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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의 우울을 떨쳐낼 ‘공감의 인문학’

중앙선데이 2016.12.18 00:16 510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이진숙 출판사: 민음사 가격: 각 권 1만6000원



한때, 문학은 그에게 종교였다. 그렇게 뜨거웠던 문학과 상처투성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미술이 그를 찾아왔다. 운명처럼 그는 미술과 문학의 영원한 학생으로 남아 지금도 두 세계를 갈구한다. 명강의와 명저로 소문난 미술사가이자 평론가인 이진숙 씨 얘기다. 그가 예술 작품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롤리타는 없다 1,2』

“내게 주어진 이 시대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얼굴이 무엇인지 아는 것, 더 나아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가는 것.”(6쪽)



너무 평범해서 싱겁지만, 이토록 소란스러운 시절에 오히려 울림이 큰 이 물음의 답을 그는 문학과 미술의 접목과 소통에서 찾아왔다. 『롤리타는 없다』는 “문학과 미술이 만나 공감하고 나누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름하여 ‘그림과 문학으로 깨우는 공감의 인문학’이다. 사랑·죽음·예술(책 1권), 욕망·비애·역사(책 2권) 여섯 범주로 나눠 미술과 문학 작품을 통해 삶으로 돌아오는 지도를 그렸다.



그가 나침반 삼은 이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당대까지 작가와 예술가들이다. 문학가 1명과 미술가 1명을 만나게 하고, 그들의 삶과 작품을 이어서 돌아보며 ‘나’를, 인간을 생각한다.



한국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 ‘감자 먹는 사람들’과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 ‘감자 먹는 사람들’은 100년 세월의 간극을 사랑, 한마디로 뛰어넘는다. 지은이는 이 사랑을 ‘삶을 이어 가게 하는 철갑 옷’이라 부른다.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고흐는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이라고 말한다. “캐도 캐도 나오고 또 나오는” 감자 같은 사랑이 있는 한 삶은 이어지리라.



영국 소설가 토머스 하디와 한국 화가 홍경택은 무슨 인연으로 만났을까. 홍경택은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에 큰 감동을 받아 ‘서재 5’를 그린다. 형형색색 책들이 무너질 듯 가득 쌓인 밀폐된 공간을 그려놓고 화가는 묻는 것 같다. ‘왜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되어야 하느냐고.’ 죄와 상처의 구조화를 보여준 화가와 작가의 마음을 지은이는 읽는다. “억압적인 관습과 통념으로 말미암아 죄인이라 불린 사람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인간의 손을 먼저 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이다.”(147쪽)



말보다 침묵이 더 힘이 셀 때가 있다. 한국 시인 김소월의 ‘산유화’와 한국 화가 김홍주의 세필화는 ‘눌변의 수사학, 달변의 침묵’을 보여준다.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로 시작해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로 끝나는 소월의 시는 꽃이 피고 지는 단조롭고도 명료한 반복 과정에서 우주의 시간을 본 시인의 혜안을 그려냈다. 이 시가 품고 있는 노래를 화가는 캔버스에 담았다. 가장 얇은 붓으로 그리고 또 그리는 김홍주 화가의 세필화는 꽃이라는 대상을 넘어서 ‘그리기’ 자체에만 몰두하는 섭리에 닿아있다. “결과를 예상하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그리다 보면 결국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라는 화가의 말은 자연(自然)을 닮은 회화론이다.



인생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살고, 또 살고, 또 살다 보면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인간이 될 것이다. 받아든 목숨에 거역하지 않는 순리의 길을 예술은 ‘자기 자신에게만 속한 방식’으로 높인다. 고전의 탄생이다. 이진숙 씨의 고전론(古典論)은 오늘의 우리에게 유용하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타인의 행복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인간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은 파멸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읽고 감상할 위대한 고전 문학과 미술은 이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지은이는 “자신의 삶에 충실할 것, 타인의 삶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문학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市場)의 인문학에서 공감(共感)의 인문학으로 가는 길에 이 책은 하나의 기둥이 된다.



 



 



글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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