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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정보 유통·소통 채널 구축 … 글로벌 협력 촉진

중앙선데이 2016.12.18 00:04 501호 6면 지면보기

한선화 원장 1959년 출생. 한양대 화학공학 학사, 성균관대 정보공학 학사, KAIST 전산학 석·박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역임, 통일준비위원회 위원(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첨단정보연구소장 역임, 원장(2014년 9월~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선화(57) 원장은 과학자를 꿈꾸는 여성의 롤 모델이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그처럼 치열하게 공부한 여성도, 남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20여 년간 외길 인생을 걸어온 과학자도 드물다.


[박방주가 만난 사람]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한 원장 덕에 우리나라는 과학정보 유통 및 소통 분야에서 여느 선진국에 뒤지지 않게 됐고, 이공계 꿈나무 세대에 자랑할 만한 여성 과학자 한 명을 더 갖게 됐다.



 필자는 과학언론인 시절 그를 볼 때마다 ‘참 열심히 사는 과학자’라고 느끼곤 했다. 그가 구축한 과학정보 유통 채널 덕에 세계 과학계의 동향을 파악하게 됐고, 과학특집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적도 많았다. 그는 연구소에 들어온 지 17년 만에 원장이 됐다. 다른 공공연구소 원장들이 외부 인사가 아닐 경우 대부분 20여 년 근무한 후에야 그 자리에 오르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육아 위해 10년 만에 박사학위]

공공연구소의 신참 연구원 시절이나, 한 기관의 수장이 된 지금이나 그의 열정은 여전하다.



 한 원장은 대학 학부 과정을 졸업하는 데 6년, KAIST 석·박사 과정을 마치는 데 10년이나 걸렸다. 학부 6년이 걸린 건 화학공학 학사를 받은 뒤 정보공학을 전공하기 위해 다시 편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두 개의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석사 과정 중에는 큰아이를, 박사 과정 중에는 둘째 아이를 출산해 기르느라 남보다 두 배쯤 긴 대학원 학업 과정을 거쳤다.



?학우들의 눈을 피해 연구실 한쪽에서 친정 부모가 데려온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도 하고, 캠퍼스에서 아이를 잃어버려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는 등 그가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겪었던 애환은 이 땅에서 여성 과학자들로선 이겨내기 힘들었던 과정을 말해 준다. 지금도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견 과학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여성이 많다는 현실은 우리 정부의 과학자 육성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는 정형화된 틀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칫 사고조차 그렇게 만들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점잖은 자리에 가야 하는 약속이 없으면 그는 반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곤 한다. 원장 취임식 때는 틀에 박힌 취임사 대신 자신이 원장 후보로서 심사를 받을 때 발표했던 연구소 경영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성원 모두가 목적지에 대한 방향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반바지·청바지 차림으로 출근]

그가 부원장 격인 선임부장을 하던 시절엔 ‘선임부장과의 점심’을 내걸고 선착순 10명과 정기적으로 식사하며 대화와 소통을 늘려 집단 내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했다. 원장이 된 지금도 매주 시간을 정해 자기 방을 공개하고 다양한 그룹과 간담회를 한다. 매월 생일을 맞은 직원과의 간담회를 개최하는 것도 소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한 원장의 대표 작품 중 하나는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KOSEN·코젠)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후손 과학자들이 모이는 ‘사이버 사랑방’이다. 여기에서는 연구개발의 난제에 대한 ‘원포인트 레슨’에서부터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기술 자료·노하우 등을 얻을 수 있다.



?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초창기인 2000년대 초 국내 연구자가 적분방정식의 해(解)를 수치해석으로 구하기 위한 중요한 지식을 해외 과학자에게 직접 받은 사례가 있다고 한다. 또 어떤 과학자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세포학 관련 논문을 코젠 회원인 프랑스 한인과학자로부터 몇 시간 만에 전달받기도 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한 원장은 물론 곁에서 지켜보던 필자도 놀랐던 일이다.



 코젠의 회원 수는 현재 11만2000여 명에 이른다. 하루 1만여 명이 사이트를 방문하고 질의·답변 형식의 과학기술 정보 교환만 1000여 건에 이른다. 해외 어느 나라를 돌아봐도 이처럼 활발하게 특정 그룹의 과학자들이 교류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연구소 외부에서도 그의 걸작을 알아본 모양이다. 코젠은 2005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정 우수 정보사업, 2007년 IBM 한국보고서의 인력네트워크 우수 사례, 2007년 국가연구개발 우수 성과 100선(選)에 선정됐다.



 정보는 가공 또는 처리·유통 속도에 따라 휴지가 되기도, 노다지가 되기도 한다. 그것들이 쌓이면 곧 국가의 연구 역량이 강해진다.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과학정보의 노다지를 만들어 왔다. 그에게는 남보다 한걸음 더 앞이 보이는 모양이다.



?인터넷 주소 프로토콜인 ‘www’가 대중화되던 시기에 맞춰 남북한의 버섯, 민속식품과 특산식품, 연안 어류, 한국의 수산자원 등 각종 연구 정보를 3차원 가상현실, 파노라마, 지도 등을 활용해 시각화했다. 그런가 하면 정보의 의미와 문맥을 이해해 기존 정보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는 ‘시맨틱 웹’ 기술개발을 주도했다.



?이 기술은 중국 과학기술정보연구소에 4만5000위안(약 1억원)의 돈을 받고 이전해 주기도 했다. 최근 회자되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지원시스템 구축도 주도했다고 한다.



?어느 누구나에게나 비슷하겠지만 인생 여정에서 시운(時運)이라는 것은 무시하기 어렵다. 한 원장은 실력과 함께 시운도 좋았던 편이다. 국내 대학에 정보공학 또는 전산학과가 독립적으로 막 설치되기 시작하던 무렵 편입학으로 정보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도 전산학 초기 전공자들과 함께 공부했다.



 

[사이버상 공동연구 시스템 구상]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창업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라인’ 개발 주도자도 그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선후배들이다. 이렇게 공부한 그의 세대들이 한국의 정보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정부의 각종 위원회와 공공기관의 고위직에서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 정책이 채택되면서 그는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부터 각종 공직에 참여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유리 천장’으로 표현되는 여성 차별은 그에게 다행히 큰 난관이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실력과 열정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한 원장은 앞으로 사이버상에서 공동연구가 가능한 ‘오픈(Open) 사이언스’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오픈 사이언스는 소프트웨어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연구 장비와 데이터를 공유하고 국경을 초월한 연구 협력을 추구하는 과학기술계의 공유경제다.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한 원장은 오픈 사이언스를 통해 우리나라 연구개발(R&D)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질 뿐만 아니라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첨단 연구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아시아 지역의 오픈 사이언스 허브로서 과학기술 리더십을 통한 국격 향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또 다른 ‘작품’의 완성을 기대해 본다.



 



 



박방주 교수sooyong1320@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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