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통령만 챙기는 의전은 실패한 의전…모든 참석자가 만족해야 성공"

중앙일보 2016.12.18 20:58
2015년 11월 26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김영삼(YS)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다. 어린이 합창단원들은 추운 날씨 속에서 얇은 단복만 입고 떨었다. 이때문에 `아동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다. 내빈에게는 무릎 담요가 제공됐다. 결국 정부가 뒤늦게 사과헸다. 이와 같이 일부를 위한 의전은 실패한 의전이다. [사진 JTBC 캡처]

2015년 11월 26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다. 어린이 합창단원들은 이날 추운 날씨 속에서 얇은 단복만 입고 떨었다. 이때문에 `아동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다. 내빈에게는 무릎 담요가 제공됐다. 정부가 뒤늦게 사과했다. 이와 같이 일부를 위한 의전은 실패한 의전이다. [사진 JTBC 캡처]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013년 영국 방문 때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숙소 호텔에 요청한 사항이 화제가 됐다.
 
관련 기사

청와대는 당시 객실의 침대 매트리스와 샤워 꼭지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전자레인지를 들여 놓을 것을 호텔 측에 요구했다고 한다. 또 객실에 조명등 두 개와 스크린 형태의 장막을 설치를 원했다. 이런 사실이 보도가 된 뒤 박 대통령의 특이한 취향과 그의 결벽증적 성격이 도마에 올랐다. 이와 함께 과잉의전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었다.
『대통령을 완성하는 사람』의 저자 이강래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대우건설 전략기획 담당 상무ㆍ사진)는 “과잉의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서 대통령 의전관(행정관)을 맡았다. G20 서울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에서의 의전실무 경험과 일반인에게 생소한 의전의 세계를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책으로 풀어 썼다. 『대통령을 완성하는 사람』의 부제는 ‘인간관계의 비밀 <의전>’이다.

그와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과잉의전인가.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의전의 임무 중 하나다. 한국을 찾는 외국 정상들도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과도한 걸 요청하거나 지나치게 요구사항이 많으면 과잉의전으로 비쳐질 수는 있다. 박 대통령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나.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 오전에 참모들과 독회를 하거나 회의를 하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정상 회의에 앞서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챙겨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건 분명 잘못한 일이다.”
왜 독회나 회의를 안 했을까.
“대면보고보다 서면보고를 좋아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인가 싶다. 또 지금 보면 비선라인을 많이 의존해서 그런 거 같다.”
대통령의 의전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은 PI(President Identity)를 통해 외부에 좋은 이미지를 내보낸다. PI는 의전의 결과다. 좋은 의전은 경호와 홍보와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경호는 신변보호를 위해서 가급적 대통령과 외부와의 접촉을 줄이려 하고, 홍보는 그 반대로 외부와의 접촉을 늘리려 한다. 의전은 그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PI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억지로 소통을 권유할 순 없다. 그리고 연출만으론 한계가 있다.”
국민에게 어떤 PI를 전달하는 게 좋은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는 국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외교 행사가 아니면 허울이 없거나 꾸미지 않는 모습을 가끔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5월 베트남 방문 때 하노이 중심가의 쌀국수 식당에서 베트남 전통 음식인 분짜를 먹고 있다. 그의 앞에 앉은 사람은 CNN의 음식 프로그램 `파츠 언노운(Parts Unknown)`의 진행자 앤서니 부르댕이다.  [사진 앤서니 부르댕 인스타그램 계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5월 베트남 방문 때 하노이 중심가의 쌀국수 식당에서 베트남 전통 음식인 분짜를 먹고 있다. 그의 앞에 앉은 사람은 CNN의 음식 프로그램 `파츠 언노운(Parts Unknown)`의 진행자 앤서니 부르댕이다. [사진 앤서니 부르댕 인스타그램 계정]

 
PI에서 롤모델로 제시할 만한 사례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미국은 지금 테러와 전쟁 중이다. 미국 대통령은 테러의 제1 목표다. 그래서 그에 대한 경호는 세계에서 가장 세다. 그런데도 오바마는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리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베트남 방문 때 평범한 쌀국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훌륭한 PI를 본인 스스로 만들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외부와 소통하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면서 이 겸임교수는 “대통령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스태프간 협업이 못잖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숨어 있지만 철통 같은 경호, 자연스럽게 외부에 알리는 홍보, 그리고 모든 걸 조율하는 홍보가 잘 맞아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PI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명박 정부는 초기 광우병 사태에 이어 4대강 건설,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만사형통’ 등 이슈 때문에 국민에겐 불통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그래서 지난 정부 내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외부행사를 치렀고, 가장 많은 외부인을 만난 대통령이다.”
최근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도 의전이 점점 강조가 되고 있다.
“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 관광(Incentive),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 등을 한데 묶어 마이스(MICE) 산업이라고 부른다. 마이스 산업에선 의전이 중요하다. 의전은 한마디로 행사 참석자를 배려하는 일이다. 참석자가 행사에서 만족할 경우 주최 측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고, 그러면 그 의전은 성공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참석자는 주빈과 귀빈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예를 들면 ‘경찰의 날’ 기념식이 있다고 하자. 이 행사의 주인공은 표창을 하는 대통령이 아니다. 바로 경찰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때 ‘경찰의 날’ 기념식에선 단상에 모범 경찰관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고, 대통령은 청중석에 앉게 했다.”

그러면서 이 겸임교수는 “의전은 형식이 아니라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소통”이라며 “주빈과 귀빈을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들이 불편한 행사의 의전은 실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