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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구들장 논, 온돌·관개기술 접목한 과학 영농

중앙선데이 2016.12.18 00:08 510호 4면 지면보기

청산도 구들장 논의 면적은 6.5ha로 섬 전체(427ha)의 1.5%를 차지한다



우리 선조의 과학기술이라면 해시계나 측우기 같은 발명품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열악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달한 과학기술도 적지 않다. 이름 없는 농부가 생존의 문제로 고민한 농법이 수대에 걸쳐 완성도를 높여 독창적인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6개의 ‘국가 중요 농업유산’엔 선조의 과학기술과 생활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6대 ‘국가 중요 농업유산’

 



전남 완도군에 속한 작은 섬 청산도. 벼를 재배하기 어려운 척박한 곳이다. 농업기술이 열악했던 과거엔 더 심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 경사가 심한 데다 토양도 좋지 않다. 심한 경사는 비교적 쉽게 해결했다. 뭍에서와 마찬가지로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청산도의 구들장 논을 멀리서 보면 계단식 논과 비슷한 모양이다. 하지만 물이 쉽게 빠지는 토양은 계단식 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청산도는 모래가 대부분인 사질(砂質) 토양이다. 물이 쉽게 빠지고 작물 재배에 필요한 영양분이 적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부들이 떠올린 것이 바로 ‘구들장’이다. 우리나라 전통 난방 시스템의 핵심인 구들장은 두께 5~10㎝, 크기 30~60㎝의 얇고 평평한 돌판이다. 방바닥에 구들장을 퍼즐처럼 깔아두면 아궁이에서 발생한 연기가 구들장 아래를 지나면서 방을 데운다.



 구들장 논 역시 이 얇은 판이 핵심이다. 구들장 논의 단면도를 보면 우선 가장 아래엔 자갈층이 있다. 그 위에 크고 작은 돌을 20~50㎝ 높이로 쌓는다. 여기에 얹어지는 게 바로 구들장이다. 구들과 구들의 틈은 진흙으로 메운다. 가장 위엔 벼가 자랄 수 있는 흙을 30㎝ 정도 깐다. 마치 샌드위치처럼 층을 겹겹이 쌓는 이유는 물 때문이다. 벼가 잘 자라게 하려면 흙이 물을 충분히 머금어야 한다. 청산도에선 구들장과 진흙으로 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했다.



 

[물의 양·흐름 조절, 척박한 땅을 옥토로]

연중 강수량이 일정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여름은 습하고 가을은 건조한 우리나라 기후를 고려하면 관개시설을 추가로 만들어야 했다. 구들장 논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이 관개시설이다. 일반 논은 논 주위를 둘러 관개시설을 만든다. 구들장 논은 관개시설이 논 아래에 있다. 구들장 아래로 쌓인 석축이 이 역할을 한다. 석축을 쌓을 때 지름 30~50㎝의 수로를 만든다. 산 정상부터 흘러내려 온 물은 계단식 논의 가장 위쪽 논을 적시고 수로를 따라 아래로 차례차례 흘러내려 간다. 논 한 필지에 이런 수로가 2~3개 있다. 가장 아래에 깔린 자갈층은 보조 수로 역할을 한다. 물의 양과 흐름을 조절한다. 냉해(冷害, 농작물이 자라는 데 지장을 줄 정도의 저온이 오래 지속하는 상태)를 막는 효과도 있다. 협성대 지역개발학과 윤원근 교수는 “척박한 땅에 어렵게 일궈낸 농토인 데도 쌀 생산량은 일반 논과 비슷하다. 이모작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청산도에서 구들장 논이 자리를 잡은 시기는 약 300년 전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구들장 논의 독특한 형태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윤원근 교수는 “얼마 전 계단식 논을 연구하는 세계 각국 학자들이 청산도를 찾았는데 이들은 한목소리로 청산도만큼 독특하게 농업기술이 발달한 곳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필리핀의 이푸가우 지역 ‘바나우에 논’, 중국 윈난(雲南)성의 ‘하늘계단 논’처럼 규모가 큰 경우가 많은데 구들장 논은 규모가 매우 작다. 그만큼 기술력이 독보적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구들장 논은 2014년 4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국제연합식량기구(FAO)는 세계 각지의 독창적인 농업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13개국 31곳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했다.



 

[제주 밭담]

화산섬서 피어난 농경문화의 꽃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농경지를 개간하기 위해선 제주 전역에 뒤덮인 현무암을 캐야 했다. 캐낸 돌로 담을 쌓았다. 이렇게 쌓인 밭담의 길이는 무려 2만2000㎞에 이른다. 만리장성(6300㎞)의 3배에 달한다. 제주 밭담의 기능은 많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아 준다. 바람이 강하면 토양의 수분이 증발해 싹이 잘 돋지 않는다. 작물을 쓰러뜨리기도 한다. 구멍이 많은 현무암의 특성상 가벼운 데도 강한 바람에도 담은 무너지지 않는다. 바람구멍으로 스며든 바람은 속도가 줄어들며 따뜻한 바람이 돼 농작물의 생육을 돕는다. 여름철 집중호우와 태풍으로부터 토양이 유실되는 것도 막아 준다. 목축이 성행하는 제주에서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는 효과도 있다. 제주발전연구원 강승진 박사는 “제주의 산업구조를 살피면 대부분 1차산업이다. 육지의 6배 수준”이라며 “밭담은 제주 농업을 지켜 온 버팀목”이라고 설명했다. 밭담도 구들장 논과 함께 2014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금산 인삼 농업]

1500년 전통 과학적 재배법

인삼은 재배하기 매우 까다로운 작물이다. 기후·토양조건·농업기술의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



?배수가 잘되면서도 1년 내내 서늘해야 한다. 충남 금산은 이런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름에도 18~23도를 유지한다. 1500년 전부터 이어진 재배 기술의 핵심은 인삼이 영양분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도록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다. 파종 전 4년에 걸쳐 땅의 기운을 높인다. 섬유질이 많은 활엽수 잎과 줄기를 10ha당 4.5t을 묻고 15~20회에 걸쳐 갈아엎는다. 물을 잘 머금으면서도 공기가 잘 통하는 토양으로 바뀐다. 땅을 갈아엎을 때 병해충은 햇빛을 받아 사라진다.



 

[구례 산수유 농업]

전통 농법 ‘풀비배’ 고이 간직

전남 구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수유 생산지다. 경작지가 부족한 불리한 환경에서 마을 어귀와 계곡, 산등성이에 산수유 재배지를 인위적으로 조성했다. 100년 이상 된 산수유나무 1000그루가 작은 마을을 가득 채운다. 산수유를 재배하고 수확하며 씨앗을 빼내고 건조하는 과정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산수유나무가 영양분에 매우 민감한 점을 감안해 10월 말~11월 말 수확기에 앞서 6월부터 네 번 정도 ‘풀비배’라는 방식으로 거름을 준다. 제초작업을 하고 이를 나무 밑에 깔아두는 것이다. 땅이 쉬는 겨울엔 인분을 뿌려 서서히 토양에 스며들게 한다.



 

[담양 대나무밭]

기후와 지형의 절묘한 조화

전남 담양의 대나무 역사는 깊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가는대, 왕대, 화살대, 오죽(烏竹)을 공물로 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대나무 분포 면적(7039ha)의 34%(2420ha)가 담양에 몰려 있다. 담양이 대나무 명소가 된 가장 큰 이유는 기후가 좋아서다. 연평균 기온이 12.5도, 연간 강수량이 1300㎜ 안팎이다.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 바람을 막는다. 토양은 배수가 잘되면서도 거름기를 오래 머금고 있다. 담양에선 대나무밭 아래 부엽토를 모아 배양한 토양 미생물을 밭에 뿌려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하동 전통 차 농업]

가내 수공업 형태 1200년 계승

경남 하동의 차 생산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들여온 씨앗을 이곳에 심으면서 본격적으로 재배됐다. 이후 1200년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전해진 하동의 전통 제다법(製茶法)은 ‘무쇠가마솥 덖음 방식’이다. 250~350도의 고온 솥에 찻잎을 넣고 설익지 않도록 균일하게 익힌다. 이때 찻잎이 지닌 수분만으로 익히는 게 비법이다. 하동의 차 재배는 이 지역 고유의 문화가 됐다. ‘채다가(採茶歌)’를 비롯한 각종 민요와 다례(茶禮)는 물론, 무형문화재(차 명인 3인)로도 전해진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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