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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 여자 넷 ‘술 앤더 시티’ 찍는 곳

중앙선데이 2016.12.18 00:26 510호 28면 지면보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맘때면 꼭 만나는 세 명의 술친구가 있다. 아주 유쾌한 친구들인데 각각의 캐릭터도 뚜렷하다. 술 못 먹는 여자, 술 몰래 먹는 여자, 술 많이 먹어 힘든 여자. 그리고 내 캐릭터는 술이 삶인 여자다. 이렇게 네 명의 여자가 모이면 그날만큼은 우리만의 드라마 ‘술 앤더 시티(Sool And the City)’를 찍는다!



‘술 못 먹는 그녀’는 임신 6개월 차의 임산부다. 술을 잘 마시진 못해도 냉장고에 다양한 술을 채워두고 조금씩 맛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남편이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다. ‘술 몰래 먹는 여자’는 새댁이다. 결혼 전 그는 야근한 날 저녁이면 집에서 만취할 때까지 술 마시다 자는 게 낙이었다. 결혼 후부턴 신랑에게 만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남편이 야근으로 늦는 날에만 홀짝 홀짝 마시는 처지가 됐다.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18- 마켓오

‘술 많이 먹어 힘든 여자’는 30대 커리어 우먼. 직장에서 잘나가는 그녀는 연애도 프로급이다. 무려 6살이나 연하인 20대 훈남과 열애 중인데, 문제는 체력이 달린다는 것. 남친의 주도 하에 매일 밤 퇴근 후엔 술, 주말엔 여행 다니느라 체력이 바닥이다. 마지막으로 ‘술이 삶인 여자’인 나는 기승전‘술’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일도 술, 사람을 만나도 술. 하지만 술에는 장사 없다고 나도 체력이 달려 최근엔 ‘간 저축’‘체력 보충’에 신경 쓰고 있다.



이런 우리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만큼은 너무 세게 달리지 말자고 해서 주종은 와인으로 정하고, 가성비 좋은 와인 레스토랑을 고민하다 도산공원 사거리에 위치한 레스토랑 ‘마켓오’를 선택했다.



2003년 오픈해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이곳의 컨셉트는 ‘내추럴 키친’이다. 식재료 관리를 위해 전국 각지의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마켓오 팜’을 운영한다. 매일 아침 전국 각지의 농장에서 신선한 식재료들이 올라온다. 최근 외식 시장의 가장 큰 화두는 가성비. 맛과 가격, 분위기와 서비스를 두루 갖춘 곳을 선호하는 추세다. 마켓오는 1만~2만원 대의 메뉴를 고루 갖춘 데다 양도 넉넉하고 푸짐하다. 넓고 쾌적한 매장엔 모임 하기 좋은 룸도 여럿 있다.



애주가들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건 와인 숍의 가격과 비슷한 가격대의 와인을 다양하게 판매한다는 점이다. 3만8000원의 밸류 셀렉션, 5만5000원의 파인 셀렉션으로 리스트를 나누고 글라스·하프 사이즈 등으로도 판매한다. 콜키지(Corkage) 요금도 없어서 와인 애호가, 동호회 모임 장소로 인기다.



김진원(32) 헤드 셰프가 추천한 첫 메뉴는 아보카도 샐러드. 숙성된 아보카도, 반숙 계란, 참숯에 구워낸 삼겹살, 신선한 채소가 어우러진 메뉴다. 참깨소스와 땅콩 크림을 곁들여 고소하다. 샐러드엔 상큼한 스파클링 와인이 제 맛.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생산된 카바(스파클링 와인)인 ‘클로 몽블랑 프로젝토 콰트로 카바 브륏(Clos Montblanc, Proyecto Cu4tro Cava Brut)’을 매칭했다. 배·복숭아 등의 과일 풍미가 풍부하고, 입안을 채우는 상큼한 버블이 경쾌한 와인이다. 맛도 너무 달지 않아서 식전주로 제격이었다.



다음 메뉴는 어부의 해물 파스타. 제철 한치를 비롯해 백합·모시조개·새우·관자 등의 해산물이 풍성하게 들어갔다. 오일 베이스로 요리하다 조개육수와 토마토소스를 더했다. 해물 파스타에는 뉴질랜드의 상큼한 소비뇽 블랑 품종의 와인 ‘실레니 에스테이트 셀렉션 소비뇽 블랑(Sileni Estate Selection Sauvignon Blanc)’을 곁들였다. 가격대비 완성도 높은 맛을 선사하는데, 특히 침샘을 자극하는 산도가 매우 매력적이다. 해산물과 궁합이 정말 좋아서 노량진 수산시장에 갈 때면 꼭 이 와인을 챙겨간다. “술의 신 바쿠스와 평생 술친구로 함께한 요정 이름이 ‘실레니’래. 오늘 우리 모임에 딱이지?”



다음 메뉴는 술 많이 먹어 힘든 그녀의 체력 보충을 위한 파머스 스테이크. 부드러운 호주산 등심 스테이크로 양이 아주 푸짐하다. 시어링(스테이크 겉면을 바삭하게 굽는 과정)을 해서 겉은 바삭, 속은 육즙이 가득하다. 스테이크에는 ‘알레그리니 팔라조 델라 토레(Allegrini Palazzo Della Torre)’를 곁들였다. 97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와인에 5년 연속 랭크됐던 와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와인 명가 알레그리니가 만든 것으로 ‘팔라조 델라 토레’는 탑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궁전처럼 매력적인 와인을 만든다는 의미일 터.



통새우버거, 양고기 새우 퀘사디아, 통 전복 오일 파스타를 더 주문하고 와인도 2병 더 마셨더니 우린 모두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술이 삶인 여자인 내가 “그래도 한 잔 더!”를 외치는데 만취한 새댁을 데리러 친구의 남편이 나타나는 바람에 술자리는 강제 종료됐다. 얘들아, 술이 왜 이렇게 약해진 거니? 우리 그만큼 늙은 거니? 아무리 그래도 좋은 사람과 술 한 잔 할 정도의 힘은 챙기고 살자. 아듀 2016!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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