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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행진, 세계 무대서 계속된다

중앙선데이 2016.12.18 00:40 510호 6면 지면보기
13일 서울 한남동에서 열린 경기필하모닉(경기필) 기자간담회에서 경기문화재단의 정재훈 사장은 지난 9일 한국공연 예술 경연인 협회로부터 ?올해의 공연예술가상?을 받은 성시연(40) 지휘자를 “음악밖에 모르는 지휘자”라 소개했다. 이 말이 완전히 옳다고 하긴 힘들다. 물론 성시연은 음악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하고 탐구하는 지휘자다. 하지만 그가 정말 잘하는 일은 오케스트라의 경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이던 성시연은 2014년 경기필의 상임지휘자로 옮겨왔다. 이후 경기필의 시야를 세계 무대로 확장시키고 있다. 지난해엔 독일 베를린필하모니홀에서 연주했다. 베를린필하모닉의 상주홀인 이 무대에 오른 최초의 한국 오케스트라였다. 이달엔 유서깊은 음반회사인 데카의 레이블을 달고 말러 교향곡 5번을 녹음해 발매했다. 기술적ㆍ음악적으로 까다로운 작품을 첫 녹음곡으로 정한 점이 눈에 띈다. 내년 9월엔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로 베를린 음악축제인 무직페스트 베를린(Musikfest Berlin)에서 연주한다. 베를린필·뉴욕필·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이 연주했던 음악축제다. 성시연 자신의 말대로 “세계 무대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오케스트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휘자”인 경기필과 성시연이 세계 무대에 잇따라 서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공연예술가상' 받은 경기필하모닉 지휘자 성시연

성시연은 10년 전부터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에 익숙하던 지휘자였다. 2007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137년 역사상 첫 여성 부지휘자로 위촉됐다. 경기필에 임명됐을 때도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지휘자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제는 경기필과 함께 ‘여성 최초’ 대신 ‘최초’라는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좀 진부하게 느껴진다면, 오케스트라 연주의 결을 보자. 성시연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주력했던 것은 경기필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공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떤 사상을 가지고 새롭게 도약하는 오케스트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했다. 하모니ㆍ앙상블과 같은 기초적인 실력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데 시간을 투자한 이유다. 성시연은 디테일에 강한 지휘자다. 스스로 “나는 음악의 작은 것, 소소한 것에 상당히 집착하는 면이 있다. 어찌 보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게 단점”이라고 할 정도다. 단점이라고 했지만 실력을 한 단계 높이려는 오케스트라에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이번에 발매한 음반에서는 그렇게 튼튼하고 계획적으로 쌓아올린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세계 무대로부터의 초청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이같은 음악이 통하기 때문이다.



성시연은 “내년은 경기필만의 소리를 만들기 시작하는 해”로 정했다. 브람스를 주요 레퍼토리로 연주할 예정이다. “학생 때 지휘자 첼리비다케의 젊은 시절 브람스 녹음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에너지와 패기가 좋았지만 나는 더 잘 익은 브람스를 하고 싶었다. 어느덧 마흔이 됐으니 이제는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휘자로서 40세는 젊은 나이다. 그러나 성시연의 묵직한 행보는 젊음보다 신중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예측 불가능한 예술가적 기질보다는 신중한 계획에 바탕한 음악이 그의 스타일이다. 여기에 오케스트라라는 조직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로서의 면모가 더해지고 있다. 성시연의 이런 장점이 경기필을 어디까지 이끌고 갈 수 있을까. ●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 경기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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