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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표 정책이지만 창조경제는 무죄

중앙선데이 2016.12.18 01:38 510호 1면 지면보기
“최순실뿐 아니라 관료들까지 홍보하는 데 막 가져다 쓰다 보니 얼룩지고 오염됐다. 하지만 그 본질과 참뜻을 다시 살려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안병우 한반도발전연구원 이사장은 “창조경제는 죄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간판 정책인 창조경제가 최순실 파문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는 창업자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고, 내년 예산도 8% 삭감됐다. 지난 1일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창조경제박람회도 국민의 무관심 속에 흥행에 실패했다.


[이슈 분석] 전문가들 “4차 산업혁명의 또다른 이름, 매력 떨어졌지만 유통기한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차피 한국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창조경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미국·독일·일본 등이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은 창조경제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으로서 매력이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주식회사 한국’의 정책으로서는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미래 세대의 먹거리인 창조경제·문화산업 육성을 중단해선 안 된다”며 “4차 산업혁명의 열차에서 내릴 건가”라고 반문했다.



창조경제의 이론적 배경으로는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의 ‘창조계급론’이 대표적이다. 그는 ‘관용(Tolerance)’이 경제 발전과 성숙을 이끈다고 주장했다. 관용 있는 사회라야 인재(Talent)와 기술(Technology)이 몰려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압축성장을 일군 한국 사회는 관용보다는 단기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특히 관료사회가 그렇다. 예산을 투입했으면 월·분기 단위로 경과와 성과를 보고해야 한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김영삼 정부 시절 시작된 전국 광통신망 설치사업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야 결실을 맺었다”며 “아래로부터의 혁신은 느리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강하고 큰 틀의 변화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자금 지원체계도 바꿔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지급하는 정부 지원금은 국민 세금으로 반드시 회수할 대상이다. 이 때문에 창업육성센터 등에서는 미래 먹거리가 될 정보기술(IT)·서비스 분야보다는 제조·판매 분야에 대한 자금 지원이 더 활발하다. 사업성을 증명하기도, 자금 회수도 쉬워서다. 이 때문에 한국의 기회형 창업(기술창업) 비중은 21%에 불과한 반면 통닭집 같은 생계형 창업 비중은 63%에 달한다(OECD·2013년 기준). 기회형 창업 비중이 높은 네덜란드(67%)·핀란드(66%) 등과는 반대다. 핀란드 기술지원혁신청(Tekes·테케스)의 스타트업 디렉터 마르요 일마리는 “지원해야 할 기업 수나 금액을 미리 정하지 않아 억지로 예산을 소진할 필요가 없다”며 “모자라면 투자자를 더 찾고, 남으면 이월해 다른 기업을 돕는 식”이라고 말했다. 테케스에서는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금 지원 대상 기업과 선정 이유, 심사위원 평가 점수 등을 모두 공개한다.



전국에 흩어진 혁신센터를 모아 창업경제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지역 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은 다른 지역과 상호 협력이나 융·복합을 하기 어렵다. 가까운 거리에 몰려 있어야 장비나 업무를 품앗이하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할 수 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창조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스타트업이 한곳에 모이고 돈을 대는 컨설팅·금융회사도 함께 포진해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며 “미국에서도 실리콘밸리나 보스턴 등 일부 도시에서만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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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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