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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핵심이익 침해 땐 복수…비온 뒤 땅 굳어지기도

중앙일보 2016.12.18 17:35
중국과 세계질서 그리고 우리. [일러스트=박용석]

중국과 세계질서 그리고 우리. [일러스트=박용석]

적도와 날짜변경선이 교차하는 태평양 한가운데 키리바시란 섬나라가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해마다 국토 면적이 좁아지고 있는 소국이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에 공공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닦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나라가 2003년 대만을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맺었다. 중국은 가차없이 모든 원조를 중단하고 철수하며 키리바시에 세웠던 위성추적기지를 폭파시켜버렸다. 중국과 대만 사이를 저울질하거나 양다리 걸치기를 시도하던 많은 나라들이 중국의 보복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나 감비아, 동남아의 신생국 동티모르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지금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22개국뿐이다.

중국의 보복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큰 나라, 작은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한때 유학했던 프랑스는 서방국 중 중국과 가장 관계가 좋은 나라였다. 그런 프랑스와 맺었던 에어버스 150대 수입 협정을 중국은 2008년 전격 무산시켰다. 또 중국 곳곳의 프랑스계 할인매장 카르푸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매장이 습격을 당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달라이라마와 접견한 데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이 파리의 시위대에 의해 방해 당한 사건이 중국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중국은 국가 통일성 유지나 영토 문제와 관련되는 ‘핵심이익'을 침범 당했다고 판단하면 거의 예외 없이 보복에 나선다. 대만 문제와 연관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거나 달라이라마를 초청하는 나라들이 그 대상이다.

역시 핵심이익의 하나로 보는 남중국해·동죽국해 영토 분쟁에 관련된 보복도 몇 차례 있었다. 2010년 동중국해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에 나포되고 선원이 체포 당하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사건, 2013년 필리핀의 농산물 수입을 통제한 사례 등이다. 2010년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에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자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한 건 류에게 상을 준 행위를 중국 체제 흔들기로 규정한 결과다. 외부 세계가 동의하건 않건 중국의 잣대에 따른 판단이다.

과연 중국은 보복 조치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있을까. 다양한 사례들은 일률적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2010년 희토류 보복을 당한 일본은 즉각 중국인 선원들을 석방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불공정행위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중국에 패소를 안겼다.

단골 보복 대상인 몽골의 사례는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 판단이 애매하다. 달라이라마는 지난달 18일 몽골을 방문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핵심이던 중국~몽골~러시아 경제회랑 계획을 취소하고 국경을 지나는 차량마다 통관세를 부과하는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몽골은 별로 아파하지 않는다. 이번 방문을 포함해 9차례 달라이라마가 올 때마다 중국은 매번 보복조치를 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사과를 받고 슬그머니 제재를 해제했기 때문이다. 4700㎞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중국으로선 몽골과의 관계 악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을 몽골이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라이베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만과 수교했다가 다시 중국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영국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2012년 달라이라마를 만났다가 중국과의 정상외교 일정이 취소되는 등 양국 관계가 얼어붙었다. 일년 반 뒤 캐머런이 사상 최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걸 계기로 중국은 영국에 막대한 규모의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한 중국 전문가는 당시 기자에게 "영국은 밑천 한 푼 들이지 않고 달라이라마 한 번 만나준 것으로 두둑한 현찰을 챙겼다. 중국 정부의 처사가 결코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보복 조치가 풀리면서 중·영 관계가 사상 최고의 황금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옛말에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君子報讐十年不晩)"고 한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복수의 길은 천리도 지척(報讐千里如咫尺)"이라고 썼다. 중국이 지난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의 중국 법인들에 대한 일제 세무조사에 착수하는 등 보복조치가 노골화되고 있다. "사드는 중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한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핵심이익을 건드린 것에 버금가는 행위로 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실물이 들어와 사드 배치가 본격화될 때 더 강한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닥쳐올 쓰나미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나라 사례들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이유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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