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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크게 보도했다 아차차, 주민 배울까 수위 낮춰

중앙일보 2016.12.18 01:32
중앙SUNDAY - 제 510 호
 
17일 아침 평양에서 발간된 노동신문 1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형 초상화가 편집됐다. 2면에는 축하의 글로 채워졌고, 3면에는 김정일을 ‘태양’으로 찬양하는 서사시가 한 면 가득 실렸다. 이날로 5주기를 맞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추모하는 편집이었다. 이달 초부터 북한 전역은 김정일 5주기 채비로 들썩였다. 전통적으로 매 5년과 10년을 주기로 한 이른바 ‘꺾어지는 해’를 성대히 기념하는 관행 때문이다. 물론 추모행사의 경우 ‘3년 탈상(脫喪)’에 무게가 실리기도 하지만 5주년 행사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단둥시 등지 화훼상들 조화 특수 누려

집권 5년 맞은 김정은

조선중앙TV를 비롯한 관영 선전매체들은 김정일의 생전 영상을 되풀이 방영하며 찬양·우상 열기를 높였다. 김정일 ‘업적’을 주제로 한 중앙연구토론회도 열리고, 미술전시회와 결의대회 등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주민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 참배와 관련 추모행사에 필요한 조화(弔花)를 조달하기 위해 몰려드는 바람에 북·중 접경 도시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등에서는 화훼상들이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 제고와 체제 결속으로 연결시키려는 동향도 감지된다. 지난 13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강원도 원산의 군민(軍民)발전소를 방문한 사실(실제 방문은 통상 보도 하루 전)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정은이 “장군님(김정일을 지칭)의 체취가 그대로 어려 있는 유복자 발전소”라고 언급하며 가슴 아파했다고 전했다. 김정일 지시에 따라 착공했고 생전에 공사현장을 찾는 등 애착을 보였다는 얘기다.

5년 전 김정일 사망의 파노라마는 북한 주민뿐 아니라 외부 세계에도 또렷한 기억을 남겼다. 영하의 날씨에 흰 눈까지 펑펑 쏟아지는 평양 대성구역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 들어선 검은색 상복 차림의 후계자 김정은. 선대(先代) 수령이자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 행렬을 이끌던 그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고급 관(棺)이 실린 미제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의 보닛을 짚은 채 이뤄진 김정은의 느릿느릿한 행진은 첫 홀로서기였다.

김정일 사망 5주기는 곧 김정은 집권 5년이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급작스러운 부고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평양에 쏠리게 만들었다. 늘 그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새로 등극한 최고권력자의 몫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3남1녀 중 막내아들인 김정은의 당시 나이는 27세. 제대로 후계 권력을 안착시키고 북한체제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를 두고 의구심이 제기된 건 당연했다. 김정일이 1974년 2월 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낙점된 후 20년간 후계 수업을 거친 데 비해 김정은의 제왕학 이수는 짧았다. 2008년 여름 김정일 위원장이 순환기 계통의 질환으로 쓰러진 직후부터 불과 몇 년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집권 5년 성적표는 일단 나쁘지 않은 편이다. 북한체제에 매우 심각하거나 임박했다고 볼 만한 불안정 요인은 없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소 인색할 수밖에 없는 한·미 정보 당국의 공식 견해도 “예상보다는 안정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시기를 거치며 축적된 통치 노하우와 폭압적 통치기관의 작동은 물론 수령 독재, 주체 이데올로기 같은 이론적·실천적 틀이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또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선언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든든한 후견국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도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뒷받침하는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물고기 대풍을 일궈낸 인민군 15호 수산사업소를 방문해 현지지도를 했다고 노동신문이 15일 전했다. [노동신문]

핵심 포스트 130개 중 70% 이상 교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5년 동안 나름대로 선대와의 차별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인적 물갈이 부분이다. 일부 원로 세력에게 예우 차원에서 현직을 유지하도록 하면서도 상당 부분의 인사를 세대 교체 형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통일부는 김정은이 수시로 공개·비공개 인사를 단행해 130여 개 핵심 포스트 가운데 70% 이상을 교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최측근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문고리 권력’의 나이를 70대 위주에서 60대로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일이 주로 교시나 비준 형태로 통치활동을 한 데 비해 김정은의 경우 노동당 7차 대회 개최는 물론 당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등 공식 의결기구의 결정을 거치는 경우가 늘었다. 이를 두고 체제 운영의 비정상적 과정을 정상화하려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핵심 정책 추진 과정에서 김정일 시기보다 훨씬 도발적 행태를 보이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은 고립을 심화시키고 위기지수를 높였다. 핵·미사일 도발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정은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북핵 해결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올 들어서만 북한은 1월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8개월 만에 다시 추가 핵실험을 했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에 이어 2321호를 통해 대중 석탄 수출 통제 등 더욱 강력한 제재방안을 선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북한은 올 들어서만 탄도미사일 21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4발 등을 쏘아 올리는 등 미사일 도발 능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미 실전 배치한 것으로 파악된 무수단(북한명 화성-10호) 중거리 미사일의 경우 올해 무려 8차례의 시험 발사에서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모두 실패하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무자비한 공개처형과 숙청으로 점철된 공포정치는 김정은이 노동당과 군부 고위 간부들에게 절대충성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고모부 장성택을 2013년 12월 반혁명 혐의 등으로 처형함으로써 강력한 본보기식 처벌 사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엘리트 간부들에게 체제에 대한 반감을 축적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지난 7월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뒤이어 베이징(北京) 주재 북한 대표부에서 근무하던 보건성 대표가 탈북하는 등 엘리트의 체제 이반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에는 한국 정착 탈북자 숫자가 3만 명을 넘어섰다.
 
“부귀영화 누리게 할 것” 약속 못 지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다.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4년 넘도록 구체적인 성과는 보여 주지 못했다. 2013년 제시한 이른바 경제·핵 병진노선도 마찬가지다.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으니 그동안 재래식 무기 등 군비 지출에 들어가던 돈을 줄여 인민생활에 돌리겠다고 말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 꼽히는 특권층 부상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고급 식당과 유흥시설은 물론 워터파크와 골프연습장, 승마장 등이 속속 들어섰다.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와 해맞이식당 카페에서 팝콘을 함께 먹었다. 서구 패스트푸드점 분위기에 동화 속 인물 같은 복장을 갖춘 여성 의례원(판매원)이 햄버거와 치킨·핫도그 등을 파는 업소도 등장했다. 서구식 식음료 문화인 이른바 ‘양풍(洋風)’이 주민 일상생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문수물놀이장에서는 수영복 차림의 주민들이 대동강맥주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북한에도 ‘치맥(치킨+맥주)’ 문화가 상륙했다는 얘기다. 한때 이런 모습을 두고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현재로선 난망한 상황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15일 열린 북한 경제 세미나에서 “고가 휴대전화가 증가하고 사치품과 고급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암시장 환율, 즉 이중환율과 이중가격제로 인한 것”이라며 북한의 양극화 현상을 지적했다.

꼬인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도 김정은에게 남겨진 숙제다. 김정은은 박근혜 정부와의 대화 모색을 위해 청와대 문을 연신 두드렸지만 깐깐한 입장에 막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남한에 최순실 사태로 인한 탄핵정국까지 벌어지자 대남 전략에 고심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동안 촛불시위 소식을 떠들썩하게 전하며 반색하던 북한 매체들은 국회 탄핵 가결을 기점으로 수위조절에 나섰다. 한 탈북 인사는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할 수 있는 민주사회의 실상에 북한 주민들이 눈뜰 경우 불똥이 평양 권력에까지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는 탐색전에 나선 모습이다. 자칫 트럼프를 자극했다가는 대북 강경노선의 된서리를 맞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핵 도발 과정에서 냉각된 북·중 관계의 복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5년 전 김정은과 함께 운구차를 끌던 7인의 노동당과 군부 인사를 두고 “이들이 평양 권력의 핵심 축이 될 것이다”는 전망이 무성했다. 하지만 대부분 처형·숙청되거나 퇴진했고 김기남·최태복 국무위 부위원장 두 사람만 현직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북한체제를 예측한다는 건 지난(至難)하고 안갯속을 걷는 것과 같은 일이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에게 앞으로 5년 뒤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도 마찬가지다. 당장 2017년 그에게 닥칠 일이 궁금해진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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