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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뉴미디어, 시민과 함께 ‘실시간 역사’ 만들다

중앙선데이 2016.12.18 01:02 510호 12면 지면보기

8차 주말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17일 광화문에서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까지 행진한 뒤 집회를 갖고 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헌재의 신속한 탄핵 심판을 요구했다. 조문규 기자



언론이 제 일을 하니 시민들이 바빠졌다. 최순실 청문회 생중계도 틈틈이 봐야 하고 기자나 평론가의 해설도 검토해야 한다. 친구나 지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보낸 메시지도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과 측근 관련 소문이라는 데 무시할 도리가 없다. 저녁이 되면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챙기고, 자기 전엔 온라인 공동체의 베스트 게시글도 읽는다.


최순실 게이트와 미디어

잠이 부족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뉴스를 거를 수 없다. 지금껏 밝혀진 것만 해도 충격적이지만 남아 있는 사실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특검도 남았고, 헌재의 탄핵 심판도 남았다. 야담이나 괴담급 이야기들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배울 게 많아 좋다. 1970년대 정치 야화의 등장인물도, 어떤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름도, 주사제 약물 이름도 배웠다. 이제 헌법도 새로 배우고 있다. 2005년 황우석 사건 때 줄기세포에 대해,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어뢰와 잠수함에 대해 배웠던 실력으로 헌법기관의 권능과 한계를 새로 배운다.



요즘처럼 언론의 특종과 단독이란 말이 명실상부했던 적이 있었던가. 시민의 삶과 별로 관계없는 특종, 남의 글을 베낀 것 같은 단독, 그래도 줄곧 ‘충격’ ‘경악’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며 그러려니 하고 무시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시민들의 뉴스 보는 눈이 밝아지고 있다. 다음 세 가지 계기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 특종도 뒤집힐 수 있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연속 보도했다.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등 비선 실세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던 역사적 특종이었다. 지금 와서 알게 된 일이지만 해당 문건엔 최순실이란 이름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폭로를 ‘문건 유출 사건’으로 둔갑시켰다. 국기 문란이라고 주장하며 세계일보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본말을 뒤집은 것이다.



이런 뒤집기가 또 가능할까. 지난 10월 24일 JTBC 뉴스룸은 최순실 태블릿PC를 확보, ‘역대급’ 특종을 터뜨렸다. 국정 농단의 정황을 넘어선 실체적 증거를 제시했다. 그런데 되짚어 보면 이 특종은 청와대의 뒤집기 시도를 물리치며 나온 것이다. 10월 24일 오전 대통령은 최순실을 타깃으로 삼아 좁혀 오는 언론의 의혹 제기를 돌파하겠다는 듯이 개헌 카드를 제시했다. 이런 뒤집기 시도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JTBC의 태블릿PC 입수 경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다시 본말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둘째, 진짜 뉴스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TV조선은 지난 7월 26일 삼성 등 대기업이 두 달 만에 486억원이란 거액을 미르재단에 출연했다고 보도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한 정황까지 제시했다. TV조선은 8월 중순까지 수십 건의 후속 보도를 했건만 당시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9월 20일 한겨레가 K스포츠재단과 최순실 간 관련성을 제기하고,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의혹을 물고 늘어지면서 비로소 ‘우리가 아는 그 역사’가 시작됐다.



언론사도 많고 기자도 많다. 뉴스라고 딱지 붙은 정보도 너무 많다. 그러나 지금 떠도는 뉴스가 모두 사실일 리는 없지만 이 중에 TV조선의 미르재단 보도와 같은 선도적인 가치를 갖는 뉴스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역설 같지만 정보의 가치란 정작 필요한 순간이 지난 후에야 평가할 수 있다. 지나고 나야 중요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걸 이번 최순실 사태로 배우게 됐다.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진짜 뉴스’를 알아보는 능력과 안목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셋째, 하찮은 뉴스가 진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국회 탄핵 단초가 된 최순실은 외교정책을 포함한 정부의 주요 정책과 인사 개입, 사법부와 국방사업에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개인 건강과 미용, 측근들의 사생활과 특이한 경력도 중요한 뉴스로 취급됐다. 당혹스럽게도 애초에 황당한 의혹 제기처럼 보였던 이야기들이 나중에 사실로 확인되니, 이런 황당한 사실조차 대통령과 측근들의 행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차근차근 정보를 수집하는 수밖에 없다. 간혹 황당한 정보가 끼어들기도 하지만 일단 접수해야 사실인지 아닌지 나중에라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과거 비판론자들은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무기력하다고 타박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우리의 시민성이 빛났다. 이 집합적 주체는 다른 어떤 역사 속의 시민보다 현명하고 결연한 방식으로 민주공화국의 위기 순간에 등장했다. ‘유식한 공중’으로, ‘참여하는 공중’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그리고 권력의 주체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전환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새로운 망(網)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인터넷이라 불리는 이 망은 단지 통신망 기술과 서비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뉴스를 공유하고, 해석을 덧붙여 여과하고, 새롭게 정보를 정련해 공유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 망은 실시간으로 부단히 자신을 갱신하는데 바로 이 특성 때문에 이 망에 연결된 시민은 자신이 어떤 일에 참여하고 있는지 민감하게 자각할 수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효과도 바로 느낄 수 있다.



신문·방송으로 대표되는 올드미디어와 SNS 등의 뉴미디어로 인해 이제 역사는 ‘실시간으로’ 의미를 형성한다.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후 사관이나 평론가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해당 사건에 참여한 행위자들이 실시간으로 글과 사진, ‘좋아요’와 이모티콘으로 해석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최근 국정조사 중계를 시청하던 한 시민이 실시간으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증언을 반박하는 정보를 야당 국회의원에게 제공하자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을 모른다고 할 순 없다”며 말 바꾸기를 해야 했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과 뉴스로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을 고무시켰다. 이런 게 가능하면 저런 것도 되겠네…. 놀라운 체험을 한 시민들은 새로운 실천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촛불집회에서부터 최순실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시민은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의 주체인 공중으로, 그리고 권력의 주체인 공중으로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이준웅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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