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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탈당을 앞둔 이들에게

중앙일보 2016.12.22 21:16 종합 35면 지면보기
고정애  런던특파원

고정애
런던특파원

주변은 이미 어둡습니다. 연중 가장 낮이 짧다는 날, 영국 의회 앞의 광장을 찾았습니다. 한 인물을 만나기 위해섭니다.

전면에 ‘Peel 1788~1850’이라고 새겨진 전신상의 주인공, 로버트 필 전 총리입니다. 영국 경찰의 애칭이 ‘보비’죠. 그의 이름(로버트)에서 유래했습니다. 내무장관 시절 처음으로 근대적 개념의 경찰제를 창설했습니다.

그는 영국 보수주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불립니다. 보수당의 설립자라고도 합니다. 동시에 보수당의 분열을 불러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보수당의 재집권은 28년 이후에나 가능했습니다. 한마디로 논쟁적일 수 있는 인물입니다.

개인적 매력이 있다고 보긴 어려웠답니다. 당대의 언론인이 “이토록 지루한 인물이 있을까”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대단히 사적이어서 내면 풍경이 알려진 바도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심하게 탔습니다. 옷소매를 내리려는 듯 연신 손을 털었고 발끝을 내밀곤 하는 습벽도 고약했습니다. 정치적으론 온건하면서도 인도주의적 개혁주의자였습니다. “한쪽 눈이 늘 후대에, 또 사후의 평가에 맞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그에게 운명을 건 순간이 다가왔으니 곡물법 폐지 문제였습니다. 곡물의 자유수입을 금지한 법인데, 보수당의 지지기반인 지주층의 이해를 대변한 겁니다. 폐지는 의원도 지지자도 잃는 선택이었습니다. 기근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를 위해서였는지, 빵 값에 허리가 휘던 노동자를 위해서였는지, 혹 그저 자신의 신념인 자유무역을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건 ‘곡물법 폐지=실각’이란 사실이었습니다. 필은 결국 폐지를 택했습니다.

그는 4년 후 말 그대로 낙마(落馬)해 숨졌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탈당, 자유당의 창당 멤버가 됩니다. 19세기를 이끈 총리인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한 명입니다.

필로선 불운한 말로였습니다. 역사적으론 옳았습니다. 곡물법 폐지로 영국은 사회적 격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귀족들이 가장 반대했으나 역설적으로 귀족제를 구했습니다.

자신의 뿌리와 맞서는 게 승리와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당대엔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여신은 기로에 선 이들을 기억하며 시선을 미래에 둔 이에겐 호의를, 과거에 둔 이에겐 냉소를 보내곤 합니다. 의회광장에 있는 11명의 동상 중 6명만 영국 총리인데 필이 한 명이란 점에서도 확연합니다.

어둠이 짙어졌습니다. 필은 어둠에 잠겼습니다. 길은 오히려 명료해 보입니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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