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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84억 알바비 체불 이랜드, 사과 주체가 ‘그룹 임직원 일동’이라니

중앙일보 2016.12.23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장주영 산업부 기자

장주영
산업부 기자

사과는 했지만 분노를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랜드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는 건 그래서다.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는 애슐리 등 외식 프랜차이즈가 지난 1년간 아르바이트생 4만4360명에게 지급해야 할 83억7200만원의 임금을 주지 않았다. 이랜드그룹이 21일 공식 사과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관계 없는 직원들까지 끌어들여
불매운동 시작되고서야 공식 반응
구태 털어내 신뢰 찾는 계기되길


이랜드 그룹은 사과문에서 “외식사업부의 중요한 일원인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좋은 근로 환경을 제공해 드리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하고,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드렸던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적었다. “고용노동부 현장 점검 결과에 따라 선정된 미지급금을 지급하고 있고 누락되는 직원이 없도록 피해 구제를 계속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랜드그룹은 지난 10월 국정조사에서 임금체불 의혹이 제기됐을 때 외식사업부인 이랜드파크 명의로 짧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후 침묵을 유지해오다 지난 19일 고용노동부 현장점검 결과로 의혹이 사실로 판명나고 이틀 뒤에야 사과문을 다시 냈다. 불매운동이 슬슬 시작되던 시점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 사과로 오인받아도 할 말이 없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서울 이랜드파크 앞에서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서울 이랜드파크 앞에서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사과의 내용과 형식도 아쉽다. 사과문은 ‘이랜드 그룹 임직원 일동’으로 끝을 맺는다. 사과의 주체를 이랜드그룹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이랜드그룹은 외식 프랜차이즈 20개, 패션 브랜드 69개를 거느린 준 재벌급 기업이다. 해외 근무 인원까지 치면 임직원만 4만 명이 넘는다.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직원 상당수가 사과행렬에 동참한 셈이다.

전국 360여 개 매장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임금이 체불됐다. 15분 단위로 임금을 쪼개고, 이른 퇴근을 종용해 월급을 깎았다. 이를 주도한 게 각 점포의 중간 관리직 직원들일까.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였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이는 윗선의 지시나 적어도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임금체불 문제는 ‘열정페이’청년실업’‘갑질논란’ 등 국민의 미묘한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임직원 일동 명의로 ‘우리가 모두 죄인’이라는 사과는 사람들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사과는 주체와 대상이 명확할 때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랜드그룹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아르바이트 근퇴 점검이나 임금 쪼개기 문제는 초창기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있었던 일”이라면서 “이랜드가 프랜차이즈 규모를 양적으로는 성장시켰지만, 과거의 관행을 털지 못한 것이 화를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해법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태를 털고 가는 것이다. 그래야 신뢰가 회복된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1월까지 1차로 체불임금 지급을 완료하고, 연락이 되지 않는 분들에 대해서도 수소문해서 2월까지는 사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되어서는 안된다.

약속대로 체불임금 지급이 됐는지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차후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도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는 것도 방법이다. 이랜드파크의 박형식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고, 잘못된 모든 관행을 뜯어고치겠다”고 말했다. “사태가 해결되는 대로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도 했다.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

장주영 산업부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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