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계 빚 1300조 부담, 금리 더 내리기 힘들어진 한은

중앙일보 2016.12.16 02:13 종합 5면 지면보기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 인상 발표 뒤 기자회견 중인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왼쪽)과 15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모습. [로이터=뉴스1], [사진 신인섭 기자]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 인상 발표 뒤 기자회견 중인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왼쪽)과 15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모습. [로이터=뉴스1], [사진 신인섭 기자]

“미국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겠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상황을 지켜보겠다.”

이주열 “금융안정 우선” 인하론 제동
대출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는데다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도 우려한 듯
글로벌 추세 맞춰 금리 인상도 난감
빚 상환 부담, 집값 경착륙 가능성 커

15일 오전 8시 출근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얼굴에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4시간 전인 4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했던 소식’과 ‘예상 밖 소식’을 같이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소식은 Fed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이 총재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다. 그를 더 심란하게 한 건 ‘Fed가 내년에 세 차례 이상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 밖 소식이다.
이 총재는 9시부터 한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기 시작했다. 이날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렸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한은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돼서다. 침체에 빠진 경제 상황을 보면 기준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 있다. 하지만 Fed가 금리를 올리면서 금통위의 운신 폭은 좁아졌다. Fed를 따라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악화와 가계 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고, 금리를 내리거나 그냥 두자니 자본 유출이 걱정돼서다.

지난 6월 기준금리를 1.5%에서 1.25%로 내린 이후 반년 동안 한은은 추가 금리인하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해 왔다. 경기가 너무 나빠서다. 경제성장률은 4분기 연속 0%대에 머물렀고, 소비·고용·수출 등 각종 지표들도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4%로 낮췄다. 금리인하를 통해 시중에 경기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마중물’을 공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문제였다. 정부의 각종 ‘돈줄죄기’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증가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지난달에도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8조8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월별 기준으로 올 들어 최대 규모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온 이후 가계대출은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금리를 더 내리는 건 대출 증가세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다.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우려도 금리인하 제약 요인이었다. 한은 기준금리가 1%로 낮아지면 미국과의 금리 차는 0.25~0.5%포인트로 좁혀진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에 돈을 넣어둘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 총재가 사실상 기준금리 조기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것도 이런 상황들을 두루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는 금융안정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 상황을 보면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고, 특히 금융시장 변동성이 대단히 높아 금융안정에 한층 더 유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총재가 금리 인상의 길로 선뜻 나서기도 어렵다. Fed의 금리인상을 따라 갔을 때 감당해야 할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대출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이는 소비침체로 이어져 경기를 추가로 끌어내린다. KDI는 가계소득이 5% 하락하고,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가계의 평균 원리금 상환액이 1140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14%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가계부채가 내년 소비증가율을 0.63%포인트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했다.

주택시장에도 냉기가 돌 수 있다. 주택시장에는 공급과잉 우려와 부동산 대책, 잔금대출 억제 등으로 이미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의 전국 예상 입주물량은 37만 가구로, 1999년(36만9541가구) 이후 최대 규모다. 여기에 금리인상까지 본격화하면 업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규제 강화로 실수요는 물론 가수요도 줄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이 더해지면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마지막 변수는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지는 경우다. Fed는 2015년 12월에 금리를 올릴 때도 점도 표를 통해 2016년에 네 차례 정도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신호를 주었다. 하지만 올해 1회 금리 인상에 그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분간은 금리 동결 가능성이 크지만 경제성장률이 1%대나 2%대 초반으로 떨어지거나, 미국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느릴 경우 정부와 한은이 재정확대 정책과 통화 완화정책을 동시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진석·김성희·김경진 기자 kailas@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