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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시뮬라크르 #5. 시선은 위로부터 왔다 (1)

중앙일보 2016.12.23 00:01
아직 어둠이 가시기 전에 혁은 잠을 깼다. 아내는 돌아와 있지 않았다. 해외에 본사가 있는 에이전시의 큐레이터로 일하는 아내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이쪽의 밤이 그쪽의 낮이었다. 본사 간부들과의 화상 회의도, 그쪽 클라이언트들과의 통화나 거래도 주로 밤 시간대에 이루어졌다.
텅 빈 집안의 적막이 깊었다. 집안을 서성이다가 베란다를 통해 창밖을 쳐다보다가, 동쪽 하늘이 푸릇하게 밝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가볍게 산책이라도 할까 하고 집을 나섰다. 아무도 깨지 않은 마을의 적막도 깊었다.
종합 스토어 쪽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려 아파트 뒷산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막상 오르다 보니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높고 가팔랐다. 안개까지 자욱하게 낀 산길이 구불구불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을 듯하여 그만 내려가려고 돌아섰는데, 이미 길을 잃은 듯 가도 가도 산길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길은 어디로든 통하게 마련이었다.
한참 동안 헤매다 보니 약수터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 팻말이 나타났다. 누구든 만나면 길을 물을 수도 있으리라 여기며 혁은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혁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종합 스토어의 상호도, 마을의 지명도 생각나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약수터도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가 약수를 뜨러 오기에도 아직 이른 시간인 듯했다. 날은 이미 완전히 밝아 있었지만 몇 시나 됐는지는 가늠되지 않았다.
돌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물을 보자 갑자기 갈증이 났다. 그러고 보니 잠에서 깨어 여태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했다. 돌확의 살얼음을 깨고 손부터 씻은 다음 흐르는 물을 받아 들이켰다. 가슴까지 얼얼해지도록 물맛이 시원하고 달았다. 젖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고 남은 손의 물기를 털어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혁은 주변을 살피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했다. 걷기 좋도록 나무 계단을 박아 놓은 산책로였다. 산책로가 끝나자 자동차를 십여 대는 주차시킬 수 있는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한쪽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언덕길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은 가파른 벼랑 위였다. 그 끝에 서자 산 중턱부터 시작되는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혁의 마을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분지 마을이었다.
혁의 마을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을 등지고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 쪽을 향해 세워져 있었다. 넓은 아파트 단지와 몇 개의 대형 스토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스토어 건물을 지나면 깊고 넓은 강이 흘렀고, 강 건너부터의 푸른 들판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주둥이가 좁은 항아리를 세로로 잘라 눕혀 놓은 것 같은 모양의 분지였다. 마을은 항아리의 바닥에 해당하는 안쪽으로 바짝 들어앉아 있었다. 혁이 서 있는 산자락 쪽이었다. 산의 중턱에 세워진 학교 건물을 시작으로 소규모의 주택단지와 아파트 단지가 나란히 계단식으로 늘어 서 있고, 평지가 시작되는 기슭에서 마을이 끝나며 왕복 4차선 도로가 놓여 있었다. 도로 건너편은 야트막한 상점들이 몇 채 세워져 있을 뿐, 그 뒤로는 빙 둘러쳐진 다른 산자락들의 기슭까지 그대로 너른 들판이었다. 들판을 가르마처럼 가르며 뻗어있는 도로는 분지 바깥의 도시와 연결되어 있었다. 저 멀리로 도시의 일부가 산자락과 산자락 사이로 설핏 보였다. 마을의 규모로 보아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도시로부터 통학하고 있는 듯했다.
 
혁은 나무 계단이 깔린 산책로로 도로 올라갔다. 산 하나를 완전히 넘어온 듯했다. 갈림길에서 산책로를 버리고 희끗하게 잔설이 깔린 샛길로 들어섰다. 한참 동안 올라가다가 길이 험하고 좁아진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서 되짚어 내려왔다.
그곳에서 혁은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자신이 입은 것과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초로의 남자였다. 남자에게 길을 물으려다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다. 아내 모르게 병원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살짝 접질렸다.
그래도 다행히 금세 다시 산책로를 만났다. 발목이 불편하긴 했지만 걷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조금 전의 그 약수터가 나왔다. 혁이 내려왔던 더 깊은 산길이 그 위로 뻗어있었다.
얼마쯤을 더 올라가니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약간 밑으로 빠지는 샛길이 나왔다. 산허리를 가르며 에둘러 가는 길인 듯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익숙한 아파트와 스토어 빌딩들이 내려다보이는 비탈 위에 서게 됐다. 혁은 그제야 안도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가늠해보고 그쪽을 향해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내는 그때까지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
 
 
눈을 떠보니 소파에 앉은 채 그대로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시간부터 확인했다. 9시 27분. 창밖이 훤했다. 아침일 터였다.
세영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로그인 상태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남편은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었다. 세영은 안도하며 서버와의 접속을 끊었다.
세영은 회사로 전화해서 10시로 예정되어 있는 약속을 오후로 미뤘다. 도시 외곽에 있는 갤러리를 방문하기로 한 일은 이쪽이 아쉬운 부탁을 하는 입장이라 미룰 수 없었다. 카멜로부터 서버가 완성되었다는 메일이 도착하자마자 취소시킨 일정들이 오늘로 줄줄이 다시 잡혀 있었다. 저녁에는 이탈리아에서 오는 클라이언트를 맞으러 공항에도 가야 했다.
 
30여 년간 자기만의 세계를 고수하던 화가의 화풍이 바뀌었다. 국내에서는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올랐고,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나기 시작한 작가였다. 최 화백이 그렇게 되기까지 10여 년간 세영이 들인 공이 컸다.
그의 새 그림이 곧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소문을 흘리자마자 전 세계로부터 클라이언트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전시회로 공개되기 전에 확인하여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최 화백은 그림이 마르기 전까지는 세영 이외의 누구에게도 저택 2층에 있는 작업실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클라이언트들을 데려가면 로비로 내려와 응대는 해주었다. 조금은 거만했지만 적당히 친절했다. 어떻게 해야 그림이 더 높은 값에 더 잘 팔리는지 세영 못지않게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세영은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면서 잔뜩 어질러진 서재는 밤에 들어와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집안일을 맡아주었던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연락하여 다시 맡아달라고 부탁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 아주머니를 보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원망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인분의 식탁에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친구가 놀러 와서 밤새 마셨다고 둘러대면 될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오히려 기뻐하며 부리나케 원장 수녀님께 전화를 걸 터였다. 세영이 이제 많이 좋아진 모양이라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고. 세영은 차라리 그편이 나을 듯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아주머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도 하기 전에 바로 알겠다는 답문이 왔다. 울면서 집안 살림을 던지며 그녀를 내쫓은 지 일 년 하고도 팔 개월 만이었다.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갤러리에 들러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고 회사로 들어오자마자 재빨리 회의를 소집했다. 오후에는 몇 건의 미팅을 날아다니다시피 해치웠다. 저녁도 거른 채 새 클라이언트를 맞으러 공항으로 가면서도 속력을 최대로 높였다.
이탈리아 지사에서 메일로 사람이 갈 거라면서 적어 보낸 편명이 입국장 앞의 전광판에 도착으로 떠 있었다. 다행히 예정시각보다 10여 분 늦어 불과 2분 전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입국 심사장 앞에 줄 서 있다가 빠져나와 짐을 찾고 세관을 통과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세영이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고칠 시간은 충분했다. 5분 간격으로 다른 비행기가 먼저 도착했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세영은 더 느긋해졌다. 클라이언트는 입국 심사장 앞의 길어진 줄에 끼어 차례를 기다리며 더욱 지체하게 될 것이었다.
세영은 천천히 화장실까지 다녀와서 약속된 게이트 앞에 섰다. 자동문이 열리고 몇몇 승객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숄더백에서 회사명을 적은 피켓을 꺼내 펼쳐 들었다. 클라이언트의 소속과 이름을 미처 체크하지 못했다는 것은 직원에게 피켓을 만들라고 지시할 때 알았다. 이미 도착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고 다시 알아보기도 번거로워 이쪽 회사명만 적었다. 어차피 대충 얼버무리다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명함을 받아 확인한 후 자연스럽게 호칭을 바꾸면 될 것이었다.
몇몇의 승객들이 입국장을 빠져나가고 다시 출구가 열리고, 세영은 혼자 나오는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면서도 그가 미처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는데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였다. 부회장인 그가 직접 온 것이었다.
세영을 발견한 부회장이 그녀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 그리고 가볍게 세영을 안았다. 세영은 여전히 얼떨떨하여 마주 안아주지 못했다. 부회장이 어깨에 손을 짚은 채로 물끄러미 얼굴을 들여다볼 때에야 정신이 들며 얼굴을 너무 굳히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신경이 쓰였다. 귀한 분이니 직접 마중하라 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아둔함이 한심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지사장이면서 본사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큰일을 겪었다더니,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직접 오실 줄 몰랐어요.”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벌써 이 년이 다 되어가는 걸요.”
 
“그래, 장하다.”

 
공항 근처의 바닷바람이 거셌다. 영종대교 위에서는 차체가 흔들려 긴장하며 운전대를 꼭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곳을 통과한 후에도 세영은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 앞만 보고 운전만 했다. 바로 옆에 앉은 그도 말없이 어두운 차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고요한 강변을 따라 달렸다. 오가는 차량이 늘어나면서 고층 건물들이 나타났다. 부회장이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호텔로 가기 전에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고 했다. 세영이 시장하지는 않으시냐고 물으니 도착 직전 간단하게 기내식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고 한강철교 밑을 지났다. 한남대교를 앞에 두고 신사역 쪽으로 빠졌다. 밤이 깊었는데도 현란한 네온과 빌딩 위에 세워진 전광판과 광고탑으로 거리가 한낮처럼 밝았다. 술집과 음식점을 비롯하여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과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이 거리마다 빌딩마다 왁자하게 늘어서 있었다. 취해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길가에 정차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택시들을 경계하면서, 붉은 신호에 멈추고 초록 신호에 가고, 우회전을 했다가 좌회전을 했다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큰길로 나왔다.
그가 이제 그만 호텔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세영은 왔던 길로 빠져나와 한남대교 위로 올라섰다. 강 건너 저편으로 높게 솟은 서울 타워의 불빛이 아직 밝았다. 그쪽을 향해 차를 몰아갔다.
 
“이곳이 참 그리웠다.”
 
“몇 년 만이시죠?”
 
“삼 년쯤 되지 않았나?”
 
“그런 것 같네요.”
 
“저 다리의 불빛도 참 아름답구나.”
 
“지난 시장 때부터 켜기 시작했어요. 한동안 전력 낭비라고 말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다들 즐기는 분위기에요.”
 
“인공섬도 띄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거의 흉물로 변했어요. 모양도 그렇고, 전혀 쓸모도 없고요.”
 
“그래.” 
세영은 남산의 순환도로 바로 옆에 있는 호텔로 갔다. 발렛파킹을 해주는 직원에게 차를 넘기고 부회장과 함께 로비로 들어섰다. 프런트에서 회사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는 방의 카드키를 받아서 건네며 내일 아침에 다시 모시러 오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영이 내미는 키는 받지 않고 잠깐 올라갔다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괜찮은 지역의 와인을 사 왔는데 함께 마시지 않겠느냐고 고쳐 물었다. 세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키를 거두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방은 언제나처럼 28층이었다. 세영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문 앞의 전력 센서에 키를 꽂았다.
그가 잠시 창밖의 야경을 감상하는 동안 세영은 그를 위해 욕실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가 샤워하는 동안 그의 짐을 한쪽으로 옮기고 그가 벗어놓은 옷을 정리하여 걸었다. 룸서비스로 와인 잔 두 개와 약간의 치즈를 부탁하고 커튼을 닫으러 창가로 갔다. 그대로 서서 남산 자락에 위치한 호텔의 28층 스위트룸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을 바라다봤다. 촘촘한 시내의 불빛과 저 멀리 한강 변의 도로를 따라 빛나는 노란 불빛들이 아름다웠다. 그의 말대로 거의 3년 만이었다.
세영은 문득 자신이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남편을 그리워한 만큼은 아니지만, 복구되지 않아 기다리며 그리워했던 남편의 아바타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곳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을 세영은 분명 그리워하고 있었다.
 
세영의 인생에서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탯줄을 뗀 자리도 아물지 않은 채로 수녀원 앞에 버려진 세영은 그곳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젖병을 떼고 기저귀를 떼고 걸음마를 배웠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갔다. 그 많은 형제들만큼, 수녀님과 자원봉사자들의 관심을 나눠 가져야 했던 그 아이들만큼 부족했고, 그 아이들만큼 외로웠다. 꼭 그만큼만 불행했다. 하지만 사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 하니 불행의 크기가 더욱 크고 깊어졌다. 시설에서도 나가야 하고 학비도 벌어야 했다. 그래도 원장 수녀님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제법 똑똑한 편이었던 세영을 위해 후원자를 만나 설득하고, 여러 기관을 통해 장학금을 타내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그와는 어렵게 들어간 대학의 교수로 처음 만났다. 세영의 형편을 알고 자신의 연구에 이름을 올려 연구비를 타게 해 주고 스펙을 쌓게 해 주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각종 전시회나 행사 등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챙겨주었다. 그의 연구실을 드나드는 일이 잦아지고 밤늦게까지 함께 있는 일이 잦아지고, 술도 함께 마시게 되고 어쩌다 잠자리까지 하게 됐다. 그가 먼저 이끌었는지 세영이 먼저 이끌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그도 가족은 모두 미국에 두고 몇 년간 교환 교수로 나와 있었던 것이니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세영은 곧 그의 오피스텔로 짐을 싸 들고 들어갔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그가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을 때에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유학은 덤이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이 나라에 미련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의 부인이 예민하게 굴지만 않았다면 그의 곁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일자리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그의 하나뿐인 형이 회장으로 있는 에이전시의 한국 지사였다. 본사의 인턴사원으로 일 년 동안 일을 배우고 바로 한국 지사로 투입되어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도 교수직에서 물러나 본사에서 형의 일을 돕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형이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라 회사의 절반은 그의 몫인 셈이었다.
세영은 그를 사랑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원장 수녀님에게 인사 갔던 자리에서, 어릴 때는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입양되는 바람에 헤어졌던 남편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세영은 그제야 그에 대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건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아홉 살에 입양된 남편은 양부모도 일찍 여의고 그들의 유산도 친척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중퇴한 채 조그만 출판사에서 밥을 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남편도 형제들 중에선 나름 잘 풀린 케이스였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일용직을 전전하거나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형제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제법 유명한 소설가였던 양아버지의 영향으로, 비록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국문학 공부를 하다 일찍 등단하여 자기 이름으로 된 창작집을 내고 장편소설도 낸 작가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원장 수녀님의 자랑이었다.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본사 쪽 일만 하던 부회장이 스위스 지사를 개설하여 나가면서 세영에게 들어오겠냐고 물었을 때, 세영은 이쪽 일을 핑계로 거절했다. 이탈리아로 넘어가면서 다시 물어왔지만 또 거절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 한국 지사를 점검하러 오는 그의 방문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가야 했던 3년여의 방황 끝에 결심한 결혼의 대가는 혹독했다. 공식적으로 축하 메시지와 금일봉까지 보내왔던 부회장이 석 달 뒤 예정대로 일정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영은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가 호텔 로비에서 예약된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그가 받음으로써 사적인 관계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세영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결혼 전에 약속받은 지사장 자리에 뉴욕 출신의 남자 직원이 내정되어 날아왔다. 세영은 대기 발령 상태가 되었다. 침묵하는 대신 행동하는 남자의 질투가 무서웠다.
세영이 먼저 출장을 핑계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다음 해에 세영은 지사장이 됐고 언제나처럼 일 년에 한 번씩 그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세영은 유럽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이탈리아를 일정에 꼭 포함시켰다.
 
두 사람의 관계를 남편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 세영은 끝내 알지 못했다. 짐작대로 수녀원의 자원봉사 출신으로, 결혼 전부터 세영의 집안일을 도와주던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말실수를 했던 것인지, 아니면 아주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원장 수녀님이 둘 사이를 염려하여 남편에게 귀띔해주었는지, 그도 아니면 남편의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와 함께 호텔로 들어가는 세영을 봤는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말수가 줄어든다 싶었지만 세영은 남편의 풀리지 않는 소설과 때때로 밤을 새우기도 해야 할 만큼 바쁜 자신 때문에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과 해를 넘길수록 더 원하고 있지만 자신이 미루고 있는 아기 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날도 이쯤에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그와의 익숙해서 편안한 밤을 보내고 아직 어두운 새벽에 호텔방을 나오니 로비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세영을 자동차에 태우고 달렸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톨게이트를 지나고 고속도로 위에서 새벽 미명이 밝아올 무렵 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떠나, 제발 나를 먼저 떠나 줘.”
 
하지만 다음 진출로에서 차를 돌려 서울로 돌아온 남편은 그 뒤로도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떠나지도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영을 다시 안지도 않았다.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남편에게는 한밤중이든 새벽녘이든 혼자 차를 몰고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 밤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었고 몇 날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다 오는지 세영은 물을 수 없었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영수증으로 지나쳐 다닌 곳들을 짐작해 보고, 하이패스로 연결된 카드 명세서에 찍힌 톨게이트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리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어느 새벽녘 처참하게 일그러진 차와 함께 남편이 발견된 곳은 남쪽의 해안도로와 연결된 절벽 아래에 있는 거대한 바위틈이었다. 아직 숨은 붙어 있었지만 의식이 없었다. 그대로 남편은 깨어나지 않았다.
 
언제 욕실에서 나왔는지 소리도 없이 그가 등 뒤로 다가와 세영을 안았다. 세영은 멈칫하며 잠시 긴장했다. 하지만 목욕가운만 걸친 그의 단단한 몸이 너무 익숙했다. 등 뒤에서 부드럽게 밀착시키며 안아오는 가슴과 팔과 다리와 목덜미에 닿는 입술의 감촉마저 너무 그대로였다. 어쩐지 따뜻하게 위로받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새벽녘에야 잠든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서재가 말끔했다. 아주머니의 글씨로 잘 있어주어 고맙다는 원장 수녀님의 전언까지 메모되어 있었다.
세영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부팅이 되는 동안 시시각각으로 화면을 바꿔가는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봤다. 프로그램을 띄우고 부재중 모드로 접속하여 자는 남편을 들여다봤다. 고른 숨소리, 뒤척이는 부스럭거림. 울컥 울컥 울음이 솟았다. 남편을 저 안에 두고 밖에서 혼자 본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이 미안해서, 혼자 느낀 설렘과 따뜻함과 짜릿함이 미안해서, 혼자 느낀 절정의 오르가슴과 뼈와 살이 풀어지고 나른해지던 순간들이 너무 미안해서 세영은 예전처럼 혼자 울었다.
 
다음 날 회사에서 최 화백의 그림을 본 부회장은 매우 흡족해했다. 최 화백의 국내 입지는 이미 단단히 다져져 있고 해외로도 슬슬 이름이 알려지고 있었다. 특히 뉴욕 쪽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매겨지던 값보다 두 배 혹은 세 배를 매겨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것이었다. 그러나 부회장은 일단 본사 소유로 묶어두자고 했다. 세영의 생각도 같았다. 30여 년 동안 같은 식의 그림만 그리던 화가의 화풍이 완전히 바뀌고 난 후의 첫 그림이었다. 그의 나이는 이제 예순이 조금 안 됐지만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기가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었다. 십 년, 혹은 이십 년쯤. 지금까지 뿌려놓은 밑밥에 잘만 공들여 낚으면 사후에 그 그림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첫 번째 그림은 일단 이탈리아로 팔려나간 것으로 서류를 꾸며두기로 했다. 최 화백에게는 지금까지 지불했던 가격의 두 배를 지불하고 대외적으로는 비밀에 부쳐 두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 작품의 판매와 가격 협상에 유리했다. 같은 화풍으로 그리고 있는 소품이 몇 점 더 있다고 하니 부회장은 그것도 보고 싶다고 했다. 세영은 바로 최 화백에게 전화를 걸어 본사에서 온 부회장과 함께 방문하겠다고 알렸다.
완성된 소품과 아직 작업 중인 또 하나의 소품을 확인한 그는 그것을 세영의 소유로 이전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대금은 자신이 지불하겠다고 했다. 본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선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부터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그전에 모든 작품을 모아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추진해 보기로 했다. 이미 판매되었다고 알려진 작품들은 빌려오는 형식을 취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경매에 부치기로 했다. 그전에 비밀에 부쳤던 첫 작품의 가격을 미리 부풀려 흘려놓으면 경매가는 어느 선까지 뛰게 될지, 세영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회장은 최 화백의 그림들을 확인하고 세영과 오래 회의를 하고 본사와 연락을 취한 뒤, 완성된 최 화백의 그림을 포장해서 보내고도 삼 일 동안 서울에 머물다 갔다. 삼 일 동안 호텔 밖으로는 한 발작도 나가지 않고 세영과 방에서만 지냈다. 지난 3년간의 회포를 모두 풀겠다는 듯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세영을 탐했다. 세영은 그때마다 성난 고양이처럼 혹은 순한 강아지처럼 그를 맞았다. 그를 맞으며 봉인된 몸의 기억을 해제시켰다. 너무나도 익숙하여 일상적인 며칠이었다.
 
세영은 공항에서 그를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카멜과 통화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남편의 책장을 훑어보며 책들의 목록을 적었다. 남편이 썼던 소설과 쓰다 만 소설들도 폴더째 압축하여 따로 저장했다. 전체 파일의 용량이 커져 메일로는 보내지 못하고 카멜이 지정해 준 웹 하드에 직접 올렸다. 뱅킹 사이트를 열어 착수금 명목으로 얼마간의 돈을 보냈다.
적어 준 책들을 전자책 형태로 전환시켜 아이템화 하려면 직원이 더 필요할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느냐에 따라 서버와 연결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서버의 용량은 당연히 커질 것이고 지속적으로 관리도 해야 하니 트레이닝복이나 면바지, 셔츠와 같은 아이템과는 비교도 안 될 액수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었다. 그런데 카멜은 이왕 작업을 하는 김에 따로 전자책 사이트를 하나 개설해 두면 어떠냐고 물었다. 일반인에게 판매하고 대여하면서 서버와도 연결하면 남편의 서재뿐 아니라 스토어에도 서점을 입점 시킬 수 있고, 마을 도서관도 설립할 수 있다고 했다.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온오프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 되는 것이었다. 얼마가 들어가든 세영은 전액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 세영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이쪽 세상의 일상을 살아가는 세영이 깨우지 않으면 저쪽 세상의 남편은 날마다 잠만 잤다. 세영은 남편이 전처럼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세영은 너무 미안했다.

작가 소개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소설창작학과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나무젓가락」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2013년 제2회 EBS 라디오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단편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그림동화 『옥상에 텃밭이 생겼어요』
옴니버스 에세이집『가족이 힘이다』『수업』『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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