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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5. 붕괴 (3)

중앙일보 2016.12.22 00:01
“형님. 갑선이 시신을 같이 확인까지 해 놓고 그게 또 무슨 말입니까?”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친 김길수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내 시선은 김길수에게서 오희섭에게 옮겨갔다. 텅 비어 있으면서, 착 가라앉은 것 같은 오희섭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병원장님께서 식물인간 상태이긴 하지만 분명 살아있다고 했어. 아직 공인되지 않은 시약을 가지고 투약을 하면 희박하지만 소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씀하셨지. 선생님, 저 꿈에서 갑선이를 봤어요. 그 아이 살아있는 거 맞죠?”
 
나는 오희섭의 가늘게 떨리는 턱으로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보았다.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말밖에는 못 드리겠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와서 심히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우리 손으로 마무리를 해야만 합니다.”
 

결연하게 말한 차재경은 무거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짓누르고는 이무생에게 계속하라는 턱짓을 했다. 내가 내려놓은 가방을 연 이무생은 안에 들어있던 접혀진 창들 사이에서 단단하게 묶여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시간도 없고, 화약도 많이 못 구해서 많이 맹글지는 못한거여. 짜잔, 요거시 바로 이무생 표 권총이여.”

 
비닐봉지를 이빨로 뜯어낸 이무생이 자랑스럽게 들어 올린 것은 짧게 자른 쇠 파이프에 나무로 만든 권총 손잡이를 붙인 사제 권총이었다.
 
“볼트를 깎아서 만든 총알이 들어있는 거여. 요기 뒤쪽을 살포시 잡아 빼고 요기 종이로 싸여진 걸 안에 넣은 다음에 찰칵하는 소리가 나도록 닫으면 장전 완료여. 방아쇠를 진짜 권총처럼 댕기면 약실의 뇌관이 화약을 쳐서 볼트가 날아가는겨. 요건 실험을 제대로 못혀서 얼마나 날아갈지는 몰것네. 참, 요거시 참으로 민감혀서 그냥 총알을 낑겨 놓으면 제멋대로 발사될지 모르니까 보통 때는 총알은 항상 빼놔야 혀. 모두 여섯 자루 만들었는데 누가 챙길껴? 아들이랑 내가 한 자루씩 가져야 하니까 네 사람만 나오셔.”
 
신이 난 이무생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서로를 흘끔거리기만 했다. 주춤거리던 사람 중 제일 처음 사제권총을 받아든 사람은 김길수였다. 오희섭이 두 번째 권총을 챙겼다. 세 번째 권총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온 것은 뜻밖에도 젊은 아가씨였다. 김승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씨가 손을 내밀자 이무생은 허허 웃었다.
 
“아이고, 아그는 총소리만 들어도 오줌을 찔끔거릴 것 같은디 무신 권총이여. 저기 화염방사기나 들어.”
 

김승리가 이무생을 말을 무시하고 사제 권총을 낚아채 버렸다.
 
“철인 5종 하기 전에 근대 5종 경기도 잠깐 했어요. 총소리 들어도 오줌 안 쌀 테니까 제가 가져갈게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김승리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상의 안주머니에 권총을 쑤셔 넣었다. 그런 그녀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던 힙합바지의 청년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나섰다.
 
“저도 하나 주세요.”
 
“군대는 갔다온겨?”
 
“면제에요. 권총은 LA에 유학 가서 몇 번 쏴봤어요. 기관총이랑 샷건이 더 화끈하기는 했지만요. 빠방.”

 
오른손으로 권총 모양을 만든 청년이 침을 튀기며 총 쏘는 흉내를 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무생이 청년을 무시하고 한편에 서 있는 두 덩치들에게 물었다.
 
“어쩌, 권총 쓰실려우?”
 
“저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이거면 됩니다.”

 
아까 내 가슴을 찔렀던 덩치의 이름은 윤삼식, 그리고 그 옆에서 그를 만류했던 또 다른 덩치는 김달호라는 명찰을 가지고 있었다. 짧게 대꾸한 김달호가 가죽 재킷 안쪽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재킷 안쪽에는 크고 작은 사시미와 칼들이 줄줄이 꽂혀있었다. 곁에 있던 윤삼식도 가죽 재킷의 소매에서 한 뼘 정도 되는 날카로운 사시미를 뽑아 들었고, 접이식 전기 충격봉이 달린 허리띠도 보여주었다.
 
“우리 형님은 합기도 5단에 유도 단증도 있고,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씩은 복싱 도장에 나가십니다.”
 

으스대듯 말한 윤삼식이 툭 튀어나온 입술을 혀끝으로 핥았다.
 
“그렇게 배운 복싱으로 조폭 노릇이나 하는 거야?”
 
짧고 하얀 머리를 한 이대백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건 뭐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김달호가 이대백을 향해 노려봤지만 이번에도 윤삼식이 만류했다.
 
“82년 MBC 신인왕전을 우승하셨던 이대백 선수 맞죠? 전 고아원에서 복싱을 배웠습니다. 사각의 링 안에서는 최소한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괄시받지 않을 거라고 믿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차별은 존재하더군요. 그래서 이 짓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긴 가족들이 없으면 더 환영하거든요. 죽어도 조직에서는 부담을 지지 않으니까요.”
 
나지막한 미소와 함께 사연을 털어낸 윤삼식은 가죽 재킷의 옷깃을 매만지면서 차재경을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오늘 밤을 다 새도 임상실험센턴가 7호 병동인가 하는 곳에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못 내려가겠다는 사람은 여기 남겨놓고 나머지만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려, 그려 입만 사는 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당께. 안 그러냐. 형주야?”
 
“아버지는 나서지 좀 마세요.”

 
짜증 섞인 말투로 아버지를 쏘아붙인 이형주는 자기 몫의 창과 총을 챙겨 들고는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버렸다.
 
“저, 저, 저런 못된 녀석 같으니라고, 애미가 일찍 죽고 젖동냥해가면서 키운 은덕도 모르고 말이야.”
 
한탄조차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무생의 말을 끝으로 차재경이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윤삼식 씨 말대로 여기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건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됩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들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검증되지 못한 시약을 투여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역시 제 실험에 동의해주셨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지하 병동에서 현재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건 우리가 시작한 일 인 만큼 우리가 끝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 겁니다.”

 
“빌어먹을, 알겠으니까 당장 앞장서요. 저 밑에는 우리 어머니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데리고 나올 거요.”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곁에 서 있던 중년의 여인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의 명찰에는 각각 박금봉과 박금옥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엄니는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만 하셨슈. 좀 살만 허니까 암인가 뭔가 걸리셔서 머리털 다 빠지고 그러셨지라. 병원에서 허자는 대로 맡기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슈. 오래 못 사시더라도 지 집으로 모셔다가 돌아가실 때까지 따쉰 밥해드리고 싶은 게 소원인께 어서 앞장이나 서시구려.”
 
나는 시큰거리는 콧등을 훌쩍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 얼토당토않은 집단은 하나하나 자신들만의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모여든 것이었다. 어수선하면서 한편으로는 날카롭던 분위기는 두 중년 남녀의 하소연으로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윤삼식과 날카로운 눈빛을 주고받던 이대백이 입을 열었다.
 
“우릴 그곳으로 안내해주시오. 거기에 지옥이 있건 뭐가 있건 들어가서 이 두 눈으로 확인해봐야 할 게 있으니까...”
 
“들어가기 전에 우리 모두 기도해요. 이사야서 7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어느 틈엔가 작은 포켓 성경을 끄집어낸 김원섭의 부인 이유리가 목청을 높였지만 다들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차재경의 뒤를 따랐다. 엉겁결에 쥔 창을 한 순에 들고 잘 맞지 않는 안전모를 한쪽 손으로 누른 나 역시 눈을 감고 열정적으로 성경 구절을 외우는 이유리를 스쳐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약간 뒤떨어져 걷고 있던 사제를 발견했다. 걸음을 빨리 한 나는 묵주를 손에 쥔 채 쉴 새 없이 중얼거리던 사제 곁에 다가갔다.
 
“사제님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뭘 말입니까?”

 
냉담한 대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서양 사람같이 구부러진 매부리코 위쪽의 날카로운 사제의 눈빛을 피한 나는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다만 병원장이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들이나 이미 죽은 시신으로 금단의 실험을 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구마의식을 집행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전 심사숙고 끝에 그걸 승낙한 것뿐입니다.”
 
“그럼 지하 병동인가 뭔가 하는 곳에 악마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거긴 병을 치료하는 곳이라면서요.”
 
“사실...”

 
약간 헐렁한 옷소매에서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꺼낸 사제가 내 눈앞에서 십자가를 흔들어대면서 말을 이어갔다.
 
“악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구분하거나 판단을 내리기 모호한 구석이 많습니다. 사탄이 원래 천사였던 것처럼 선과 악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니까요.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신을 우습게 여기면서 자신들의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죠. 우린 지금 금단의 영역에 들어선 대가를 치르기 위해 가는 겁니다.”
 
사제의 말은 내게 으스스함을 선사했다. 그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걸음을 늦췄지만 사제의 억센 손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저 아래는 지옥입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욕심이 만들어낸 인간들의 지옥 말입니다.”
 
“저 아래가 지옥이건 뭐건 전 가족들을 구할 겁니다. 그러니까 괜히 그런 말로 겁줄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나는 사제의 팔을 힘껏 뿌리치면서 말했다. 낮고 무뚝뚝한 웃음을 뱉은 사제가 소매 속으로 십자가를 집어넣었다. 앞장선 사람들이 멈춰선 곳은 로비의 넓은 중앙계단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낡은 세 개의 엘리베이터들은 계단과 큰 화분들에게 가려져서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제일 안쪽의 엘리베이터에는 폐쇄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붙어있었다.
 
“여기가 출입구인가요?”
 
창을 어깨에 걸친 김승리의 물음에 차재경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래 출입구입니다. 본관 건물의 붕괴 때문에 자동 출입 장치가 고장 났겠지만 수동으로 열 수 있습니다.”
 
호주머니에서 긴 줄이 달린 열쇠를 꺼내서 엘리베이터를 열었다. 칙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엘리베이터는 화물용인 듯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더 넓고 깊어 보였다.
 
“지하층 표시가 없는데요? 이걸로는 지하에 내려갈 수 없잖습니까.”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패널 앞에 선 김길수가 물었다.
 
“외부 사람들에게 임상 실험센터를 숨기기 위한 눈속임입니다. 진짜 출입구는 여깁니다.”
 
반대쪽 벽으로 걸어간 차재경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던 그 열쇠로 모서리를 꽂고 돌리자 벽 한쪽이 스르륵 열렸다.
 
“우와, 이거 완전 영화에서 나오는 비상통로잖아. 멋진데...”
 
힙합바지의 청년이 래퍼들처럼 손짓을 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건들거리는 청년의 가슴팍에서 흔들리는 명찰을 훔쳐보았다. 그곳에는 최민우라는 이름이 주인처럼 건들거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비상통로에는 진짜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쏴아하는 불길한 바람 소리가 역류해왔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안전모에 씌워져 있는 헤드밴드의 스위치를 올렸다. 외눈박이 거인들이 눈을 뜬 것 같은 강한 빛줄기들이 사람들의 어깨 위로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관통했다.
 
“지금부터는 진짜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선두에 설 테니까 다들 한 줄로 서서 절 따라오십시오. 절대로 앞사람을 놓치면 안 됩니다.”
 
좁은 어둠이 만들어낸 메아리 탓인지 차재경의 목소리는 상당히 떨렸다. 나 역시 괜스레 느껴지는 불안감에 쥐고 있던 창대를 꽉 움켜잡았다. 손으로 벽을 더듬던 차재경이 스위치를 올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빛은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거듭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던 차재경은 결국 포기하고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거칠게 마감한 시멘트 벽면과 천정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따라왔는지 이유리가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도해야 해요. 오직 기도만이 우리들을 구해줄 거라고요.”
 
“당신 마누라 입 안 닥치게 하면 당신부터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윤삼식의 것이 틀림없는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다른 한편에서는 박금옥과 박정자가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님, 그 약상자 꼭 가지고 들어가야 해요?”

 
“어머니나 다른 환자들이 다쳤으면 치료해야지. 내가 비록 자격증은 없지만 웬만한 약사보다는 약을 더 잘 조제했어.”
 
“숨이 붙어있는 게 신기해하는 분한테 그런 약 가지고 되겠어요.”
 
“넌 왜 그렇게 매사에 부정적이니. 나이가 먹었으면 철 좀 들어.”

 
박금옥의 따끔한 일침에 박금봉은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 불경을 외우는 소리가 코고는 소리처럼 약하게 들렸다가 사라졌다. 어지럽게 엉켜있던 불빛들이 좁은 복도가 막혀버린 곳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어둠보다 더 차가워 보이는 철제 출입문 옆에는 디지털 도어록이 붙어있었다. 도어록을 열고 번호를 누르던 차재경의 숨소리가 점차 신경질적이 되어갔다. 결국 도어록을 닫아버린 차재경이 고개를 돌려서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도어록이 충격 때문에 먹히질 않습니다. 수동으로 열어야겠는데 몇 분만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여기 이 검은 바를 누르고 안쪽으로 밀면 열리는데 문이 워낙 두꺼워서 혼자서는 안됩니다.”
 

스무 명 남짓한 일행 중에서 힘을 쓸 만한 남자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는 최민우를 제외한 두 덩치와 나, 김길수와 오희섭까지 달라붙어서 힘을 주자 겨우 문이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불빛 속에 드러난 문짝의 두께에 질려서 차재경에서 물었다.
 
“안에 금괴라도 숨겨둔 겁니까? 무슨 은행 금고 문짝 같은데요.”
 
“실험 중인 시약은 바깥으로 유출되면 큰 혼란을 가져올 물건입니다.”
 
“안에는 환자 말고 간호사나 의사들은 없었습니까?”
 
“원칙적으로 상주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바깥에 있는 CCTV를 통해서 관찰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들어가서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 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던 사람은 저와 담당 의사들, 시약 개발자까지 포함해서 모두 일곱 명뿐입니다.”

 
차재경의 대답을 듣는 사이 천천히 문이 열리고 더 깊은 어둠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냈다. 안쪽은 좀 더 넓은 듯 틈을 비집고 들어간 빛줄기가 벽이나 천정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했다. 끼긱대는 문소리 너머로 어둠이 활짝 꽃을 피웠다. 씨근덕거리던 숨소리들이 어둠 한 켠을 채워나갔다.
 
“갑시다. 발밑 조심하세요.”
 
차재경의 속삭임은 거칠어져 가는 사람들의 호흡 사이로 금방 사그러 들었다. 나는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을 훔쳐볼 수 있었다. 불안함으로 곁에 있는 동반자의 손을 꼭 움켜잡은 사람들의 눈은 당장에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고, 체념 어린 눈길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창백함이 깃들어있었다. 아까 약 상자를 가지고 다투던 박금봉이 박금옥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몇 시나 됐어요?”
 
“일곱 시 반.”

 
병원이 붕괴된 지 세 시간 반이 지났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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