돌며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이기 십상이다. 심지어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인터넷으로 집시 피하는 법을 열심히 숙지한다.



하지만 나에게 집시의 현실은 저 멀리 있고, 집시에 대한 상상은 오히려 가깝다. 고백컨대 나의 집시에 대한 단상들은,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렇듯,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글과 보아온 사진으로부터 얻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집시에 관한 것이라면 단연 요세프 쿠델카의 사진들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인정해야겠다. 낭만적 상상과 잔인한 현실 사이 어딘가에 요세프 쿠델카의 ‘집시’가 있다.



1970년 망명 이후 상당 시간을 무국적자로 살았던 팔순 현역 노장의 족적은 이미 그를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기에 손색없이 만들었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던 ‘프라하의 봄’을 촬영해 익명으로 해외 언론에 알렸고, 다음해 국제기자클럽이 선정한 ‘로버트 카파 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유럽으로 망명한 후 71년부터 국제자유보도사진가그룹인 매그넘 포토스 소속 작가로 활동해 왔다. 『집시』(1975), 『망명』(1988), 『혼돈』(1999)으로 이어지는 그의 사진집들은 그를 독보적 세계를 지닌 작가로 인식시켰다. 2006년 프랑스 로베르 델피르 출판사에서 발간된 그의 첫 번째 회고 사진집은 7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프라하 사진이 소련의 침공에 대한 생생한 기록인 동시에 폭력과 강압에 대한 혼란과 분노의 해설서로 오늘날까지 주목받는 대표작이 되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사진의 시작은 ‘집시’ 연작이다. 발표는 프라하 사진들보다 늦은 197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이루어졌고, 당시에 발간된 동명의 사진집이 2011년에도 증보판으로 출간되었을 정도로 여전히 많은 이를 매료시키고 있다. 그 힘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단순한 집시가 아닌 인생과 인간 존재를 말하다]

“나는 그냥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입니다. 나는 현실을 나의 목적을 위해 이용했어요.”



물론 그의 사진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국인 체코의 모라비아와 슬로바키아 지역에서 시작해 루마니아·헝가리·프랑스·스페인 등지에서 동서 유럽 집시들의 모습을 광범위하게 담은 사진들 속에는 쉽게 마주할 수 없는 그들의 생활 속 단편이 녹아있다. 그런데 정작 그 사진들 앞에서 나는 뻔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다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군요.” 특별한 삶에 깃든 평범한 이야기가 세월이 지나면서 더 어둡게 정돈된 사진들로부터 들려 나왔다.



사실 그들이 집시라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쿠델카가 그들을 피사체로 선택한 이유 역시 집시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집시들의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뿐이라고 했다. 집시라서 찍은 것이 아니라 집시라서 더 잘 보이는 인생과 인간 존재,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내 사진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집시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도 나의 집시 사진을 좋아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가 자신의 작품을 관객 앞에 내놓는 자세는 두말 할 것 없이 프로의 그것이다. 주어진 전시 공간을 탐구하고 사진의 순서와 위치까지도 직접 결정했다. 도록에 들어가는 모든 글과 디자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의견을 밝히고 완성될 때까지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지니는 소통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련된 전시장에서 그는 말을 아꼈다.



 

[“좋은 초상 사진은 그를 찍은 나를 보여주는 것”]

한참 동안 조용히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맘에 드는 질문에만 대답하는 어르신은 슬그머니 멀어지고 오십 년 전 카메라 뒤에 숨은 청년의 서늘한 눈과 마주했다.



다시금 울렁거리는 형태의 연속성과 단호한 빛을 보았다. 보는 이를 긴장시키는 날선 프레이밍과 교차하는 시선, 분방한 라이팅과 깊은 공간감을 넘어서 지난한 삶의 고단한 파편, 선택의 권리가 없는 자들의 무기력함, 홀로 또는 함께 겪는 고통,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결국 젊은 쿠델카를 이끌었던 건 그 자신 속에 꿈틀거리는 생에 대한 불안과 불신, 그리고 그 와중에도 성성했던 치기였는지 모르겠다. 번득이는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사나이, 날아갈 듯 후광을 입은 소녀, 널브러진 듯 균형을 잡고 선 사람들 앞에서 “가장 좋은 초상사진은 ‘그를 찍은 나’를 보여주는 겁니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다. 사진 속 집시들은 곧 젊은 쿠델카요, 몸이 늙어도 사라지지 않는 치기와 열정이며, 생에 허덕이는 가여운 인생이고, 시간 앞에 무력한 작은 영웅이며, 오늘도 유랑을 꿈꾸는 나 자신이다.



요세프 쿠델카가 직접 진두지휘하고 세계적 명성을 지닌 스태프들이 실행한 전시의 모든 과정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전시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거장’의 홍수 속에 그마저도 미덥지 않다면, 그저 나 자신을 믿어보는 것이 답이다.



쿠델카의 ‘집시’가 과거의 시간 속에 박제된 사진이 아닌 생명력 넘치는 명작으로 존중받는 것은 오래전 그의 눈 속에 비쳐진 현실이 지금 내 마음에도 빛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운 111점의 사진들, 그 안에서 만난 ‘집시’는 오늘도 내 안에서 유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젊음과 나이듦, 비루함과 당당함, 그리고 자유와 고독의 사이 어딘가를 헤매며 끝나지 않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



 



 



글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artfule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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