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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이번엔 희대의 금융사기…또 사회분노 유발자로

중앙일보 2016.12.16 01:03 종합 25면 지면보기
영화 ‘마스터’에서 진 회장 역을 맡은 이병헌. 푼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기꾼이나 수십억대 규모의 경제사범과는 다른 스케일의 금융사기를 보여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마스터’에서 진 회장 역을 맡은 이병헌. 푼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기꾼이나 수십억대 규모의 경제사범과는 다른 스케일의 금융사기를 보여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21일 개봉을 앞둔 영화 ‘마스터’(조의석 감독)는 여러모로 지난해 11월 개봉한 ‘내부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병헌 주연에 고위층의 권력 다툼이라는 소재 외에 디테일은 많이 다른데도 말이다. ‘내부자들’의 정치깡패 안상구가 유력 대통령 후보와 재벌회장, 언론사 논설주간 사이에서 이용당하다 팽당하는 존재라면, ‘마스터’의 진현필 회장은 원네트워크라는 금융회사를 설립해 수 조 단위의 사기를 기획해 자신의 욕망을 차곡차곡 채워넣는다. 역으로 권력을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란 얘기다.

21일 개봉 앞둔 영화 ‘마스터’
내부자들·베테랑 이어 터널·판도라…
비리·정부무능 다룬 영화 잇따라
조희팔·유병언 사건도 모티브
지나친 현실감에 피로 느낄 수도

주변 인물들도 훨씬 다층적이다. ‘내부자들’ 속 캐릭터들이 모두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간다면, ‘마스터’의 지능범죄수사대 소속 경찰인 김재명(강동원 분)은 진 회장을 ‘반찬’ 삼아 장부에 적힌 더 높은 곳을 겨누기 위해 질주하는 정의파고, 진 회장의 오른팔이자 브레인인 박장군(김우빈 분)은 오직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는 양면테이프” 같은 실속파다. 거기에 해외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로 돈을 빼돌린다거나 해외 도주 후 사체로 발견되는 모습은 당초 모티브로 삼은 금융사기범 조희팔 외에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등 여러 사건을 연상케 하며 사실감을 더한다.

이병헌이 지난달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 “처음 ‘내부자들’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금은 현실이 영화를 이겨버린 것 같다”고 밝힌 것처럼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사회적 공분을 동력으로 삼는 것은 최근 한국 영화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내부자들’(916만)뿐만 아니라 지난해 재벌 3세의 ‘갑질’을 응징하는 경찰의 활약상을 그린 ‘베테랑’(1341만)이나 부실공사부터 구조 과정까지 허점투성이였던 ‘터널’(712만) 등이 그 예다. 흥행의 안전성이 보장된 ‘사회적 분노 장르’란 말까지 나온다.
원전 폭발을 그린 재난 영화 ‘판도라’(왼쪽)와 무소불위의 권력 설계 과정을 그린 영화 ‘더 킹’. [사진 NEW]

원전 폭발을 그린 재난 영화 ‘판도라’(왼쪽)와 무소불위의 권력 설계 과정을 그린 영화 ‘더 킹’. [사진 NEW]

공교롭게 최순실게이트 등 현 시국이 맞물리면서 사회비판 영화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일 개봉해 200만 관객을 돌파한 ‘판도라’(박정우 감독)는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재난영화지만, 그 못지 않게 무능한 리더십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를 주요하게 다룬다. 내년 1월 개봉을 앞둔 ‘더 킹’(한재림 감독)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싶었던 검사 태수(조인성 분)가 권력 설계자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왕으로 올라서기 위한 여정을 그린다. 단순히 커넥션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의 핵심부를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은 이들 영화에게 득이자 실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당장 7주간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지난달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1268만 명으로 지난해 11월보다 17%(259만 명)이 줄어들었다. 또 현실과 너무 닮은 내용에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TV에서는 ‘푸른 바다의 전설’이나 ‘도깨비’처럼 판타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속 지나친 현실감을 지우기 위한 노력도 더해지고 있다. 당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로 광고했던 ‘마스터’는 “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로 홍보 콘셉트를 바꾸었다. 현재진행형인 게이트와 겹쳐지는 이미지를 우려한 것이다. ‘더 킹’ 측도 “굿판 장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추가 촬영한 것은 아니다”라며 우연의 일치임을 강조했다. 총 제작비 155억원에 손익분기점이 450만 명 선인 ‘판도라’가 생각보다 흥행 속도가 더딘 것이, ‘현실과 유사성’을 덜 강조하는 쪽으로 홍보 전략을 바꾸게했다는 지적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현실적 이슈가 있으면 마케팅 단계에서는 분명히 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과 흥행에서 폭발력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분석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희망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원하는데 절망적인 현실과 너무 비슷한 질감을 내면 되려 고통을 줄 수 있다”며 “이같은 요소는 오히려 극장을 찾는데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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