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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 80%로 올린다

중앙일보 2016.12.22 01:00 경제 1면 지면보기
일본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시행에 본격 착수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착수
일본 비정규직 비중 40%
기본급·수당 차별 없애기로
유럽도 차별 폐지 잇단 판결
한국, 정규직 호봉제 많아
법규 있지만 격차 안 줄어

일본 정부는 20일 총리관저에서 ‘제5차 일하는 방식(き方) 개혁 실현 회의’를 열고 정규직·비정규직 간에 기본급·상여금·수당의 차별을 없애는 내용의 가이드라인(행정지침)을 내놨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1일 보도했다. 구조개혁의 일환인 ‘일하는 방식’ 개혁은 과도한 야근, 저임금 문제를 개선해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면 기업의 만성적인 일손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내수 기반이 튼튼해져 경제 전체에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전체 노동자의 40%가 비정규직이며,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60%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과 비슷한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임금에서 비중이 가장 큰 기본급은 경험과 능력, 실적·성과, 근속 연수 등을 기준으로 금액을 산정하라고 가이드라인은 권고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평가가 같으면 동일한 기본급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정규직에게만 지급되던 상여금 역시 채용 종류와 상관없이 회사 성과를 기반으로 평가해 지급한다. 교통비·출장수당·경조휴가·식당 이용 등 복리후생 역시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며, 초과근무수당도 동일한 할증률을 적용하고, 동등한 직업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후생노동성은 이런 내용을 토대로 법안을 만들어 내년 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회의에서 “결혼·육아 등의 문제로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대우를 개선하고 여성·청소년의 근무선택권을 넓혀 갈 생각”이라며 이 안의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이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역할급에 연공서열 요소가 가미된 일본만의 독특한 임금 체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역할급은 근로자가 맡은 역할의 책임과 권한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체계다. 예컨대 부장직을 수행하던 장년 근로자가 나이가 들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면 차장이나 과장으로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이때 임금도 역할에 따라 조정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정착되면 젊은 비정규직이 일정한 역할을 더 잘 수행했을 경우 그에 따른 임금 상승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가이드라인의 중간보고서는 “고용 기간과 노동 시간에 따른 정규·비정규라고 하는 호칭을 없애야 한다”며 “전체적인 일하는 방법의 개혁을 통해 (가이드라인이) 보다 나은 제도 설계의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만 인건비 부담 증가를 우려한 게이단렌(經團連) 등 재계가 개별 기업의 고용 관행을 감안하지 않은 정부안의 획일적 적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13년 2월 비정규직 차별 금지를 담은 내용의 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원칙적으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임금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규직 대다수가 호봉제이기 때문에 임금이 매년 올라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있어서다. 근본적으로 직무·역할·성과·능력에 따른 임금 체계가 아니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기 어렵다. 또 동일·유사 업무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비정규직을 채용한 기업은 정규직과 일하는 구조나 업무를 다르게 한다. 이를 근거로 임금 정산을 다르게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유럽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올 10월 영국 맨체스터 노동법원은 수퍼마켓에서 근무하는 9500명의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임금을 2002년까지 소급해 전·현직 여직원에게 1억 파운드(약 1380억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2011년 4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주 노동법원도 파견직으로 일했던 여성 근로자에게 1만3200유로( 약 2100만원)의 사후 지급을 명령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는데도 임금의 차이가 있었고, 이는 사후에라도 보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스웨덴의 경우 노조(LO) 스스로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높이고, 고임금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거나 낮추는 ‘연대임금제’를 시행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사례도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 선임기자,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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