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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만취승객 제지 못해…가수 리처드 막스가 제압

중앙일보 2016.12.22 01:58 종합 12면 지면보기
  
“한 사이코 승객이 4시간 동안 승무원과 다른 승객들을 공격했다. 승무원들은 완전히 미숙하고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훈련받지 않은 것 같다.”

무역회사 대표 아들 34세 임모씨
하노이 → 인천 여객기서 2시간 난동
남승무원 없어 막스 등 승객들 나서
임씨, 9월에도 술 취해 난동 전력
전문가 “기내서 또 술준 건 이해 안돼”
대한항공 “절차 따라 제압해 인계”
경찰, 임씨 조사 뒤 귀가시켜 논란

미국의 팝스타 리처드 막스(53)가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내용 중 일부다. 문제의 항공사는 대한항공이고 사이코 승객은 술에 취한 30대 한국인 남성이었다. 21일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 내용과 리처드 막스의 SNS를 종합하면 당시 기내 상황은 이랬다. 전날 오후 베트남 하노이를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KE480의 프레스티지석(비즈니스석)에 타고 있던 임모(34)씨가 옆자리에 앉은 50대 승객의 얼굴을 때렸다. 이 승객은 경찰 조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임씨가 계속 말을 걸었다. 대꾸를 하지 않았더니 손이 날아왔고 손등으로 얼굴을 맞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임씨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다.
<b>여승무원 테이저건 안 쏴</b> 지난 20일 베트남 하노이발 인천행 대한항공 기내에서 술에 취한 승객 임모씨가 난동을 부렸다. 한 승무원이 임씨에게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겨눴으나 다른 손님의 피해를 우려해 쏘진 않았다. [사진 리처드 막스 페이스북]

여승무원 테이저건 안 쏴 지난 20일 베트남 하노이발 인천행 대한항공 기내에서 술에 취한 승객 임모씨가 난동을 부렸다. 한 승무원이 임씨에게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겨눴으나 다른 손님의 피해를 우려해 쏘진 않았다. [사진 리처드 막스 페이스북]

이 장면을 목격한 여승무원 3명과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던 대한항공 소속 정비사가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오히려 폭행을 당했다. 임씨는 여승무원들의 팔을 비틀고 얼굴과 배를 때렸다. 당시 이 여객기에는 남자 승무원은 없었고 여승무원만 6명이 타고 있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남자 승무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남아 등 단거리 노선에는 여승무원만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b>승무원들 제압 시도 실패</b> 여승무원들이 임씨를 포박하려 애쓰고 있다. [사진 리처드 막스 페이스북]

승무원들 제압 시도 실패 여승무원들이 임씨를 포박하려 애쓰고 있다. [사진 리처드 막스 페이스북]

임씨의 난동은 2시간가량 계속됐다. 처음에는 여승무원들이 테이프로 임씨의 손을 묶었지만 스스로 풀었다. 그 뒤 포승줄로 자리에 묶었지만 화장실 사용을 핑계로 풀어 달라고 한 뒤 다시 난동을 부렸다. 한 승무원이 테이저건(전기충격기)까지 꺼냈지만 사용은 하지 못했다. “해당 여객기가 복도 공간이 좁은 B-737 기종이어서 옆 손님의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라는 게 대한항공 측 설명이다.
<b>막스 포승줄 들고 나서</b> 상황이 여의치 않자 미국 팝가수 리처드 막스 등이 포승줄을 손에 든 채 거들고 있다. 막스는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리처드 막스 페이스북]

막스 포승줄 들고 나서 상황이 여의치 않자 미국 팝가수 리처드 막스 등이 포승줄을 손에 든 채 거들고 있다. 막스는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리처드 막스 페이스북]

보다 못한 리처드 막스와 다른 프레스티지석 승객들이 나서면서 난동은 가까스로 제압됐다. 히트곡 ‘나우 앤드 포에버(Now and Forever)’로 유명한 막스는 베트남 공연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경유해 미국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모든 여성 승무원이 이 사이코(임씨)를 어떻게 제지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나와 다른 승객들이 나서고야 난동 승객을 제압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대한항공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재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씨는 인천공항에서 경찰에 인계됐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는 이미 하노이공항 라운지에서 술을 마신 상태였으며 기내에서도 양주 두 잔 이상을 비웠다고 한다. 그런데 임씨가 앞서 지난 9월에도 하노이발 인천행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은 현재 검찰에 송치돼 있는 상태다. 임씨는 베트남 현지 법인을 갖고 있는 무역회사 D물산 대표의 아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임씨를 아무런 제지 없이 탑승시킨 데다 술까지 제공했다는 것에 대해 대한항공 측의 고객 관리가 너무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연철 한서대 교수는 “항공사들은 문제 고객 리스트를 갖고 있고 기내 난동 등의 전력이 있을 경우 탑승 거절을 하거나 술은 제공하지 못한다는 등의 제한을 거는 게 정상”이라며 “음주 난동 경력이 있는 승객에게 술까지 줬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승무원들이 난동 승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 것을 두고는 기내 보안에 큰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승객은 “만약 단순 만취자가 아니고 고도로 훈련된 테러리스트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한 항공 당국 관계자도 “승무원이 남성이냐 여성이냐를 떠나 비상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너무 엉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절차에 따라 난동 승객을 제압했고 공항경찰대에 인계했다”는 공식 입장만 밝혔다.

한편 경찰이 임씨를 조사 뒤 귀가시킨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에선 승무원 업무방해 혐의는 최대 20년의 징역형과 25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로 다루고 있다. 경찰은 “임씨가 술에 취해 더 이상 조사가 어렵다고 판단돼 통상적인 주취자 조사 절차대로 보호자인 아버지에게 인계해 귀가시켰다”며 “조만간 다시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함종선 기자, 인천=최모란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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