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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노사정 함께 개혁기구 만들어…수렁에 빠진 경제, 리셋 수준 개조를

중앙일보 2016.12.22 01:56 종합 14면 지면보기
꺼지는 성장엔진, 무너지는 민생…원로 7인의 해법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꺼지며 민생이 추락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비정규직 직원, 청년, 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약한 계층에 고통이 집중되고 있다. 경제 원로들은 “한국 경제의 틀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며 “정치권부터 경제 살리기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원로 7인에게 해법을 들어봤다.
 
이젠 민생이다<4·끝> 원로의 조언
“여야 정치권과 노사정(勞使政)이 함께 개혁 기구를 구성하자. 이 기구가 컨트롤타워가 돼 모든 개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무너진 민생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방안으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이런 제안을 했다. 하루빨리 한국의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고 새판을 짜야 민생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다. 꺼져 가는 공장의 불빛을 되살리고,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주고, 자영업자들을 위기의 구렁텅이에서 꺼내려면 한국 경제를 ‘리셋(초기화)’ 수준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게 경제 원로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민생이 무너진 근본 원인은 간단하다. 한국 경제에 활력이 사라져서다. 미래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며 “가장 큰 문제는 투자가 일자리 창출 및 생산·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끊어졌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통은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중소 영세기업과 비정규직·파트타임 근로자, 자영업자가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다”며 “여기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까지 더해져 음식업 및 화훼업종이 타격을 받으며 사회 전체적인 활력이 가라앉았다”고 설명했다.
 
내년까지 3년 연속 2%대 저성장 가능성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지는 이미 오래다. 내년까지 3년 연속 2%대 저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했다. 산업 구조조정 등 시스템 개혁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곪은 부위는 갈수록 악화됐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한국의 전체적인 제도·규범·관행은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구조개혁을 위한 창의적 대안이 없고 정부의 리더십도 약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같은 돈 풀기, 부동산 시장 부양 등 단기 처방만 내놓으며 지금의 경기 급락을 막는 데만 골몰했다고 지적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한국 경제는 기술적으로 몇 부문만 손 봐서는 나을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있다”며 “그럼에도 정부 정책은 여기저기 수선하는 데 머물렀다”고 말했다.

굳어진 저성장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정책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게 원로들의 주문이다. 박승 전 총재는 “현재 저성장의 원인은 수출 주도형 성장, ‘선성장 후복지’라는 산업화 시대 모델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수출이 어려운 가운데 성장의 엔진은 결국 소비가 돼야 한다”며 “소비의 주체인 가계 소득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를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박재완 전 장관은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 신산업이 태동할 수 있는 길을 터 줘야 한다”며 “그간 한국이 강점을 가져 온 제조업은 구조적 공급 과잉과 중국의 추격 등으로 과거의 영광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택시산업의 예를 들며 현재의 정책 시스템으론 새로운 신산업이 자리 잡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카카오 택시, 우버와 같은 시스템이 보편화하고 있는데 기존 택시산업만 지키려고 하면 신산업은 신산업대로, 기존 산업은 기존 산업대로 죽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치 불확실성으로 사실상 멈춰 선 구조개혁도 지속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중점 추진해 온 4대 개혁(공공·금융·노동·교육)은 탄핵 정국 속에 후순위로 밀리며 좌초 위기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경제가 나빠질수록 노동조합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국내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것도 노동시장의 과도한 경직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 위해 복지예산 효율적 집행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몰락을 막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은 “성장 동력 유지에 중점을 두되 동시에 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엔 나랏돈이 투입돼야 한다. 복지를 늘리면 좋지만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게 문제다. 현재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0%에 이른다. 효율적인 재정 집행이 필요한 이유다. 최종찬 전 장관은 “부자가 되는 사람은 더 부자가 될 수 있게 하면서 정부는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재정이 어려운 가운데 무상급식 같은 보편적 복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꼭 쓰여야 할 곳에 재원이 쓰이지 못해 소득분배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승 전 총재는 “부유층이 세금을 좀 더 내는 방향으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며 “이 재원을 노동자나 농민, 저소득층을 위해 쓰면 소비를 더 활성화하고 양극화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상의 복지는 일자리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광두 원장은 “적어도 향후 2~3년간은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일자리 창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늘릴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소득을 늘리려면 결국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신산업 발굴 등 답은 나와 있지만 당장 될 수 있는 건 아닌 만큼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여러 규제를 푸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치는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리스크’다. 특히 탄핵과 조기 대선 가능성 등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원로들은 정치권에 “민생 경제부터 챙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광우 전 위원장은 “경제는 정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며 “경제가 최악의 상황인데 정치 여건을 보면 정책 리더십을 세우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은 당파 이해관계를 떠나 기업 활력 회복 등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증현 전 장관은 “지금까지 국회가 규제 완화 법안의 발목을 잡으며 신사업 발굴과 투자 확대에 따른 가계소득 증가 및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틀어막았다”며 “이제라도 경제는 경제부총리가 책임을 지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협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장옥 교수는 “노동시장 개혁, 산업 재편 등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정치가 경제를 가로막는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현숙·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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