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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키즈'의 눈물…민생이 무너진다

중앙일보 2016.12.18 17:20
6월7일 오전 경남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한 인력업체에서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다. 50여 개의 이곳 인력업체 구직자 10~20%가 조선소 근로자 출신이다. 조선소 구조조정 여파로 이들은 아파트 등 건설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한다. 송봉근 기자

6월7일 오전 경남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한 인력업체에서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다. 50여 개의 이곳 인력업체 구직자 10~20%가 조선소 근로자 출신이다. 조선소 구조조정 여파로 이들은 아파트 등 건설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한다. 송봉근 기자

“지난 40년간의 삶이 단 6개월 사이 송두리째 바뀌었어요.”

지난 1일 경남 거제시 ‘조선업 희망센터’에서 만난 천모(40ㆍ여)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두 달 전까지 영어유치원 부원장으로 일했던 그는 이날 취업교육을 받기 위해 센터를 찾았다. ”재취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교육이라도 받아야 실업급여가 나온다는 얘기에 6살 딸아이를 부모님께 맡겨두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천씨와 같은 반에서 50여 명이 교육을 받았다. 그 중 절반 가량은 20~30대였다. 이수천 거제고용센터장은 “지금은 하루 평균 150여 명이 센터를 찾아오는데 수가 매달 20~30% 가량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천씨는 전세계 ‘조선 1번지’ 거제가 키운 전형적인 ‘거제 키즈(kids)’다. 부친은 거제가 산업단지로 개발된 1970년대부터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천씨는 ”대학시절 주변에는 외환위기 여파에 부모님이 실직해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거제의 조선소는 건재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보냈다“고 말했다. 결혼할 때 남편 역시 삼성중공업 직원이었다. 이후의 삶도 풍요했다. 남편과 맞벌이로 버는 연소득은 억대를 넘었고, 아파트도 장만했다.

하지만 조선업의 침몰과 함께 모든 것이 변했다. 시작은 지난 6월 남편의 갑작스런 실직이었다. 지난해부터 조선소 실적이 나빠지고 수주가 줄더니 올 들어선 아예 일거리가 없는 날이 늘었다. 결국 회사는 과장급까지 희망퇴직을 확대했고 그의 남편도 대상이 됐다. 불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삼성중공업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이 인력 감축에 들어가면서 천씨의 직장인 영어 유치원도 직격탄을 맞았다. 유치원생의 부모 대부분이 두 회사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견디지 못한 유치원은 10월 천씨와 같은 교사들을 내보냈다. 넉 달의 시차를 두고 부부가 동시에 직장을 잃었다.

천씨는 “남편이 재취업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10년 넘게 조선소에서만 일한 탓에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지역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남아있는 가장 큰 자산인 집값까지 빠르게 떨어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천씨의 남편처럼 3대 조선사(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에서 퇴직한 인력은 4600여 명이다. 여기에 중소 조선소와 협력업체를 합하면 경남지역에서만 2만 명에 가까운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란 게 현지의 추산이다. 그나마 희망퇴직금이라도 받은 대기업 출신 근로자들의 형편은 나은 편이다. 상당수 도산한 협력업체근로자들은 퇴직금조차 챙기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11월 말까지 조선업계 임금 체불액은 7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407억원)보다 93.2% 급증했다.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인 신화기업의 박정현 전무는“거제는 지금이 ‘97년 외환위기’인 셈” 이라며 “그간 겪어보지 못한 위기 앞에 지역 전체가 두려움에 빠져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가장 막막한 이들이 일용직 근로자다. 조선업체는 자사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주문이 들어왔을 때 임시계약을 맺고 이들을 현장에 투입한다. 이른바 ‘물량팀’이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자 일용직 근로자의 일자리가 가장 먼저 사라졌다. 이수천 센터장은 “소속된 회사가 없으니 실업급여도 받지 못해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는 이들”이라며 "일용직 근로자의 삶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발 위기는 주변 상권과 부동산 시장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면서 무너진 디트로이트처럼 시가 침체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이달 초 찾은 거제의 중심가인 고현동의 건물 곳곳엔 ‘임대’라고 쓰인 딱지가 붙여져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정모(58ㆍ여) 씨는 “조선소 구조조정 이후 가게들이 속소고 문을 닫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도 “고현동은 물론 조선소 인근인 장승포 등지에도 원룸이 남아돈다”고 말했다.

문제는 주력산업의 위기에 지역 전체가 흔들리는 곳이 거제ㆍ울산 등 중후장대형 산업 도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축인 전자ㆍ정보기술(IT)산업에서도 공장 해외 이전 등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올 들어선 갤럭시노트7의 판매 중단까지 겹치며 파장이 더 커졌다.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도시는 경북 구미다. 이달 초 찾은 삼성전자 구미2사업장 앞 식당 거리는 썰렁했다. ‘국내산 돼지고기 무한리필 1인당 9900원’이라는 할인 간판만 보였지만 식당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일식집을 운영하는 이모(54)씨는 “불황은 심각해지고 임대료 내기도 벅차 가게를 내놨다”며 "그동안 난 중산층이라 생각했는데 이러다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겁난다"고 말했다. 9월 기준으로 구미 산업단지공단(산단)의 고용 인원은 9만 명으로 2년 전보다 7000여 명 줄었다. 2012~2015년 평균 333억 달러를 유지했던 산단의 수출액도 올해는 3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기술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최근 구미에는 디스플레이 기술자를 중국이 5년치 연봉을 한꺼번에 제시하며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관련업계 종사자는 “관련 팀 전체를 데려가기도 한다”고 했다. 조영열 구미시청 투자통상과 신성장전략계장은 “중국이 가격 경쟁력에 이어 기술력에서도 따라 붙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거제의 모습이 구미에서도 재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거제=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구미=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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