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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

중앙일보 2016.12.22 20:33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5차 청문회`에 참석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정현 기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5차 청문회`에 참석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정현 기자]
 

그가 인정한 단 하나의 잘못은 최순실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미리 알고 조치를 하고 예방을 하고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22일 국회 청문회 증인석에 앉은 우병우(49)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에서 나온 최대한의 사죄 표현이었다. 보름 전 같은 자리에서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한 발언의 판박이였다. “경계의 담장을 낮춘 잘못”을 말한 박근혜 대통령 담화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약간의 과실(過失)은 있었지만 중한 죄는 짓지 않았다는, 촛불 든 시민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변명은 이렇게 다시 이어졌다.

"박 대통령 존경, 최순실 모른다, 질문하시죠, 청문회 안 피했다..."
청문회서 부인·해명 일관하다 간혹 역공, 불통 정권의 모습 그대로


오전 질의에서 여섯 의원의 순서가 끝날 때까지 그는 사과의 말도, 오류를 인정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이 계속됐다. “최순실 언제 알게 됐느냐”는 질문에는 “현재도 모른다”고 했다. 김성태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무너진 부분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답변하라”고 일갈했다. 그제서야 그는“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정수석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민심동향 파악, 공직기강, 인사검증, 대통령에 대한 법률 보좌, 민원업무”로 임무를 설명했다. “민정의 ‘민’은 어떤 민이냐”는 질문에는 “국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업무 중심을 대통령과 국민 중 어느 쪽에 뒀냐는 추궁에 “1차적으로 대통령의 비서다”고 답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진정성을 믿었기에 존경합니다.” 자신에 대한 변호에도 적극적이었다. “법률과 원칙에 따라 일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박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고, 법률에 위배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청문회를 회피하려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잘못이 있다면 최순실을 막지 못한 것인데, 그를 알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서 ‘공직자의 주인은 납세자’ 또는 ‘국가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상식은 찾을 수 없었다.

경북 봉화군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수재였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인 20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준재벌급의 집안으로 장가를 가 재력을 갖췄고, 대검 중수부 간부 시절에는 전직 대통령을 수사했다. 그리고 청와대에 입성해 만인지상(萬人之上) 의 지위에 올랐다. 최상위 엘리트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조사 받으러 간 검찰청에서 기자를 쏘아보고, 검사 앞에서 팔짱끼고 웃을 수 있는 권세까지 누렸다. 하지만 그의 대한민국에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준 국민은 없었다. 시민들이 토끼몰이하듯 해 만든 이날의 청문회에서도 해명과 자기 주장에만 급급했다.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권력을 남용해 자신들만의 ‘내부자’ 세계를 만든 ‘불통 정권’의 또 다른 표상이었다.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그는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고, 검찰 인사를 좌우하며 이른바 ‘우병우 라인’을 만들지도 않았으며, 장모인 김장자씨도 최순실을 아예 모르고, 세월호 참사 수사 때 광주지검의 해경 서버 압수수색을 막지 않았다. 대답에서 인정한 광주지검 수사팀 간부와의 통화는 “상황 파악”에 불과했다. 직무유기ㆍ직권남용은 억울한 누명이다. 물론 그의 주장일 따름이다.

그는 “법률 미꾸라지”(박영선 의원) 등의 인신 공격성 발언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간간히 의원 질의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하십시오” 등으로 역공을 가했다. 준비가 덜 돼 질문이 오락가락하거나 장광설이 펼쳐질 때였다. “특수계급” “왜곡된 충성” 등으로 의원들이 그의 존재와 행동을 비난했지만 명석함과 법률적 지식으로 무장된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민정수석이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가 대통령 탄핵입니다”(하태경 의원), “법률ㆍ행정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도덕적으로, 역사적으로 엄청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백승주 의원) 등의 비판이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시민 가슴에 멍이 하나 늘었다.

이상언 사회2부장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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