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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보다 알고리즘·SW 중심으로 R&D 정책 전환

중앙선데이 2016.12.18 00:06 501호 5면 지면보기
1997년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대국 승리, 2011년 미국 제퍼디쇼에서 퀴즈왕 등극,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국 5전 4승, 2016년 8월 미국 국방부 주최 세계 최초 인공지능 해킹대회 출전…. 인공지능(AI)의 활약상이다. AI 의 기술력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건 기본이다. 가장 복잡한 두뇌 스포츠인 체스·바둑에서도 인간 최고수를 위협했다. 해킹 방어의 최전선에 나설 태세다.?



 


4차 산업혁명 이끌 지능정보기술

신기술은 산업·경제·사회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산업혁명의 신호탄을 쏜 증기기관(1차)과 대량 생산 시대를 연 전기(2차), 자동화 생산 시스템을 정착시킨 컴퓨터(3차)가 그랬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신기술은 바로 지능정보기술의 대표 주자인 AI다.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서정연 교수는 “지능정보기술의 등장은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이라며 “앞으로 기계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는 지능정보사회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 나간 제조업 U턴 기대]

지능정보기술은 인간만이 가능했던 인지, 학습, 추론 같은 고차원적인 정보처리 능력을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실현한다. 컴퓨팅 파워가 갈수록 향상되고 빅데이터, 인터넷 연결성이 확대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다. 로봇, 자동차, ICT 기기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AI 소프트웨어로 구현되는 ‘지능’과 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에 기반한 ‘정보’가 결합한 지능정보기술은 우리 생활에 빠르게 유입되는 추세다. 생산 방식은 물론 시장 구조, 생활 양식 같은 우리 사회의 근본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이미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처럼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노동 수요가 줄고 맞춤형 서비스의 요구가 커지면서 제조 기반이 해외에서 본국으로 이동하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고용 분야도 마찬가지다. 단순·반복 업무의 자동화가 빨라지는 만큼 창의·감성 업무의 가치가 높아졌다. 평생직장 개념은 줄고 비전형적인 고용 형태가 늘어날 전망이다.



 생활환경도 확 바뀐다. 예방 중심 의료와 맞춤 진단 덕에 병원을 자주 가지 않고도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가사노동 서비스가 지원돼 편의성이 높아진다. 범죄를 사전에 분석해 차단하는 건 물론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교육과 복지 분야에선 맞춤형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세계 AI 스타트업 투자액 급증]

글로벌 기업은 지능정보사회의 도래를 일찍부터 준비해 왔다. 대규모 투자와 연구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 내는 단계다. IBM의 AI인 왓슨은 의료 현장에서 의사를 도와 암을 진단하고 치료법을 도출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뿐 아니라 자율주행, 에너지, 은행 업무, 미디어·오락, 자산관리, 금융시장 같은 산업 전반에 접목돼 상용화가 추진되고 있다. 구글은 자율주행자동차를 일반 도로에서 시험운행했고, 구글의 AI인 알파고는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다목적 활용 제품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애플은 2011년 첫 스마트폰용 AI인 음성비서(Siri)를 선보였다.



 AI 기술이 접목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성장세도 빠르다. 실리콘밸리 투자조사기관(CB Insights)에 따르면 전 세계 AI 스타트업 투자 규모가 2010년 45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억10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미래전략실 김윤정 박사는 “인공지능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인식한 구글, 페이스북, IBM,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이 기술의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인재 영입과 기술개발에 투자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도 원천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2013년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정책을 발표하고 AI 기초 연구에 10년간 총 3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은 AI 기술로 제조업 부흥, 고령화 사회 대응 같은 국가·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겠다는 각오다. IoT, 빅데이터, AI, 로봇 같은 혁신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여 국내총생산(GDP) 600조 엔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올해 AI 연구전략센터를 설치하고 10년간 1000억 엔을 투자할 예정이다.



 

[토종 AI ‘엑소브레인’ 퀴즈대회 1등]

우리나라는 지능정보기술과 관련한 인적·산업적 기반이 미약한 편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분석에 따르면 현재 국내 AI·인지 컴퓨팅 분야의 기술 수준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비교할 때 약 2.4년 뒤져 있다. 김윤정 박사는 “정부는 세계적인 인공지능 기술개발 경쟁의 시류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국가 R&D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며 “하드웨어 중심보다는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정책 패러다임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취합해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지능정보기술의 기반을 확보할 계획이다. 미래 경쟁력의 원천인 데이터 자원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토종 AI ‘엑소브레인’이 퀴즈왕 4명과 함께 EBS ‘장학퀴즈’에서 퀴즈 대결을 펼쳤다. 참가자는 모두 장학퀴즈 상·하반기 우승자, 수능 만점자, 두뇌게임 프로그램 준우승자로 수재다운 면모를 지녔다. 퀴즈 대결을 진행한 결과 엑소브레인이 2등과의 점수 차를 무려 160점이나 벌리며 510대 350으로 완승했다.



 엑소브레인의 핵심 기술은 인간 수준으로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한국어 분석 기술’과 텍스트로 이뤄진 빅데이터를 학습·저장하는 ‘지식 축적 및 탐색 기술’, 질문을 이해하고 정답을 추론하는 ‘자연어 질의응답 기술’이다. AI의 성능은 학습 과정에 주어지는 데이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누가 더 양질의 데이터로 AI를 학습시켰는지가 관건이다. 엑소브레인의 핵심 개발자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현기 지식마이닝연구실장은 “AI 기술에서 머신러닝·딥러닝이 로켓의 엔진이라면 학습용 데이터는 연료격”이라며 “양질의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 많은 지식을 추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계 학습이 가능한 데이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데이터를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개방하고 데이터 보유 기관에 클라우드를 도입해 효율적으로 관리·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개방형 플랫폼 형태의 데이터 거래소를 통해 유통의 장을 마련하고, 본인 동의를 전제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식이다.



 

[창의융합교육으로 인재 양성]

전 산업의 지능정보화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의료산업이 대표적이다. 의료는 전 세계적으로 지능화가 가장 빨리 이뤄지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의료비는 사회에 큰 부담이다. 지능형 의료 서비스는 예방의료와 맞춤형 진단·치료를 실현해 사회 부담을 덜 수 있다. 문제는 의료데이터의 활용 기반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병원 간 진료기록 교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능형 의료에 꼭 필요한 대규모 코호트(Cohort) 정보를 축적해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지능정보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기 위해선 기술·산업의 변화를 이끌 최적화된 인력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소프트웨어 및 융합교육에 친숙해지게 하면 컴퓨팅 사고력, 논리력,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많이 길러낼 수 있다.



 정부는 기존의 수업 방식이나 학사제도에 유연성을 불어넣고 맞춤형 교육 체제를 전면화해 인재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공교육에서 창의융합교육의 저변을 넓히면 글로벌 지능정보 영재를 조기에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이들을 고등교육까지 집중 지원해 미래를 이끄는 핵심 연구 인력으로 배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미래창조과학부는 조만간 지자체, 전문가, 기업, 학계의 의견을 모으고 입법·사법·행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범정부 포럼을 구성하기로 했다. 미래부 최양희 장관은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경제·사회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최초 대책”이라며 “환골탈태의 각오로 역량을 집중하면 인간 중심의 지능정보사회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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