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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만할래” 놀보 자진 하야, 시국 깨알 풍자의 정점을 찍다

중앙선데이 2016.12.18 00:06 510호 8면 지면보기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는 원전에 없는 ‘비 든 실세’ 마당쇠(이광복)가 극을 진행한다

흥보 유태평양과 흥보 마누라 서정금



다시 마당놀이의 계절이다.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30년간 대한민국의 겨울 여흥을 책임지다 한때 막을 내렸던 마당놀이다. 하지만 2014년 ‘심청이 온다’로 국립극장 송년 레퍼토리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해 ‘춘향이 온다’를 거쳐 올해는 ‘놀보가 온다’(12월 8일~2017년 1월 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가 마당을 차지했다. ‘마당놀이의 아버지’ 손진책 연출이 84년 ‘놀보전’ 이후 32년 만에 풀어내는 흥보와 놀보 이야기다.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 주연 김학용·유태평양

지난 30년간은 김성녀·윤문식·김종엽 3인방이 대체불가능한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로 통했지만, ‘시즌2’ 3년 만에 슬슬 세대교체가 정착되는 모양새다. 국립창극단의 최고참 배우 김학용(51)이 ‘심청이 온다’의 능글맞은 심 봉사부터 ‘춘향이 온다’의 순정남 변학도를 거쳐 올해는 ‘미워할 수 없는 놀보’로 등장해 자타공인 마당놀이 히어로로 등극했다. 그의 아성에 도전하는 ‘덜 떨어진 흥보’는 올해 입단한 창극단의 막내 유태평양(24)이 맡았다. 여섯 살에 판소리 ‘흥보가’를 3시간 30분간 완창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 ‘신동’이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욕심쟁이는 벌을 받는다는 해묵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작금의 세태에 비유해 발 빠르게 꼬집으며 큰 웃음을 주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는… “딱 봉게 낙하산이구먼. 분명히 뒤에 누가 있어. 누구 라인이여?” “근거 없는 의혹제기 하지 마쇼.” 초장부터 원전에 없는 ‘비 든 실세’ 마당쇠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으로 마당을 열어 2시간 동안 작정한 듯 깨알 풍자가 쏟아진다. 놀보의 심술부터 ‘임금착취·부당거래·세금포탈·편법증여·내부거래·오리발·아몰랑’ 등으로 진화했다. “혼이 병든 꼬라지”라며 집에서 나가라는 놀보에게 흥보가 “내년 봄에 나가겠다”고 하자 놀보 처는 “비상시국인데 당장 나가라”며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식이다. 손진책 연출·국수호 안무 등 원조 창작진이 함께 하고, 김학용·유태평양 외에도 서정금·조유아·이광복 등 국립창극단의 희극연기 대표주자들이 총출동해 연기 대결을 펼친다. 고정 패턴인 길놀이와 고사·엿장사·뒤풀이 등 참여형 즐길 거리 외에 진기한 볼거리도 가득하다. 와이어 액션으로 제비가 등장하고, 박 타는 대목에서 배우들의 의상이 바뀌는 마술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한편 남사당패의 고난도 줄타기 장면도 놓칠 수 없다.◇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2월 8일~2017년 1월 29일 -목·금 오후 8시 / 화·수·토·일·공휴일 오후 3시(월요일 공연 없음·8세 이상 관람가) -VIP석 7만원 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3만원 -문의 02-2280-4114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는… “딱 봉게 낙하산이구먼. 분명히 뒤에 누가 있어. 누구 라인이여?” “근거 없는 의혹제기 하지 마쇼.” 초장부터 원전에 없는 ‘비 든 실세’ 마당쇠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으로 마당을 열어 2시간 동안 작정한 듯 깨알 풍자가 쏟아진다. 놀보의 심술부터 ‘임금착취·부당거래·세금포탈·편법증여·내부거래·오리발·아몰랑’ 등으로 진화했다. “혼이 병든 꼬라지”라며 집에서 나가라는 놀보에게 흥보가 “내년 봄에 나가겠다”고 하자 놀보 처는 “비상시국인데 당장 나가라”며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식이다. 손진책 연출·국수호 안무 등 원조 창작진이 함께 하고, 김학용·유태평양 외에도 서정금·조유아·이광복 등 국립창극단의 희극연기 대표주자들이 총출동해 연기 대결을 펼친다. 고정 패턴인 길놀이와 고사·엿장사·뒤풀이 등 참여형 즐길 거리 외에 진기한 볼거리도 가득하다. 와이어 액션으로 제비가 등장하고, 박 타는 대목에서 배우들의 의상이 바뀌는 마술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한편 남사당패의 고난도 줄타기 장면도 놓칠 수 없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2월 8일~2017년 1월 29일 -목·금 오후 8시 / 화·수·토·일·공휴일 오후 3시(월요일 공연 없음·8세 이상 관람가) -VIP석 7만원 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3만원 -문의 02-2280-4114



 



“흥보같은 놀보, 놀보같은 흥보.”



인터뷰 전 김성녀 마당놀이 연희감독의 귀띔이 실은 잘 와닿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욕심 많은 능구렁이 놀보와 선하고 무던한 흥보 캐릭터가 딱 각자의 옷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당 밖에서 만나보니 과연 그랬다. 놀보 김학용은 아저씨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았고, 흥보 유태평양은 자신만만하고 똑부러진 태도였다. 그런데 촬영을 위해 재미난 포즈를 요구하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애드립이 마구 쏟아져나왔고, 마당놀이의 한 장면을 보듯 배꼽을 잡아야 했다.



“다른 데서 창극할 때는 주로 놀보역할을 했거든요. 연출님이 마당놀이니까 재밌게 하기 위해서 놀보같이 생긴 제게 흥보를 시키고 흥보같은 외양의 선생님께 놀보를 시키신 것 같아요. 저는 못 먹어서 부은 흥보가 됐죠.(웃음)”(유태평양, 이하 ‘유’)



“저도 방자나 흥보같은 순한 역할만 하다가 악역은 최근에 마당놀이에서 처음 해 본거에요. 하다 보니 색다르고 악역도 매력 있더군요.”(김학용, 이하 ‘김’)



국립창극단의 최고참과 막내지만 둘 사이에 30년 격차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된 사이다. 2000년 국립창극단의 어린이창극 ‘은혜갚은 제비’ 때 김학용이 마당쇠, 유태평양이 흥보를 맡아 처음 인연을 맺었다. 김학용은 “그때부터 평양이(유태평양의 애칭)는 아주 잘했다”며 “애기 때부터 쩌렁쩌렁해서 앞으로 크겠구나 알아봤다”고 추켜세웠다.



“평양이처럼 잘 알려진 스타가 창극단에 들어와서 좋은 거 같아요. 우리 땐 첨엔 발도 못 떼서 선배들이 다 가르쳐줘야 했지만 요즘엔 학교에서 다 배워와서 바로 투입해도 손색없고요. 하지만 후배들은 여기 얽매이지 않게 극장에서도 배려를 해줘야 해요. 국악인들도 활동을 많이 해야 국악이 널리 퍼져나갈 테니까요.”(김)



“선생님은 연습 때도 막내보다 먼저 와서 대본 읽고 계시는 존경스런 분이죠. 연륜으로 봤을 땐 어려워야 하는데 너무 착하시고 후배들에게 따뜻하셔서 호흡 맞추기도 진짜 편해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형님이라고 해보겠어요.(웃음)”(유)



‘흥보가’를 왜 굳이 ‘놀보가 온다’로 바꿨을까요.



유: 마당놀이가 현 사회를 반영하는 장르다 보니 요즘 시대 놀보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싶지 않으셨나 싶어요.



김: 요즘 사회를 표현하기에는 흥보보다 놀보가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으니까요. 근데 그게 정말 잘 맞아떨어졌어요. 9월에 준비 시작할 때만 해도 시국이 이렇게 될 줄 몰랐거든요.



요즘 대세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인가 봐요.



유: 선생님의 놀보 캐릭터는 심술궂고 악하기만 한 게 아니거든요. 선생님 자체가 귀엽기도 하고, ‘내가 벌어놓은 재산 니 자식들한테 준 게 얼만데’라는 변명도 있죠. 혼자 열심히 벌어놨더니 공짜로 달라고 하면 누가 주겠느냐는 건데, 요즘 시대에 잘 맞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김: 놀보가 잘 쫓아내서 흥보도 부자가 된 거니까요. 놀보가 흥보 사람 만든거죠.(웃음)



흥보 캐릭터도 원전과는 다르죠.



유: 판소리의 흥보는 착하고 효자고 형을 잘 따를 뿐인데, 저는 거기에 게으름을 보탰어요. 게을러서 좀 덜 떨어지고 세상물정 모르는 부정적인 면을 더한 거죠. 좀 해학적인 흥보를 만들라는 연출님의 주문이 있었거든요. 마냥 불쌍한 게 아니라 어벙해서 예쁜 여자한테 유혹도 당하고요.



김: 미녀들에게 유혹당하는 장면에 중년 아저씨들이 정말 좋아하시더라구. 굉장히 현실을 반영한 거죠.(웃음)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는 판소리 흥보가를 놀보의 시선으로 비틀어 재미를 더했다



“탄핵 가결 후엔 관객도 너그러워져”

 



마당놀이는 2014년 “청아, 땅콩은 접시에 담아왔니”로 한방을 크게 터뜨리며 본격 사회풍자극의 부활을 화려하게 알렸다. 그런데 지난해 ‘춘향이 온다’는 경직된 사회분위기 탓에 풍자가 실종됐다는 평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끝까지 쏟아지는 깨알 풍자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확정 대본도 따로 없이 매일 상황에 맞춰 대사도 바뀐다. 실제로 8일 개막했지만 9일부터 결말이 바뀌었다. 8일엔 국민참여재판에서 놀부를 용서해 주는 결말에 관객들 반응도 차가웠다고. 그런데 9일 탄핵이 가결되고 놀보가 자진해서 놀보 역할을 ‘하야하는’ 결말로 바뀌자 관객은 오히려 너그러워졌다.



“관객은 놀보 캐릭터에 어떤 분을 대입시켜 보니까요. 첫날은 아무도 용서하지 말라고 했어요. ‘4월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려오라’는 분도 있었고. 흥보가 한 번만 용서해주자고 하니까 관객이 이상하게 보더군요. 무대 위에서 진땀이 났죠. 그런데 탄핵 후에는 반 이상이 용서해주라네요.”(유)



“제가 살이 많이 빠졌어요. 입에 붙었던 대사가 자꾸 바뀌니 힘들고 무대에선 헷갈리죠.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나 싶고. 그런데 끝날 때까지 매일 바뀔 겁니다. 상황만 생각하고 있다가 거의 애드립으로 막곤 하는데, 혹시 긴 대사를 하다가 생각 안 나면 지휘자한테 물어봐야 하죠. 지휘자는 대본을 갖고 있으니까요. 괜히 관객에게 묻기도 하고. 다행히 그런 걸 더 재밌어들 하세요.”(김)



관객 반응도 다양하겠어요.



김: 잘 받아주는 관객은 따로 있어서 상대할 관객은 먼저 찜해놔야 되요. 고사 지내고 그럴 때 돌아다니면서 다 봐두죠.



유: 어떤 분은 저한테 뭘 먹었길래 자식이 저렇게 많냐, 자기도 좀 먹어보자시던데요.(웃음) 그런 소통과 호흡이 있어야 되니까 매일 다른 사람과 연기하는 느낌이 들어요. 평소엔 어르신들을 어려워하는 편인데 무대에서만큼은 벽들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라 두려움은 없고요. 그런데 의외로 젊은 사람도 많아서 정말 국립극장이 젊어지고 있구나 싶어요.



“속에 영감이 몇 분 들어앉았다”는 김성녀 감독의 무한신뢰를 받고 있지만 사실 마당놀이가 처음일 뿐더러 본 적도 없었다는 유태평양은 “사면이 관객이라 숨을 공간이 없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관객 표정이 다 보이고 애드립에 대한 피드백도 바로바로 오니까요. 관객의 기가 다른 무대와는 완전히 달라요. 그 기를 이길 수 있을 만큼 연습이 충분해야겠더라구요.”



한편 3년째 마당을 이끌고 있는 김학용은 “이제 쪼~끔 감이 온다”고 했다. “이젠 관객을 안 보면 더 불안해요. 객석과 함께 공감해야 하니까요. 객석에 할 대사가 있고 우리끼리 할 게 있고, 그런 게 잘 맞아떨어져야 하죠.”



손진책 연출이 김학용씨를 마당놀이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로 꼽았는데요.



유: 제가 했다면 저런 놀보가 절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톤이 있어서 아무리 진중한 대사라도 선생님이 하시면 웃기거든요. 연습 때도 한 마디만 하시면 다들 빵빵 터졌죠. 자신도 모르는 애드립이 막 튀어나오는데 그런 면에서 딱 맞는 분인 것 같아요. 평소엔 조용하시지만 무대만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천상 예술가인 거죠.



김: 평소엔 술 한잔 먹어야 잘 노는 스타일이에요.(웃음) 마당놀이도 너무 모나지 않게 해야지, 너무 웃기려고 튀면 안 되죠. 평상시 하던 대로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아주머니들은 뮤지컬보다 더 재밌다네요”

1985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김학용은 2014년 ‘변강쇠 점찍고 옹녀’에서 변강쇠 역을 맡아 비로소 스타로 떴지만 그저 “극장에 오시는 분들이 쪼~끔 알아본다”고 몸을 낮췄다. “변강쇠는 제가 하면서도 웃겨요. 덩치도 좋고 그래야 어울리지. 첨엔 안 한다 했죠. 결국 하라니까 했지만.(웃음) 마당놀이하느라 살이 빠져서 이젠 못할 거 같아요. 그래도 국립극장이 요즘 많이 세련돼지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니 젊은 관객도 많이 오고 좋네요. 옛날엔 거의 초대로 메웠는데 요즘엔 유료 관객도 많고.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니까 공연 끝나고 내려가다 보면 아주머니들이 뮤지컬보다 더 재밌다는 얘기도 하시고 그래요.”



국악 신동으로 유명해 충분히 독자적 활동이 가능한 스타임에도 여러 장르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욕심 나 창극단에 들어왔다는 유태평양은 “불과 1년 만에 밖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많이 했다”고 했다. “일반인 친구가 ‘트로이의 여인들’을 보고 국립극장 팬이 돼서 마당놀이도 보러온다더군요. 영화보다 재밌고 돈이 안 아깝다면서요. 그 말 듣고 이제 일반인들도 영화를 보듯이 창극을 보는 시대가 오겠구나 싶고 느끼는 게 많았어요. 국악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구요.”



청소년기 훌쩍 남아공으로 떠나 4년 동안 아프리카 타악기를 배워 온 그는 이번 마당에서 옛 전공을 살려 젬베 연주 실력도 살짝 선보인다. 판소리 신동이 왜 아프리카로 갔었느냐고 물으니 “다른 문화와 음악을 알고 있는 게 세계에서 활동할 때도 자양분이 된다”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국악이 마냥 좋아서 했는데 요즘엔 사명감도 들거든요. 특히 해외공연 때 외국인들이 처음 접하는 우리 음악에 엄청 환호하고 예술성을 알아주는 걸 경험하고부터죠. 타악이 판소리 장단과 리듬에도 도움이 되고요. 이번에 흥보랑 젬베는 좀 안 어울리는 거 같긴 한데 김성녀 감독님이 꼭 넣어야 된다고 하시네요.(웃음)”(유)



“마당놀이니까 그게 더 재밌는 거야.”(김)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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