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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완얼’이 아무리 대세라해도

중앙선데이 2016.12.18 00:24 510호 29면 지면보기
가끔 본의 아니게 식당에서 옆 테이블 대화를 듣게 될 때가 있다. 실내 인테리어가 잘못돼 소리가 울리거나, 테이블 간격이 좁거나, 유독 성량이 큰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그렇다. 최근 시내 한 레스토랑에서 송년 모임을 하는 듯한 단체 손님 옆에 앉게 됐다. 이들은 성량이 큰 쪽에 해당됐다. 그들의 화제는 단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였다. 정치와 기업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성토가 한바탕 지나간 뒤 대화는 소소한 이슈로 넘어가는 듯했다.



“난 이번 사건 보면서 ‘나이 더 들면 미용 주사는 꼭 맞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관리하니까 확실히 효과는 있잖아.” 40대 초반 여자의 말에 대부분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미용 천국 대한민국의 민낯

“맞아요. 예순다섯에 관리 안 하면 박 대통령 같은 피부가 나올 수 없어요. 저희 어머니랑 연세가 같아서 알아요.” 30대 여자가 말했다.



“그렇네. 한국이 미용 시술 넘버 원 국가라는 걸 생생한 사례로 보여줬네요. 이걸 대통령의 치적이라고 해야할지….” 남자가 보탰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 농단 사태는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정치의 무능과 관료 체계의 취약, 뿌리깊은 정경유착 같은 큰 줄기뿐만 아니다. 각종 미용 시술 주사 같은, 몰라도 그만인 정보를 널리 퍼뜨렸다. 그간 여성잡지에서 조용히 다루던 백옥주사·신데렐라 주사·태반주사 얘기가 연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면서 미용시술이 주목받게 됐다. 팽팽한 피부의 대통령이 미용 주사 홍보 모델의 끝판왕이 된 셈이다.



사실 한국이 ‘미용 천국’으로 자리 잡은 지는 꽤 오래됐다. 이젠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리스트에 마스크팩을 비롯한 한국산 화장품이 빠지지 않는다. 해외 뷰티 전문 사이트에는 ‘한국 여성의 아름다운 피부 비결’ ‘한국 여성 피부로 만들어주는 화장품 10선’ 같은 포스팅이 자주 올라온다. 해외 유명 화장품 회사 경영진이 한국 여성의 뷰티 습관을 관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올 정도다.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덕분에 국내 뷰티산업은 지난해 기준 1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추산)



K뷰티 현상의 바탕에는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한국인의 강렬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피부에 공을 들이는 문화는 젊음에 대한 열망과 맞닿아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하는 부위가 피부다. 피부는 이목구비 생김새도 달라보이게 하는 위력을 갖는다. 피부의 주름과 처짐, 넓어진 모공, 칙칙한 색깔이 바로 노화의 증거기 때문이다.



젊어지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다. 다만, 우리의 욕망이 다른 문화권보다 좀 더 강렬한 것 같다. 국가 지도자급에서만 봐도 그렇다. 과문한지 모르겠으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박 대통령 수준으로 피부관리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재임 중 성형 수술을 했다는 얘기도 없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라는 말을 덕담으로 건넨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외국인들은 당황하거나 심지어 언짢아 하는 경우도 봤다. ‘젊다’ ‘어리다’는 의미가 자칫 ‘미숙하다’ ‘경험이 적다’ ‘서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기를 끈 영화 ‘인턴’ 속 로버트 드니로는 ‘나이 듦’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옛날식 양복을 입고도 젊은이들과 공감을 이뤄냈다. 공감을 만들어내는 건 주름 없는 얼굴이 아니라 그의 지식과 경험, 따뜻한 마음이었을 터다. 외모가 젊어진다고 마음까지 젊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내면과 실력이 더 존중받는 사회, 우리도 가능할까.



 



 



글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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