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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우리는 왜 새로운 스타에 열광하는가?

중앙일보 2016.12.23 00:18 종합 32면 지면보기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연예계이건 스포츠계이건 정치계이건 우리는 항상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에게 열광한다. 그들은 기존의 형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우리도 모르게 그들에게 끌린다. 특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 해외에서 큰 상이나 인기를 얻은 작가나 가수, 배우, 감독 등은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영웅이 되기도 한다. 정치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나 몇 해 전 우리나라 안철수 의원과 같이 기존 정치인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 그의 행보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그만큼 큰 기대를 한다. 기존의 낡은 관습을 깨고 새로운 정치를 보여 줄 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영웅시하는 건 자신의 바람을 대상에 투사하기 때문
정치인 스스로 만든 이미지 넘어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 필요


그런데 최근 융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내면의 무의식을 공부하다 보니 이러한 새로운 스타에게 열광하거나 누군가를 영웅시하는 것은, 보는 사람들의 자기 투사(projection)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즉 열광하는 스타나 영웅의 좋은 면들은 알고 보면 바라보는 사람 마음 안에 있는 긍정적인 모습을 영웅이라는 대상에게 투사해 마치 그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영웅이 아주 착하고 선하게 보인다거나 정의롭고 바르게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보는 이가 본인 내면에 이미 가지고 있는 선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그 사람을 통해 잠시 본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 우리는 그 스타나 영웅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른다. 매체를 통해 단편적인 사진 이미지나 짧은 신문 기사를 접해 봤을 뿐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본 적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그 사람 심리 저변에 깔려 있는 다양한 과거 경험과 상처, 콤플렉스, 욕망, 성격 등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저 사람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심리적 재료들을 가지고 예상하고 판단한 것이다. 어쩌면 그 상대하고는 크게 상관없는 투사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투사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예가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라고 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사람들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사랑에 빠지면 내가 상대에게 투사한 그 대상의 좋은 면만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심리적 결핍까지도 상대가 다 채워 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결혼 후 삼사 년이 지나고 나서 보이는 남편이나 아내의 모습은 내가 막 사랑에 빠졌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나의 투사가 멈췄을 때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위대한 스타나 영웅으로 오랫동안 남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 대중이 자세히 몰라야만 가능해진다. 잘 몰랐을 때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그 대상에게 마음대로 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롭게 떠오르는, 그래서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그런 영웅에게 더 크게 열광하게 된다. 최근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 ‘더 크라운(The Crown)’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이 드라마에서도 이 점을 이야기한다. 왕의 자리에 막 오른 어린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여든이 넘은 윈스턴 처칠 총리가 조언을 한다. 왕의 자리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개인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드러내지 말라고 말이다. 왕이 쓰는 왕관이 순수한 권위의 상징으로 남기 위해서는 여왕의 사사로운 모습이 그 상징과 오버랩되지 않아야 오랫동안 품위를 유지하고 존경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오랜 왕실 역사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지난 선거 때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가운데 그럴 줄은 정녕 몰랐다는 반응을 하시는 분이 많다. 기존에 알았던 대통령의 이미지와 실제 대통령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고 많은 분이 크게 실망했다. 특히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과의 사적 관계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그리고 남들과 소통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려 했기에 박 대통령을 향한 사람들의 투사가 가능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인을 바라볼 때 진정 그 사람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투사하고 있는 내 바람이 담긴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자신들의 이미지를 넘어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그 노력이 모두에게 간절히 요구된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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