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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계란장수 “가게 접을 판” 김밥집 “버티기 급급”

중앙일보 2016.12.22 02:10 종합 8면 지면보기
“죄송합니다만 알(계란을 지칭) 없어요. 돌아가세요.”

동네 상권까지 덮친 계란 대란
“문 닫은 소매상 수도권만 1000명”
한판에 5400원서 8080원 치솟아
빵집 “온 가족이 계란 사러 다녀”
아기 엄마들 “친환경 제품은 동나”
성난 계란민심 “정부는 뭐했나”

“여기도 없으면 어떡해요? 우리 식당 이러다 망해요.”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계란 도매업장. 평소에는 200판을 수레에 가득 담아 옮기지만 조류독감으로 인해 옮길 계란 자체가 거의 남지 않았다. [사진 김경록 기자]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계란 도매업장. 평소에는 200판을 수레에 가득 담아 옮기지만 조류독감으로 인해 옮길 계란 자체가 거의 남지 않았다. [사진 김경록 기자]

21일 오후 3시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계란 도매업장. 아침부터 50명 넘는 소매업자들이 찾아왔지만 대부분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간 하루 200판을 사 갔다는 유통업자 최창묵(45)씨는 “부서진 거라도 챙겨야겠다”며 구석에 놓인 계란 5판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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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째 계속된 풍경이다. 하루 평균 1만5000판의 계란이 거래되던 곳이지만 이날 남아 있던 것은 300여 판에 불과했다. 오랜 단골을 위한 이 비상용이 바닥을 드러내면 업장 문을 닫아야 한다. 계란을 팔겠다는 농장이 없어서다. 강종성(57) 사장은 “30년 넘게 일하며 조류 인플루엔자(AI)를 여러 번 겪어봤지만 계란 품귀 현상이 벌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뿐 아니라 거래하던 빵집·수퍼마켓 주인까지 모두 망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계란 대란이다. 관련 유통업자와 자영업자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서 요식업체 100여 곳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이재권(40)씨는 “계란을 보내 달라”는 전화를 매일 대여섯 통씩 받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일주일에 계란 1000판을 납품했지만 AI 확산 이후 5분의 1로 줄었다. 그는 “식당 주인들이 장사 못 하겠다고 난리다. 큰 일이 터질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5412원(특란 한 판 기준, 평균가격)이던 계란값은 이달 들어 14일 6072원(최고가 7180원)→16일 6365원(최고가 7300원)→21일 6866원(최고가 8080원)으로 치솟고 있다. 공급이 끊기다시피 해 이 가격이 무의미하다는 게 현장의 아우성이다.
농 식품부 직원이 21일 정부세종청사 방역대책본부에서 조류독감 발생 현황 지도를 보고 있다. [뉴시스]

농 식품부 직원이 21일 정부세종청사 방역대책본부에서 조류독감 발생 현황 지도를 보고 있다. [뉴시스]

경기도 하남시의 계란 도매업체 사장 A씨는 “‘도매업자들이 폭리를 취한다’고 비난하지만 공급 물량이 달려 시세는 무너졌고 부르는 게 값이다. 소매로 계란 장사를 하다 망한 사람이 수도권 일대에서만 1000명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구로구에서 30년간 계란을 팔아 온 원모(53)씨는 쌀이나 김치로 판매 품목을 바꿀 계획을 세웠다. 그는 “사정이 다들 비슷해 어디 하소연도 못 한다”고 말했다.

2차 피해도 커 가고 있다. 김밥집이나 빵집은 말 그대로 ‘버티는’ 상태다. 일주일 전 서울 은평구에서 카스테라 체인점을 연 이모(43)씨는 하루 70판의 계란이 필요하지만 최근엔 절반도 충당하기 어렵다. 온 가족이 계란을 사려고 대형마트를 돌아다닌다. 그는 “월세 계약과 인테리어까지 마쳐 가게를 안 열 수 없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버티고 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경기도 안산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윤석열(40)씨는 “손님들에게 기본 반찬으로 제공하던 계란말이를 당분간 다른 음식으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육아휴직 중인 공무원 권모(35)씨는 “지난 주말에 대형마트에 갔다가 한 판에 7000원이 넘는 계란값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아식을 먹는 아이가 유독 계란을 좋아하는데 마트에서 계란을 못 사는 날이 올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박모(34)씨는 “동네 수퍼마켓에서 계란을 구할 수 없어 아이를 업고 대형마트로 갔다. 계란 사러 마트까지 가 보기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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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주부 박희옥(52)씨는 “조기 방역에 성공한 옆 나라 일본과 비교된다. 국가 안전 컨트롤타워가 없다”고 지적했다. 강성종 한국계란유통협회장은 “최대 산지인 경기도 포천시만 제대로 막았어도 생업을 포기할 정도가 되진 않았을 텐데 초동 대응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글=김민관·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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