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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서울의 예상치 못한 곳서 ‘크리스마스 정신’을 발견

중앙일보 2016.12.22 00:38 종합 28면 지면보기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지금까지 가족과 떨어져 이날을 맞은 적은 딱 두 번이다. 가족과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살고 있다 보니 생긴 일이다. 서울이나 뉴욕이나 백화점 등이 성탄 조명과 장식을 설치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점은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왠지 연인의 날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는 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빼빼로데이 등 그런 날이 숱하게 있는데 크리스마스도 그중 하나로 인식되는 듯하다. 물론 연인의 날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인, 로맨틱한 저녁식사, 성탄장식으로 상징되는 날이 아니다. 대신 이른바 ‘크리스마스 정신(Christmas Spirit)’이 중요시된다. 크리스마스 정신이란 이타적 마음, 나눔, 기쁨, 가족을 의미한다.
우리 가족의 경우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고모네 집에 40명이 넘는 친척이 모인다.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함께 나눠 먹는다. 가족 만찬이 끝나면 가장 기대되고 뜻깊은 순서가 기다린다. 할아버지의 덕담 시간이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짧은 덕담을 하는데 매년 같은 내용이다. “할머니와 나는 늙어서 돈도 별로 없고 차도 없다. 그래서 너희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게에도 가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조금이나마 현금을 준비했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가장 어린 사람부터 나이 순으로 한 명씩 불러 현금 봉투를 전달한 뒤 꼭 껴안고 입맞춤을 해준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 중 몇몇은 꼭 눈물을 흘린다. 봉투에 든 돈이 많지는 않지만 할아버지께서 편하게 지출할 수 있는 액수는 결코 아니다. 매년 열리는 이 가족의식은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무엇을 받고자 하는 날이 아니라 친절한 마음, 헌신,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누고, 능력 이상으로 타인을 위해 베푸는 날이라는 사실이다.

올겨울 서울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헌신과 나눔, 기쁨과 가족으로 대표되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발견했다. 행진을 마친 뒤 쓰레기를 줍던 집회 참가자들, 커피와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던 시민들, 차가운 겨울 거리에서 미소를 머금고 시민들에게 친절하게 길안내를 하던 경찰에게서 나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봤다. 이런 장면은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덜 외롭게 하며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안겨준다. 크리스마스 정신이 이 계절뿐 아니라 1년 내내 지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해본다.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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