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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08> 저우언라이 "첸쉐썬 돌려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

중앙일보 2016.12.18 01:22
중앙SUNDAY - 제 510 호
 

중·미 대사급 회담장의 왕빙난(왼쪽 둘째)과 요한슨(오른쪽 둘째). 1955년 8월, 제네바

1955년 6월 15일 밤, 첸쉐썬(錢學森·전학삼)은 중국 전인대(全國人民代表者大會) 부위원장 천수퉁(陳叔通·전숙통)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수년 전 저의 착오로 미국 정부에 구류된 지 5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조국의 건설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제가 겪는 고충은 표현이 힘들 정도입니다. 미국은 귀국을 원하는 중국학생들은 모두 돌려보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말들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저 외에도 조국에 돌아가기를 바라는 유학생들이 많습니다. 저의 뜻을 정부에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도 오려서 동봉했다. “한때 칼텍 공학원의 저명한 로켓 전문가 첸쉐썬을 중국으로 추방하려 했다. 거의 동시에 이민국은 미국의 최고 이익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연방수사국(FBI)은 중요 자료들의 중국 반출 기도 혐의로 첸쉐썬을 체포했다. 조사 결과 비밀 자료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벨기에에 있는 처제 장화(蔣華·장화)의 주소는 부인 장잉(蔣永·장영)이 왼손으로 애들 글씨를 모방해서 썼다.
 
 
첸쉐썬, 전인대 부위원장에게 편지

연금 시절의 첸쉐썬. 1954년 봄, LA.

첸쉐썬이 발송 방법을 난감해 하자 장잉이 꾀를 냈다. “마을 인근, 대형 상점 찻집에 우편함이 있는 걸 봤다.” 장잉과 함께 상점에 간 첸쉐썬은 문 앞에서 기다렸다. 부부가 장 보러 왔을 때, 남자가 상점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미국에서는 정상이었다. 뒤따라온 FBI 요원들은 첸쉐썬의 행동만 주시했다. 상점에 들어간 장잉은 주위를 살폈다. 보는 사람이 없자 민첩하게 우편함에 편지를 투입했다. 편지는 별 탈 없이 벨기에까지 갔다.

장화는 상하이에 있는 아버지 첸쥔푸(錢均夫·전균부)에게 형부의 편지를 보냈다. 첸쥔푸도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옛 친구 천수퉁에게 아들의 편지를 보냈다. 천수퉁은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를 찾아가 첸쉐썬의 편지를 보여줬다. 저우언라이가 황급히 외교부에 지시했다. “중·미 회담이 열리는 제네바로 보내라. 미국이 중국인의 귀국을 방해하는 증거가 이 안에 있다.”

1954년 4월, 19개국 대표들이 제네바에 집결했다. 흐지부지 끝날 무렵, 중국 대표단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미국 정부는 우리 교민과 유학생들을 무리하게 억류하고 있다. 미국과 직접 담판하고 싶다”며 대사급 회담을 제의했다. 미국 측도 동의했다. 중국은 폴란드 대사 왕빙난(王炳南·왕병남)을, 미국은 판문점 회담에도 참여했던 체코주재 대사 요한슨을 대표로 지명했다.

1955년 8월 2일, 중·미 대사급 두 번째 회담에서 요한슨이 중국 측에 억류된 미국 교민과 군인 명단을 내밀었다. “이 사람들이 조속한 시일 내에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바란다.” 왕빙난이 입을 열었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쌍방의 성의가 중요하다, 중국에 있는 미국 교민들은 중국 법률만 준수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중국 경내에 거주하며 합법적인 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 형사나 민사 사건에 관련되지 않았다면, 언제건 출국이 가능하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래 미국 교민 1485명이 중국을 떠났다. 현재 남아있는 극소수는 간첩이나 파괴활동으로 체포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늘 받은 명단은 충분히 검토하겠다. 다음 회담 때 미국에 억류 중인 중국인 유학생 귀국 문제와 함께 답하겠다.”
 
“첸쉐썬은 조국의 품을 그리워한다”
세 번째 회의에서 왕빙난은 첸쉐썬을 거론했다. “신중국 성립 소식을 들은 첸쉐썬은 조국의 품을 그리워했다. 미국 정부는 그를 억류하고 위협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요한슨은 미국 법률을 거론했다. “한국전쟁 기간, 미국은 로켓과 원자탄 제조에 관련된 중국인의 출국을 법률로 금지한 바가 있다”. 왕빙난도 맞받았다. “무리한 규정은 폐기시켜야 한다.”

첸쉐썬이 천수퉁에게 보낸 편지를 전달받은 왕빙난은 요한슨에게 비밀 접촉을 제의했다. 제네바의 조용한 카페에서 요한슨을 만난 왕빙난은 첸쉐썬의 편지를 읽어줬다. 며칠 후 대사급 회담이 열렸다. 시작과 동시에 왕빙난이 성명서를 읽어내려갔다. “중국 정부는 미국 간첩 11명을 석방하기로 했다.” 다음날 회의에서 왕빙난은 미국에 억류 중인 중국인 명단을 요한슨에게 전달했다. 첸쉐썬의 이름이 맨 앞에 있었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첸쉐썬은 베이징의 천수퉁이 보낸 전보를 받았다. “네가 보낸 편지는 잘 받았다. 제네바 주재 미국 대사가 너에 대한 모든 금지는 취소됐다고 우리 측에 통보했다. 귀국 날짜를 알려주기 바란다.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바로 연락해라.”

스승이며 동료였던 카먼이 제일 기뻐했다. “너는 학문적으로 이미 나를 추월했다. 조국에 돌아가면 더욱 분발해라. 과학은 국경을 가릴 필요가 없다.” 훗날 저우언라이는 이런 말을 했다. “중·미 대사급 회담은 세계 외교사에 남을 마라톤 회담이었다. 15년간 136차례 열렸다.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첸쉐썬을 돌려받은 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김명호
[사진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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