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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메모·사진에 드러난 화가들 뒷얘기

중앙일보 2016.12.23 00:58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우환 화백이 33세 때인 1969년, 이세득 선배에게 보낸 친필 편지.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이우환 화백이 33세 때인 1969년, 이세득 선배에게 보낸 친필 편지.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푸른색 만년필 글씨가 달필이다. 이우환(80) 화백이 선배 이세득(1921~2001)에게 1969년 4월 3일 보낸 서한이다. 편지지 두 장을 빼곡 채운 내용은 좀 어둡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이 화백은 1968년 7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현대 회화전’에 고국에서 온 화가 19명과 함께 출품했는데 몇몇이 자신의 작품을 두고 논란을 벌였고, 그 일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근·현대 작가 아카이브 400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서 전시

“선생님(이세득)께 얘기를 일체 안 해서 그렇지 실은 저를 앞에 두고 직접 호령을 하는 선배도 있었고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런 그림 집어치우라고 근대미술관 모씨에게 청원을 올린 작자도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서글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해방 후 23년 만에 한국 현대회화가 일본에 본격 소개된 비중 있는 전시회에 이런 뒷얘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편지 한 통으로 밝혀진 셈이다. 미술사 연구에는 작품과 작가 연구 이외에도 다양한 문서와 자료 등의 기록보관소인 아카이브(정보 창고)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술 아카이브의 메카라 불리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관장 김달진)이 이런 자료의 중요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2016 작가가 걸어온 길-화가와 아카이브’를 기획한 이유다. 지난 20일 개막한 전시회는 근·현대 작가들이 남긴 아카이브 400 여 점과 작품 4점을 훑으며 화가 삶과 작품 활동의 이면을 읽어 그들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직접 쓴 이력서와 강의 노트 등 육필자료, 가족과 제자 등 주변인에게 보낸 친필편지, 전시 방명록, 사진과 스크랩북, 정기간행물과 단행본 등 꼼꼼하게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전시를 기획한 김달진(61) 관장은 40년 넘게 미술 자료만 수집해 갈무리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6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 부문을 수상했다. 전시는 내년 4월 29일까지. 02-730-6216.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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