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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D] 문화계 성폭력에서 악용된 말 "틀을 깨다"

중앙일보 2016.12.18 19:03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 (1638~39)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 (1638~39)

올해 문화계 10대 뉴스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 일련의 문화계 성폭력 폭로가 아닌가 싶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추한 닮은꼴의 반복이다.

한 시인은 자신이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미성년 고등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가 문학에서 벽을 마주하는 이유는 틀을 깨지 못해서 그렇다. 탈선을 해야 한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 등 위계의 차이를 악용한 게 첫째 닮은꼴이고, ‘틀을 깬다’는 말을 성폭력 작업을 위한 ‘틀에 박힌’ 문구로 사용한 게 둘째 닮은꼴이다.

이게 특히 추한 이유는, 첫째, 권력을 비웃고 위계를 전복하는 것을 기치로 내거는 문학예술인들이 자신이 가진 권력과 위계는 참 잘도 이용했다는 것이고, 둘째, ‘틀을 깬다’는 현대 문학예술의 전위 정신을 겉껍질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부터, 여성을 타자화?대상화하는 과거 남성중심주의 시선의 틀은 못 깨면서 그저 폭력적이고 일탈적인 성을 다루는 것을 파격과 혁명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여성을 객체화하는 기존 시각의 틀을 더 강화했고 현실 성폭력에 좋은 밑밥을 만들어 준 것이다.
얀 마시스의 ‘유디트’ (16세기)

얀 마시스의 ‘유디트’ (16세기)

진짜 틀을 깨는 것은 무엇인가? 400년 전 이탈리아에서 비슷한 문화계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아니, 그 고통을 이겨내고 우뚝 선 생존자가 그것을 알려준다. 그녀의 이름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3~1653), 바로크 화가다. (사진1)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I’ (1901)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I’ (1901)

일찍부터 그녀가 그림에 재능을 보이자 화가인 아버지는 동료 화가 타시에게 딸의 그림 교육을 맡겼다. 그런데 이 자가 제자인 그녀를 성폭행했다. 그리고는 그녀와 아버지에게 고발당하자,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성폭행범의 단골 멘트를 구사해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도 즐겼다” 등등을 주장했다.

때문에 그녀는 재판 과정에서 온갖 굴욕적인 조사와 고문까지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재판을 밀어붙인 그녀는 마침내 승리했지만, 타시에게 내려진 형은 고작 징역 1년이었고,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예술에 정진해서 여성을 허용하지 않던 아카데미에서 회원 자격을 얻었고 여러 수작을 남겼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14~20)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14~20)

그 중 중요한 것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들이다. 유디트는 자신이 사는 도성이 아시리아 군에게 포위당해 주민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미인계로 아시리아 사령관 홀로페르네스에 접근해 그 목을 베고 주민들을 구했다.

이 드라마틱한 소재를 다룬 화가들은 수없이 많은데, 남성 화가들이 묘사한 유디트의 모습은 언제나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성스러운 애국 열사의 모습, 또 다른 하나는 남성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요염하고 불길한 팜므 파탈의 모습. 북유럽 르네상스 화가 얀 마시스의 그림(사진2)은 후자의 전형적인 예다. 훗날 20세기 초에 나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사진3)는 그 야릇한 표정부터 에로틱한 반투명 의상까지 마시스의 유디트를 많이 닮았다.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598~99)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598~99)

반면에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성녀도 요부도 아닌 인간의 모습, 동족의 운명을 짊어진 암살 임무를 자진해서 맡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녀의 ‘유디트’ 시리즈 중 대표작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사진4)는 그 잔인하고 격렬한 묘사 때문에, 성폭행 당했던 그녀의 분노와 응징의 감정을 싣고 있다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영향을 미친 카라바조의 그림(사진5)과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는 다른 남성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 바로크적 잔혹함은 그녀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하녀’(1613~14)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하녀’(1613~14)

오히려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이 특이한 점은 암살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유디트의 단호한 표정과 그에 걸맞는 강인한 팔뚝, 그리고 하녀의 조력이다. 이로 인해 그녀의 유디트는 다른 화가의 작품들보다 훨씬 현실성을 띤다. 이렇게 현실성이 빛나는 아르테미시아의 다른 유디트 그림들 중 또 하나를 보면 (사진6), 유디트가 칼을 어깨에 걸친 채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하녀와 함께 무사히 아시리아 진영을 빠져나가기 위해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마시스의 그림 속, 태평하게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폼을 잡고 있는 유디트와는 얼마나 다른가. 아르테미시아의 팽팽한 긴장감 넘치는 그림 속에서 유디트는 더 이상 판타지 속의 객체가 아니라 현실 속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아르테미시아는 작품에서 유디트의 전형을 깨뜨렸고, 또한 자신의 삶에서, 성폭력을 극복한 생존자로서, 회화 예술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에 드문 여성 화가로서, 기존의 질서에 저항했다. “틀을 깬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다. 더 이상 “틀을 깨다”가 문화계 성폭력의 틀에 박힌 작업 문구로서 활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문소영 코리아 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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