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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끌고 정부는 밀고…자리 잡은 TIPS

중앙일보 2016.12.16 01:00 경제 5면 지면보기
지난 2014년 1월 명함 관리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를 시작했던 최재호(33) 드라마앤컴퍼니 대표. 5명이 합심해 창업했지만 연구 개발비를 확대할 여력이 없었다. 두 달 후, 최 대표는 묘안을 찾았다.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지원금 5억 원을 받았다. 서비스 개발에 투자해 명함 입력 속도를 높였다. 중기청은 벤처 투자자들도 연결해 줬다. 캡스톤파트너스 등이 투자에 나서면서 90억 원을 유치했다. 서비스 초기 1만 명도 안 됐던 가입자 수는 최근 140만 명을 넘었다.
시장 점유율 70~80%로 1위를 달리며 ‘국민 명함 앱’이라고 불리는 ‘리멤버’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가 있다. 팁스는 중기청이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3년에 만든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민간 투자사가 스타트업을 발굴해 1억원을 투자하면 중기청이 연구개발비 등 최대 9억원을 지원한다.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스라엘 모델을 참고해 시작했다.

민간이 발굴해 투자, 중기청은 지원
올 투자 1620억, 2년 만에 3배 늘어
2013년 출범해 218개 창업팀 배출
22개팀은 해외서 자금 425억 유치

최 대표는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자를 연결해 주면서 긴 호흡으로 사업을 할 수 있었다”며 “투자자를 통해 다양한 사례와 조언을 들으며 회사가 성장했다”고 말했다.

최근 팁스 창업팀의 ‘떡잎’을 알아본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2014년 575억원에 그쳤던 민간 투자가 올해는 1620억원으로 늘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218개 창업팀을 배출하면서 민간에서 총 3196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가운데 22개팀은 해외에서 3614만 달러(약 425억원)를 유치했다.
기술 전문 인력들도 팁스를 통해 자리를 잡았다. 전체 창업자 696명 중 석·박사가 372명으로 53.4%를 차지한다. 국내·외 대기업 출신도 29.2%(203명)다. 창업팀의 60% 이상은 정보통신(IT)과 바이오·의료 분야로 진출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벤처 1세대로 꼽히는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의 구속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서울북부지검은 팁스 운영사로 참여한 호 대표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팁스 프로그램을 알선해 주는 대가로 지분을 받았다며 호 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호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다국적 영상 플랫폼 회사를 만들어 5년 만에 2300억 원에 매각해 벤처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호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더벤처스가 과도하게 챙겼다는 지분의 불법성 여부가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호 대표 사건을 두고 벤처 업계에서는 기술 창업 투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해 터진 일이라는 한탄이 흘러나왔다. 중기청은 팁스 프로그램을 더 활성화시켜 그간의 우려를 잠재우겠다는 계획이다. 15일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팁스 2020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이날 중기청은 2020년까지 창업팀 1200개, 민간 투자 3조 8000억원, 글로벌 스타 벤처 기업 50개를 배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이날 “협력 채널을 통해 기술·혁신·역량이 접목되면서 팁스가 대표적인 기술 창업 육성 플랫폼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갈길도 멀다. 팁스 안팎에서는 지금처럼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인력과 해외 투자자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얘기다. 류중희 퓨저플레이 대표는 “팁스의 프로그램이나 운영사 역량 등은 아직 충분히 글로벌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정부가 주도하는 면이 있다”며 “기술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역할은 줄어들고 민간이 주도하는 적극적인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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