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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이 바라본 ‘일베’와 ‘어버이연합’

중앙일보 2016.12.18 00:00
‘우리 손자 베스트’(12월 8일 개봉, 김수현 감독)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만화경 같은 영화다.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본뜬 웹사이트 ‘너나나나베스트(이하 ‘너나’)’에서 활동하는 20대 백수 청년 교환(구교환)과 ‘어버이연합’을 패러디한 ‘어버이별동대’의 행동 대장인 70대 노인 정수(동방우·배우 명계남의 가명)가 우연한 계기로 연대한다. 둘 다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먼 외로운 처지. 이 영화는 세월호 대참사 유가족 집회를 방해하는 이들의 만행과 ‘종북 세력이 모였다’는 이유로 토크 콘서트에 사제 폭탄 테러를 가한 어느 고등학생의 실화 등을 블랙 코미디처럼 녹여내는 한편, 이 비상식적인 행각들의 원인을 짓눌린 인정 욕구에서 찾는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던 두 사람이 진짜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관계가 되면서 만들어지는 엔딩은 다소 충격적이다. 지난 5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지원작으로 첫 공개됐을 때부터 논란이 됐다. 스스로를 ‘낀 세대’라고 부르는 김수현(48) 감독은 그들, 특히 “벼랑 끝에 내몰린 20대의 절망을 잘 몰랐고, 뒤늦게 알게 된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방금 산에서 내려온 듯한 차림새로 김수현 감독이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집이 경기도 양평이라 서울에 나와야 하는 일정을 하루에 몰아 놓은 게 이날, 11월 29일이었다. 촬영을 위해 켜 둔 촛불을 보자, 그는 “광화문 촛불 집회에도 못 나갔는데 민망하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종이컵에 뭔가 기원할 만한 말을 써 보라’고 하자 대뜸 눌러 쓴 넉 자가 ‘반민특위’였다. 풀어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광복 후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해 설치된 기구지만, 친일파의 훼방으로 1년 만에 해산되며 실패로 끝났다. 일부 반민특위법 찬성자들은 ‘빨갱이’로 몰리기까지 했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게, 어떤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건가 하는 마음에….” 장강명 작가의 소설 『표백』(한겨레출판)을 읽었을 때, 그의 마음은 이와 비슷했다.

인정받고 싶은, 왜곡된 몸부림

‘꽃잎’(1996) ‘나쁜 영화’(1997) 등 장선우 감독의 영화 현장에서 조연출을 거친 김 감독은, ‘귀여워’(2004) ‘창피해’(2011) 등 주로 섹슈얼한 관계에 기반한 독특한 멜로영화를 만들어 왔다. “세상사에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살지 않았다”는 그를 깨운 『표백』은 사회에서 정해 놓은 수순대로 살며 스스로를 ‘표백(당한) 세대’라 부르는 20대의 연쇄 자살 사건을 파헤친 작품. 그는 이 소설을 통해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10대들의 입시 지옥이야 늘 있던 풍경이지만, 이렇게까지 벼랑 끝에 내몰린 20대는 없었던 것 같아요. 에너지를 분출할 창구도, 사회에 나아갈 기회도 많지 않죠.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러다 ‘일베’를 알게 됐는데, 그들이 내는 목소리는 불쾌함 이상이더군요. 세월호 참사만큼은 좌·우 성향이나 보수·진보를 따질 문제가 아닌데도, 그들은 유가족에게 반인륜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를 저지르잖아요. 아직도 그들을 이해하진 못해요.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거죠. 제 가치와 기준으로 무조건 지탄하기에는, 너무 많은 10대와 20대가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이 역시 지금 젊은 세대가 내는 목소리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에 대해 더 궁금해졌죠.”

‘일베’ 청년이 ‘어버이연합’을 만나는 구상은 “내가 원망하는 상대가 미워하는 상대는 나랑 같은 편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서 나왔다.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이나 종묘공원에 나오는 어르신들은, 간혹 ‘아들이 하버드대학교 출신’ ‘강남 땅을 팔았네’ 하는 식으로 당신들을 어필해요. 사실 힘들게 살아온 세대잖아요. 20대가 희망을 잃었다면, 70대는 물리적 시간이 점점 다해 가는 거예요.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이 20대보다 더 간절할 수 있죠. 두 세대 간에 그 쓸쓸한 정서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책임한 사회가 감당해야 할 질문

이 영화는 ‘일베’와 ‘어버이연합’의 실화를 본뜬 두 주인공의 비뚤어진 ‘애국 행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교환은 노동자 집회 영상에 게임(‘리그 오브 레전드’, 이하 ‘LOL’) 내레이션을 편집해 조롱하고, 속옷 차림의 여동생을 몰래 찍어 ‘너나’에 올린다. 정수는 서울 한복판에 가스통을 들고 나가 폭력 시위를 한다. 둘은 국립서울현충원 옆 육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 도중 행인에게 얻어맞기도 한다. 이를 적재적소에서 좇는 앵글은 ‘밀양’(2007, 이창동 감독) ‘가족의 탄생’(2006, 김태용 감독) 조용규 촬영감독의 솜씨.

하지만 한겨울 거리에서 기세등등하게 세상을 비웃던 그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엄밀히 따지면 정수에게는 목욕탕이 집이지만, 아들 내외는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그가 한때 운영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목욕탕은, 낡고 쇠락한 채 고집스레 제자리를 지킨다. 이는 텅 빈 목욕탕에서 성주처럼 군림하며 독불장군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정수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교환의 처지도 비슷하다. 그의 어머니는 젊은 남자와 외도하고, 여동생은 입시 준비에 혈안이 돼 있고, 아버지는 가족에게 무관심하다. 가족사진이 붙어 있는 그들의 고급 아파트는 텅 비어 있다. “우리 집엔 이젠 아무도 안 사는 것 같다”고 교환은 말한다. 한겨울 추위를 피해 찾아든 종로 낙원상가의 허름한 술집이나, 좁은 고시원에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다. 원숭이의 성행위 영상을 따라하는 교환의 기괴한 자위 행각이 일례다. “다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길 바라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한심하고, 추하고, 모멸스럽게 여겨질 때가 많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지만 위축돼 있는 교환의 상황은 특히 더 그렇고요.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건 고사하고, 자위조차 고통스럽게 변형된 형태로밖에 할 수 없죠. 그런 참담함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길 바랐어요.” 김 감독의 말이다.

그의 의도는 이 불가해한 현상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건 오히려 주류 사회잖아요. ‘일베’나 ’어버이연합’의 행각은 그에 편승한 돌출된 몸부림 같은 거예요. ‘일베’만 봐도, 자기들만의 무언가를 새롭게 끄집어내는 게 아니에요. 사회에 이미 ‘깔려 있는 것들’ 속에서 지역 감정, 여성 혐오 같은 것들을 가져와 싸움을 거는 거죠.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남아요. 나머지 우리들이 해낸 건 대체 뭘까.”

실패한 남성 권력, 희망은 여성에게서 나온다

이 영화에는 ‘일베’와 ‘어버이연합’ 사이, ‘낀 세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있다. 먼저, 교환의 아버지다. 그는 아들의 문제를 알고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서로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이 가족의 부조리한 작태는, 교환이 벌이는 기행에 적잖은 원인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 감독은 “교환의 식구들은 주변을 관찰해 만든 것”이라며 “만약 ‘가족에게서 채우지 못한 심리적 결손이 교환의 행각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 이해된다면, 내 실수다. 본래 연출 의도는 지극히 보편적인 가정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고 했지만 말이다. 또 다른 이는 성우 김상현이 연기한 극 중 동명 성우다. 상현은 ‘LOL’에 삽입된 자신의 목소리를 악랄하게 이용한 교환을 고소하며 그와 처음 만난다. 무조건 비난하기보다 교환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상현의 태도는 온정적이고 포용력 있지만, 교환의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처럼 자신을 포함한 ‘낀 세대’를 바라보는 김 감독의 시선은 다소 체념적이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건 여성들이다. 상현을 비롯해 교환이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상대인 티파니(전여빈) 등은 힘겨운 현실에서도 나름대로 살아가려 애쓴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몰랐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뒤늦게 알아챘다”고 했다. “남성 주도 문화에서는 계속 뭘 짓고 남기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렇게 만들어 온 현재의 역사는 그리 행복하지 않죠. 그에 반해 일상적 삶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여성들의 태도가, 제겐 상대적으로 건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폭력을 딛고 일어서는 법

궁극적인 희망은 교환과 정수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이 영화의 엔딩신. 정수의 어떤 소원을 들어준 후 시간이 흘러 광화문 광장에 홀로 선 교환.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자유로운 표정으로 몸이 이끄는 대로 춤춘다. 스스로를 위한 굿판처럼. 세상을 적으로만 여기다, 정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게 된 교환.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배우 구교환이 극 중 교환이 정수의 부탁을 들어주는 장면을 찍다 ‘눈물 날 것 같은데 괜찮겠느냐’ 묻더군요. ‘눈물 난다면, 그게 교환의 마음 아니겠느냐’라고 답했어요. 말이 안 되는 짓임에도 정수의 말을 들어준 건 교환 역시 각오가 있었기 때문일 테고, 슬퍼졌겠죠. 그것 말고는 정수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사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일베’나 ‘어버이연합’이 저지르는 행동의 동기를 시원스레 답변해 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의미 있는 것은, 변화의 계기가 뜻밖의 순간에 찾아온다고 믿게 만드는 이런 대목들 때문이다.

김 감독에게 ‘광화문에서 실제 정수나 교환과 마주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수에게는 ‘형님, 그만 좀 하세요’ 그럴 것 같아요(웃음). 극 중 대사처럼 ‘그만하고, 시골 가서 블루베리 나무도 심고, 삼겹살도 구우면서 재미 있게 살아요’라고 꾀고 싶어요. 교환에겐 ‘영화감독이나 해 보지 그래’ 그럴까요? 허허.”

“머리가 복잡할 때면 오토바이를 몰고 산에 오르거나, 부러 공사판에 나선다”는 김 감독. 어지러운 시국 때문일까. “요즘은 폭력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이 없을지 계속 고민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소통을 하려면 일단 서로 마주해야 하죠. ‘우리 손자 베스트’를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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