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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평화 촛불집회의 가치 훼손 말아야

중앙일보 2016.12.16 19:31 종합 30면 지면보기
오늘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제8차 촛불집회는 새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이다. 주최 측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인용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의 퇴진 촉구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며 헌재를 압박하고, “부역 인사”라며 황 권한대행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평화적 촛불 시위를 정치화의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어 우려스럽다.

탄핵에 찬반 의견을 표시하는 건 헌법적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재판은 신속과 공정이 핵심이다. 신속과 공정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중하다 보면 다른 하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균형의 추에 고심하는 헌재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주고 독립적 판결을 보장해줄 때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어제 헌재는 박 대통령 측으로부터 탄핵 사유에 대한 반박 답변서를 제출받아 법리 검토와 심리 준비에 착수했다. 일단 헌재의 심리 절차를 지켜본 뒤 문제가 발견될 때 행동으로 움직여도 늦지 않다. 명분이 아무리 고상해도 재판관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수 있다.

황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과 함께 ‘이게 나라냐’라는 지경까지 온 데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개별적으로 그의 과거 이력이나 직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인사들을 억압했던 대표적인 공안검사이자 친재벌 부패 법조인’이라고 낙인찍고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적절하다. 춧불집회의 순수성이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해온 보수 단체들도 헌재 주변을 중심으로 맞불시위를 예고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이 걱정된다. 이들은 초대형 스크린과 스피커 설치로 세 과시에 나서고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시위는 막아야 한다. 촛불집회에 전 세계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은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평화적으로 승화시킨 저력에 있다. 더디고 힘들더라도 자제하는 성숙함과 순수성을 지켜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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