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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는 태영호, "탈북 선배들" 어디서 뭐하나?

중앙일보 2016.12.23 00:29
태영호 전 북한 공사가 오늘(23일) 한국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지난 8월 영국에서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뒤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아 왔다. 태영호 전 공사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근무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개활동을 하겠다고 말해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약 20여 명의 고위급 탈북자가 국책 연구기관에서 북한 관련 연구와 자문을 한다고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말했다. 그들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태영호 공사(오른쪽)가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 앞에 서있다. [사진 BBC 캡처]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태영호 공사(오른쪽)가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 앞에 서있다. [사진 BBC 캡처]

 
 대표적인 탈북인사로는 고영환 씨가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으로 근무중이다. 고 부원장은 평양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했고 콩고 주재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1989년 탈북했다. 북한을 벗어난 해외공관에선 탈북이 용이하기 때문에 부원장 같은 외교관 출신이 많다.

같은 연구원에 근무하는 현성일 수석연구위원은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3등 서기관으로 있다가 1996년 탈북했다. 현 위원은 김일성종합대학교 외국어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했는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인 현철해 차수의 조카로 알려졌다. 북한의 대표적인 핵심계층으로 평가된다. 올해 11월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남북하나재단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조명철 제19대 국회의원도 김일성종합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했지만 1994년 탈북했다. 한국에 와서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연구한 바 있으며 통일교육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조명철 국회의원(오른쪽)이 2012년 10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하기 위해 목영만 국정원 기조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감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조명철 국회의원(오른쪽)이 2012년 10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하기 위해 목영만 국정원 기조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감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 밖에도 1998년 탈북한 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북한사무소 3등서기관 김동수, 싱가포르에서 무역업무를 담당하다 2003년 탈북한 김광진 등 다수의 탈북자들이 국책 연구원에 소속되어 공개강연 등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에서의 직위와 교육수준 등을 고려해 정착할 소속 기관의 직급을 부여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주로 자문역할을 하다가 어느 정도 적응이 완료된 이후에는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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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고위급 탈북자들은 북한의 정책결정 과정에 관여했기 때문에 유익한 정보가 많다”면서 “북한에서 주요 사건이 있을 때 의견을 물어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다수의 탈북자들은 현장업무 경험만 있을 뿐 연구 경험은 부족하다. 어느 정도 정착하면 대학원에 진학해 정치학 또는 북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왼쪽)와 김덕홍 전 노동당 자료실 부실장은 베이징 주재 한국영사관에 망명한 지 67일 만인 1997년 4월 20일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사진 중앙포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왼쪽)와 김덕홍 전 노동당 자료실 부실장은 베이징 주재 한국영사관에 망명한 지 67일 만인 1997년 4월 20일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사진 중앙포토]

 
 태영호 전 공사는 대중에 노출되어 북한의 위협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공개활동을 하겠다고 과감히 밝혔다. 이 때문에 신변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황장엽 노동당 전 비서가 1997년 2월 12일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탈북한 직후 북한은 바로 보복에 나섰다. 황 전 비서가 탈북하고 3일 뒤에 발생한 이한영 피격사건이다. 이한영은 2월 15일 북한이 보낸 공작원의 총격을 받고 며칠 뒤 끝내 숨졌다. 그는 1982년 탈북한 뒤 한국사회에 정착해 북한 권력 핵심계층의 치부를 폭로했었다. 이 사건은 황장엽 탈북으로 화가 난 북한의 화풀이였다. 또한 황 전 비서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황 전 비서는 2010년 사망할 때까지 정보기관이 제공한 안가에서 철통경비를 받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남이 앉아있고 김정남을 맡아 키운 성혜랑(왼쪽)과 그녀의 자녀인 이남옥(가운데), 이한영(본명 이일남)이 뒤쪽에 서있다. [사진 중앙포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남이 앉아있고 김정남을 맡아 키운 성혜랑(왼쪽)과 그녀의 자녀인 이남옥(가운데), 이한영(본명 이일남)이 뒤쪽에 서있다. [사진 중앙포토]


 당과 군 출신 고위급 탈북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정착과정을 숨기고 있다. 탈북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되었거나 북한에 남겨진 가족의 안전문제 등 기타 공개할 수 없는 사유가 있을 경우 비밀에 부친다고 한다. 이런 경우 최소한 3~4년 정도 지나 대외활동을 시작한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남성욱 교수는 “태 전 공사는 이미 입국하기 전부터 사진이 공개되고 정착과정이 노출되었다”면서 “경호 등 적절한 보안조치가 가능하다면 공개활동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나원에서 교육받는 탈북자[사진 중앙포토]

하나원에서 교육받는 탈북자[사진 중앙포토]


 태영호 공사와 같은 고위급 탈북자들은 하나원 교육과 같은 정착교육과정을 생략하거나 간단한 교육을 받고 곧 바로 한국사회로 나온다. 그러나 일반적인 탈북자들은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탈북 과정 중 중국 등에 체류하면서 시장경제를 체험했기 때문에 한국사회 적응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에 비해 고위급 탈북자들은 국책기관에 취직해 직업을 보장받지만 오히려 경험 부족 때문에 정착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관계자는 “무단결근이나 규정위반을 반복해 소속 기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면서 또한 “자본주의 경제 이해 부족과 사회적 적응에 실패한 사례도 가끔 있다”고 말한다.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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