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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찍다 집시가 된 남자…“그들 몸에선 열정이 즙처럼 나와”

중앙일보 2016.12.22 00:57 종합 23면 지면보기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오늘은 뭘 찍을까’ 즐거워진다는 요세프 쿠델카. 뒤에서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는 루시나 쿠델카는 그의 큰 딸로 부친의 작업 기록과 전시기획을 맡고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오늘은 뭘 찍을까’ 즐거워진다는 요세프 쿠델카. 뒤에서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는 루시나 쿠델카는 그의 큰 딸로 부친의 작업 기록과 전시기획을 맡고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사진에서는 바람 소리가 보인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생의 애절한 노랫소리가 흥건하다. ‘집시(Gypsy)’라 발음하는 순간, 떠나가야만 하는 유랑의 숙명이 입술 사이로 떠오른다. 체코 출신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78)는 평생 집시를 찍었다. 망명을 택한 뒤 집시인 듯 방랑하며 살았다.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슬픔과, 고통과, 그늘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렌즈를 맞췄다. 사진애호가 사이에 ‘집시’와 ‘프라하의 봄’ 연작으로 각인된 쿠델카는 떠돌이로 산 팔십 평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요세프 쿠델카 한국서 첫 개인전
체코 출신…‘프라하의 봄’ 찍고 추방
유랑하며 집시·난민들 렌즈에 담아
“내 사진은 이야기 있어 읽어보세요”

“많은 시간을 집시와 함께 하며 찍고 찍히는 관계를 맺다보니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됐어요. 집시적인 삶을 내가 받아들이게 된 거죠. 가장 크게 느낀 건 현생 에서 사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죠. 미래보다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 집시는 본능적인 철학자요 진정한 쾌락주의자입니다.”
요세프 쿠델카의 ‘집시 연작’. 슬로바키아, 1963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요세프 쿠델카의 ‘집시 연작’. 슬로바키아, 1963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한국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작품전을 위해 서울에 온 쿠델카는 집시처럼 쾌활하고 단출했다. 17일 서울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에서 개막한 ‘요세프 쿠델카, 집시’는 그의 혼을 사로잡은 ‘집시’ 연작 111점을 풀어놓은 개인전이다. 본인이 직접 고르고 전담 인화전문가 보야 미트로빅이 프린트한 ‘집시’ 24점이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이 된 인연으로 한국전이 성사됐다. 1975년 초판, 2011년 개정증보판에 이어 『집시』 세 번째 사진집이 한국에서 단독 발간된 점도 화제다. 쿠델카는 이 사진집에 가장 이상적인 자신의 작품 설치 방법을 담았다.
슬로바키아, 1967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슬로바키아, 1967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내 사진은 이야기가 있어요. 관람 순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그룹으로 묶어놓은 3장이나 5장사진들은 이어서 사연을 연상하며 읽어보세요. 내가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거기 담겨있죠. 집시를 피사체로 택한 건 그들이 가장 강력한 이미지이기 때문이에요. 그들 몸에선 저절로 음악이 흐르고, 페이소스가 즙처럼 뿜어져 나와요. 그들은 모두 연출 없는 무대에 오른 배우들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니, 예술 사진이니 하는 분류법은 의미 없어요. 내겐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Good, Bad) 뿐입니다.”
프라하, 1968.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프라하, 1968.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그는 1968년 프라하를 침공한 옛 소련군의 탱크와 이에 맨손으로 대항한 저항군의 대치를 담은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다. ‘프라하의 봄’을 세계에 알린 당시에는 익명으로 발표될 수밖에 없었던 이 사진들 때문에 그는 추방당했고, 1990년 전시를 위해 프라하를 찾을 때까지 20년 동안 유랑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밀착한 그의 사진은 그 자신이 바로 그 집시임을 보여준다. 쿠델카는 80세가 되는 내년에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망명’을 주제로 전시한다. 그치지 않는 테러와 파괴, 유럽을 떠도는 수많은 난민들 앞에서 그는 인류가 그 어느 때 보다 더 갈망하는 자유와 평화의 외침을 듣는다고 했다.
모라비아, 1966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모라비아, 1966 [사진 ⓒ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오로지 찍을 뿐, 사실을 기록한다는 생각뿐입니다. 내겐 특별한 선생이 없어요. 만물이 다 스승이죠. 비참과 광명을 한 얼굴에 포개고 있는 집시는 인간의 숙명을 대본 없이 연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그 운명을 서로 껴안아줘야 합니다. ‘장벽(Wall)’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이 세상 모든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전시는 내년 4월 15일까지(매주 일 쉼). 02-418-1315.
 
◆요세프 쿠델카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에서 출생. 61년 체코 집시를 촬영하기 시작하며 공연 무대 사진가로 활동. 68년 옛 소련군의 프라하 침공을 찍은 사진이 ‘익명의 프라하 사진가’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됨. 70년 서유럽 집시를 찍으러 체코를 떠나며 무국적자가 된 뒤 87년 프랑스에 귀화. 74년 국제 보도사진가 단체인 ‘매그넘 포토스’ 정회원. 사진집 『집시 : 여행의 끝』 『망명』 『장벽』 등 출간.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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