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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방아쇠’ 당긴 미국…세계 달러 끌어당긴다

중앙일보 2016.12.16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글로벌 자금 대격변 예고하는 ‘쌍권총’ 옐런·트럼프
방아쇠는 당겨졌다. 총구는 전세계에 흩뿌려진 미국 달러를 향하고 있다. 미국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미국은 국제경제의 커다란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는 13~14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여기에 내년 세 차례 추가 인상할 계획이 있음을 시사했다. 2017년에는 돈을 거둬들이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미국이 금리 인상의 시동을 걸면서 글로벌 달러의 본국 회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세계를 떠돌던 ‘노마드 머니(Nomad Money)’가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미국으로의 자금 회귀는 실물 측면과 맞물려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1조 달러(약 1178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 케인시안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는 또 해외자산을 국내로 들여올 때 세금을 대거 감면해주는 등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을 선언했다. 약 170억 달러의 현금을 쥐고 있는 애플도 미국으로 생산 기지 이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정의(孫正義)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도 500억 달러(약 59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고용과 신규 투자가 늘어나면 미국 실물경기도 좋아진다.

연준, 내년 3번 더 인상 땐 신흥국 자금 ‘썰물’ 가능성
‘제조업 본국 회귀 정책’에 기업들 투자 미국으로 선회
금 등 안전자산보다 구리·니켈 등이 내년 강세 보일 듯

기준금리 인상과 재정확대 정책은 서로 충돌하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미국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위해 채권발행을 늘리면 채권 금리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함께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높이면 시중자금을 금융이 일부 흡수해 물가상승 압력을 억제할 수 있다. 하나의 총알(금리인상)은 발사됐고, 나머지 한 발(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장전됐다. 두 발의 총탄이 게임체인저로 ‘포스트 뉴노멀’ 시대를 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대규모 투자유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화를 예고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에 풀린 미국의 캐리트레이드 자금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제조업 기반이 튼튼한 한국·중국·대만 등 신흥공업국에 투자됐다. 한국의 경우 2007년 초 외국인 채권 투자액은 4조6178억원에 그쳤지만 글로벌 위기를 거치며 106조2295억원(2015년 7월 기준)으로 불어났다. 당시 한국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2%포인트가량 높았다. 북한 등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투자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연준이 내년 0.25%포인트씩 세 번 기준금리를 올리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국(1.25%)과 비슷한 1.25~1.5%가 된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미 미래 기대가 반영되는 장기채권시장에선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5일 10년 만기 미 재정부채권 금리는 장중 2.58%까지 치솟으며, 한국의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 2.23%를 웃돌았다. 올해 90조~100조원대였던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 잔액도 11월 말 80조원대로 줄었다.

중국도 11월 한 달간 257억 달러(약 30조원)가 순유출 되는 등 외국인 투자금 이탈에 골머리를 앓는다. 지난해 10월 이후 13개월 연속 감소 중이다. 9월 3777억7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510억 달러(11월 말)로 꺾였다. 3조 달러 밑으로 가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평가다.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가면 자금 조달비용이 올라 정부·기업의 재무적 부담이 늘어난다.

글로벌 자금은 현재 미국이 빨아들이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잘 드러난다. 다우지수는 13일까지 7거래일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며 2만 포인트를 앞두고 있다. 정보기술(IT)·자동차·정유 종목이 오름세를 주도하고 있다. 11월 한 달 동안에만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에 491억 달러(약 57조9281억원)의 뭉칫돈이 몰렸고, 달러 수요 증가로 달러인덱스도 101.7(14일 기준)까지 치솟았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상은 증시의 악재로 통하지만, 최근의 인상 기조는 경기 회복의 시그널로 해석돼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연준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경기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중국의 고성장에 기댔다면, 앞으로 4년은 미국 중심의 게임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헌석 미래에셋자산운용 전략리서치팀장은 “미국은 임금이 비싸지만 저유가로 전기료 등 유틸리티 가격은 한국보다도 싸다. 감세까지 더해져 기업이 미국에서 생산할 유인이 커졌다”며 “리쇼어링 정책은 설비 등 투자와 고용, 생산의 미국 집중화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은 유럽연합(EU)과 일본이 펼치고 있는 양적완화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어 선진경제권의 통화정책에 딜레마를 안길 전망이다.
미국으로의 자금 집중과 ‘메이드 인 더 USA’ 시대는 글로벌 자금이 금 등 안전자산에서 원자재로 이동할 것을 예고한다. 런던금속거래소에서 2개월 새 구리는 21%, 니켈은 8.5% 가격이 올랐다. 원자재 가격은 경기를 선행한다. 트럼프는 캐나다 앨버타주와 미국 텍사스주를 잇는 총 1897㎞ 길이의 키스톤XL송유관 사업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사업 등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호주 달러·브라질 헤알화 등 원자재 수출국의 통화가치도 상승 추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에 합의했지만 감산 의무가 없는 비회원국인 미국·캐나다·러시아가 가격 상승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아직까지는 터키·인도 등을 제외한 주요국의 기준금리가 1~3% 수준이고, 트럼프 경제정책의 성공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재정확대가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느냐가 체크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 및 재정확대 정책과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의 금리 인상정책이 엇박자를 내며 대규모 쌍둥이 적자를 초래한 바 있다. 미 행정부는 결국 1985년 일본을 압박해 엔화 절상을 골자로 한 플라자 합의를 맺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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