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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뒤흔든 나른한 곡선과 화사한 색조

중앙선데이 2016.12.18 00:38 510호 14면 지면보기

‘보석: 에메랄드’(1900), 채색 석판화, 67.2 x 30 cm

1 ‘백일몽’(1898), 채색 석판화, 72.7 x 55.2 cm



은은한 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향긋함 속에 흐트러진 듯 자연스러운 황금빛 머리카락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마냥 나른해져서 이 분위기 속에서 영영 깨지 않아도 좋다는 기분이 든다. 내일은 생각하기 싫고 오직 붙잡아 두고 싶은 오늘만 존재하는, 이런 데카당한 기분이 19세기 말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에 깃들어 있다.


예술의전당 알폰스 무하 전 가보니

알폰스 무하(Alphose Mucha·1860~1939)는 아르누보의 대명사로 불리는 작가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12월 3일~2017년 3월 5일)는 꽃과 여인의 환상을 부각시킨 무하의 광고포스터와 더불어, 여전히 그 환상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판 무하들 -한국과 일본의 만화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이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2 랑스 향수 ‘로도’ 포스터(1896), 채색 석판화, 44.5 x 32 cm



인류의 긴 역사 중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짧은 20년 정도를 유럽인들은 ‘벨 에포크(Belle epoche)’라 부른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인데, 회고적인 뉘앙스에서 붙인 말이다. 유럽인들이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니, ‘그때가 가장 좋았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벨 에포크의 정점인 1900년 파리에서는 만국박람회가 열렸고, 전시가 열리는 6개월 동안 파리의 역사상 최고로 많은 사람들, 무려 1억 명이 넘는 여행객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낮에는 구경거리에, 밤에는 불빛과 음악과 포도주에 취했다.



구경꾼이 모여드는 곳은 광고를 하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박람회가 열리는 전시장 주변과 지하철역, 카페, 그리고 거리의 벽과 키오스크 곳곳에는 공연포스터뿐 아니라 술·향수·담배·비스킷 등 상품을 광고하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수많은 포스터의 스타일을 장악한 것은 단연 무하였다.

3 ‘모나코-몬테 카를로’ P.L.M. 철도 서비스 포스터(1897), 채색 석판화, 110.5 x 76.5 cm



무하 스타일의 원형 중 하나는 Q공식(Q-Formula)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백일몽’(그림1)이라는 작품에서 여인의 이미지를 둘러싼 원형의 배경은 오른쪽 바닥을 향해 책이 떨어지는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되는데 이것이 바로 Q공식이다. 후광과도 같은 원의 신비로운 느낌을 살리되 완전히 원안에 인물을 가두지 않는 구도라고 볼 수 있다. ‘로도’(그림2)라는 향수광고 포스터에서는 오른쪽 아래 코너의 알파벳 A를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Q의 형태를 만드는가 하면, ‘모나코-몬테카를로’(그림3)라는 철도서비스 포스터에서는 여인의 늘어진 치맛자락을 통해 Q 효과를 내고 있다.



 

신비로운 느낌 극대화하는 무하의 Q스타일

무하는 벨 에포크와 분리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삶 자체가 벨 에포크의 화려한 꿈같기 때문이다. 그는 박람회가 열리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무작정 파리로 넘어와 난로도 없이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던 체코의 한 청년에 불과했다. 이국땅에 와서 말도 통하지 않고 궁색한 쪽방에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젊은이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포스터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 있다면 그건 현실일까, 꿈일까.



1894년의 파리, 크리스마스 연휴에 혼자 텅 빈 작업실에서 언 손을 비비고 있던 무하에게 인쇄소 매니저가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몰이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하는 ‘지스몽다(Gismonda)’의 포스터를 그려달라는 것이었다(그림4). 포스터는 연휴 중에 인쇄를 돌려 새해 첫날 아침부터 파리 거리를 도배하듯 붙어 있어야 했지만, 이미 제작된 포스터는 사라에게 퇴짜를 맞은 상태였고 다른 후보 디자이너들은 모두 휴가 중이었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감히 꿈도 못 꾸던 사라 베르나르를 그릴 기회가 무명의 무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드디어 1895년의 새해 첫날이 밝았다. 시내 곳곳에 무하의 포스터가 걸렸고, 사라의 광팬들은 그림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지스몽다’의 여배우는 양단으로 만든 가운에 난초 머리장식을 하고, 한 손에는 야자수 나뭇가지를 세워 쥔 채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올곧게 서 있는 비잔틴 귀족으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전신을 보여주는 오버사이즈의 긴 포스터는 사라의 모습을 기념비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무하는 사라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순식간에 이름을 알렸다. 무하가 제작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던 사라는 무대 의상과 보석은 물론 무대 디자인까지도 모두 그에게 맡겼다. 1896년 초연된 ‘카멜리아’ 공연을 위한 포스터(그림5)에서 무하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이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사라는 극중 주인공인 동백꽃 부인 카미유를 당대 파리를 대표하는 최고의 매력적인 여인상으로 창조해냈다.



한국과 일본의 순정만화로 스타일 이어져

이렇듯 벨 에포크를 풍미했던 무하의 스타일은 당대의 사람들을 매료시켰지만, 비현실적인 주제에 상업적 그래픽 장르라는 이유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아오지는 못했다. ‘모던(modern)’이라는 단어가 미래지향적이고 진보적인 것에 초점을 둔다면, 아르누보의 ‘누보(nouveau)’는 현재 뿐인 새로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비판적 평가에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싶은 세기말 사람들이 미래를 위한 열정까지 남겨둘 여력이 없으리라는 편견도 개입되어 있다.

파리 발 드 그라스 거리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라 베르나르를 위한 포스터를 배경으로 앉아있는 무하(1901). Modern print from original glass plate negative, 24 x 18 cm



아르누보에 퇴폐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여성 취향의 스타일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규칙과 각 맞추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아르누보의 비대칭적이고 구불거리며 복잡하게 꼬인 선들을 혐오하며, 시대적 불안감의 징후로 읽기도 했다.



오늘날 무하의 스타일을 계승하는 자들은 주로 만화작가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순정만화 작가들이 무하와 비슷한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아르누보에 대한 가치 평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듯, 20세기 후반 우리나라에서 순정만화는 그리 독려돼지 않는 장르였다. 길고 마른 서양 인물에 뜬금없는 장식들, 그리고 치렁치렁한 머리와 질질 끌리는 옷자락 등 비현실적인 소녀 취향을 조장해 우리 미풍양속과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21세기 들어 만화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독자들의 취향도 다층위적이 되면서 무하 스타일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도덕적 퇴행이나 정서적 불안의 징후로 진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무하 스타일은 무엇을 이러이러하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주장까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사회에 대한 예술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



 



◇전시 정보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12월 26일, 2월 27일), 설연휴 정상운영.성인 1만5000원. 문의 02-6273-4242



 



 



글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myjoolee@gmail.com 사진 컬쳐앤아이리더스·ⓒMucha Trus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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